종이배는 사진 속에 있었지만, 우빈은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강민호로 추정되는 남성이 제공한 사진은 재촬영과 배포 범위가 정해진 자료였다. 원본을 보내 달라고 재촉하는 것은 쉽지만, 그를 금고의 다음 표적으로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우빈은 소라와 상의한 뒤 질문 하나만 전했다.
‘종이배의 안쪽을 이미 촬영해 둔 자료가 있습니까? 없다면 굳이 펼치거나 새로 촬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강재는 앞서 수집한 1998년 기록을 다시 정리했다. 동백여관 뒤편의 문, 임동식의 버스, 새벽쉼터 운영 수첩. 세 장소가 서로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05:10 버스의 임시 이송 기록. 05:38 새벽쉼터의 도착자. 06:42 여관 후문 사진.”
“그럼 사진은 이송 뒤에 찍혔겠네요.” 우빈이 말했다.
“시계가 모두 정확하고 문서가 같은 날 기록됐다는 전제라면요.” 강재가 말했다. “여관 후문에 남은 아이가 A인지 B인지도 아직 몰라요.”
그들은 처음부터 사건의 시간을 하나로 이어 붙이려 했다. 하지만 실제 기록은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자리에서 만든 것이었다. 하나가 틀렸다면 모두를 다시 봐야 했다.
소라는 다른 가능성을 꺼냈다.
“오해경 씨가 쉼터에 B를 맡기고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후문 사진에서 오해경 씨 옆에 있는 아이는 A일 수 있겠군요.”
“그것도 가설이에요.”
때마침 나래가 보내 온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는 자신의 오래된 수첩을 찾아보고 있었다. 열두 살 때부터 어른이 된 뒤까지 여러 번 같은 꿈을 적어 둔 기록이었다.
‘그 문에서 동생과 떨어졌다는 꿈을 여러 번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에는 시계가 없어요. 실제 장면인지 제가 나중에 꾸며 낸 기억인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우빈은 그 메시지를 읽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래의 말은 정보가 부족했지만, 그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의 말이 더 믿을 만하게 느껴졌다.
밤 열한 시 무렵, 기다리던 답장이 왔다.
‘종이배는 오래전에 펼쳐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찍어 둔 사진 한 장을 제공하겠습니다. 새로 손대지는 않겠습니다.’
첨부된 사진에는 접힌 자국이 가로세로로 엇갈린 종이가 보였다. 바닥에 있던 ‘다른 문’이라는 세 글자 옆으로 새로운 문구가 나타났다.
‘A는 이름을 기억한다. B는 길을 기억한다.’
그 아래에는 어린아이 글씨가 아닌 성인의 반듯한 필체로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둘을 같은 사람의 수령증에 올리지 말 것.’
현정이 화면을 확대했다. 먹물의 농도와 종이 상태가 달라 보였지만 사진만으로 작성 시기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소라는 글씨를 소리 내어 읽고 어머니 이정민을 떠올렸다. 과거에 그녀가 보존했던 최초 보호 요청도 ‘강나래 외 1인’이었다. 사람 이름이 아닌 구조 요청. 그때부터 두 사람은 함께 보호받아야 했지만, 하나의 책임 아래 묶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을까.
강재가 갑자기 손뼉을 쳤다.
“길을 기억한다는 말, 주소가 아닐 수도 있어요.”
“무슨 뜻이죠?”
“종이배를 펼치면 접힌 선이 지도처럼 남아요. 동백여관 후문에서 새벽쉼터까지의 길을 그렸을 수도 있죠.”
그들은 종이 위의 선과 1998년 도로 지도를 나란히 놓았다. 숫자 여섯 개가 적힌 모서리가 있었다. 0, 3, 1, 7, 1, 1. 우빈은 발신 번호처럼 나타났던 숫자를 떠올렸다.
“031711.”
“전화번호가 아니라 좌표나 보관 번호일 가능성이 있네요.”
현정은 검색된 기록 중 오래된 구호 물자 보관함 목록을 찾아냈다. ‘03동 17열 11번.’ 새벽쉼터의 임시 보관창고에 그 번호가 있었다. 창고는 2004년 건물 이전과 함께 폐쇄됐고, 일부 물품은 서람시 외곽의 구청 문서창고로 옮겨졌다.
“당장 가야 하나요?” 우빈이 물었다.
“보관 책임자와 협의해서 출입 권한을 확인해야 합니다.” 현정이 말했다. “우리가 무리하게 침입하면 원본을 지킬 수 없어요.”
소라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금고는 우리에게 자꾸 시간이 없다고 하죠. 그런데 그 시간을 아끼려고 절차를 버리면, 나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입증할 방법이 없어요.”
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현실은 여유롭지 않았다. 대체 거래까지 여덟 시간도 남지 않았다.
그날 자정, 시립 문서창고 측에서 보관 확인을 위한 긴급 열람 가능 시간을 알려 왔다. 오전 두 시. 부득이하게 야간 근무 중인 담당자의 입회 아래 한정된 범위만 열람할 수 있었다.
우빈은 외투를 입었다. 현관을 나서자 아버지 정태수가 전화를 걸었다.
“어디 가느냐?”
“옛날 보관창고요.”
“나도 같이 갈까?”
우빈은 잠시 망설였다. 그 아버지가 1998년 문을 잠갔고, 여러 사람을 늦게 나오게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 때문에 모든 문을 다시 아버지 손으로 열게 할 필요는 없었다.
“이번에는 제가 할 수 있어요. 대신 아버지는 그날의 일 중 기억나는 것을 더 적어 주세요. 기억나지 않는 부분까지 채울 필요 없고요.”
태수가 짧게 웃었다.
“그래. 이번엔 네가 문을 열고, 나는 내가 닫았던 문을 설명하마.”
통화를 끊자 골목 가로등 아래 영수증 한 장이 떨어졌다. 영수증에는 우빈이 문서창고에 들어가기도 전에 서명이 찍혀 있었다.
[031711 보관함 / 임시 수령 승인]
[서명: 정우빈]
그의 필체였다. 그러나 우빈은 펜을 꺼낸 적이 없었다.
제14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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