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쉼터가 있던 자리는 지금 시립재활센터의 주차장이었다.
1980년대에 지어진 작은 보건소 건물은 외벽만 남아 있었고, 그 앞에 새로 들어선 병원동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정우빈은 낡은 안내판의 세모 표식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임동식의 사진 속 흰 차 문에 붙어 있던 것과 닮은 모양이었다.
“이 표식만으로 같은 기관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현정이 말했다.
“알아요. 그래도 찾아볼 곳이 생겼네요.”
재활센터의 행정팀장은 오래된 시설 기록을 보존하고 있었다. 그는 봉투에 적힌 ‘새벽쉼터’라는 이름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에는 정식 병상이 부족할 때 아이와 노약자를 잠시 보호하던 임시 시설이었다고 했다.
“종이 장부는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개인정보가 섞여 있으니 원하는 만큼 다 보여 드릴 수는 없어요.”
소라가 먼저 대답했다. “그렇죠. 당사자 동의가 필요한 자료는 범위를 구분하겠습니다. 우선 시설의 운영 시기와 차량 운행 기록부터 확인할 수 있을까요?”
행정팀장이 안내한 지하 보관실에는 오래된 책상과 모서리가 닳은 서류함이 있었다. 냉방이 잘되지 않는 공간에서 종이 냄새가 올라왔다. 누군가의 생애를 바꿀 수 있는 기록이 이처럼 평범하게 보관돼 있었다는 사실이 우빈을 긴장시켰다.
1998년 11월 5일 새벽의 차량 배차표에는 ‘응급 이송 보조 1회’가 적혀 있었다. 차량 번호 일부는 지워졌지만, 목적지는 분명했다.
‘동백여관 후문 → 새벽쉼터.’
“그렇다면 실제 이동은 있었군요.” 강재가 말했다.
“이동 예정이 기록됐다는 뜻이에요.” 현정이 바로잡았다. “실제로 도착한 사람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때 서류함 뒤쪽에서 마른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우빈은 고개를 돌렸다. 분명 사람이 없던 통로에 작은 병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병상 위에는 어린아이용 슬리퍼가 한 짝 놓였고, 난간에 검은 띠가 걸려 있었다.
[보호 이관 / 수령자 미지정]
[일시 수령인: 박현정]
“또 현정 씨를…”
우빈이 뛰어나가려 하자 현정이 손을 들었다.
“제가 보겠습니다. 제 이름으로 무엇을 만들었는지.”
그녀는 병상에 다가가지 않고 서류함 앞에 섰다. 실제 배차표와 환상처럼 나타난 병상의 위치를 따로 기록했다. 병상 주변의 그림자는 움직였지만 서류함의 먼지는 그대로였다.
“이런 현상을 확인했다고 해서 수령한 사실은 생기지 않습니다.”
검은 띠가 반짝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빈의 손목에 번호가 나타났다.
[대체 후보: 정우빈]
“저까지 끌어들여서 둘 중 한 사람을 고르라는 거군요.”
소라는 병상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행정팀장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시설에서 보호 대상자가 도착했을 때 기록하던 방식이 있었나요? 이름을 몰라도 적을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팀장은 책장 위에 얇은 수첩 하나를 꺼냈다.
“그때는 일단 건강 상태를 적고, 인적사항은 나중에 확인하기도 했대요. 이것은 운영 수첩의 사본입니다.”
1998년 11월 5일의 칸에는 두 줄의 필체가 있었다.
‘05:38 / 어린이 1인 / 오른손 찰과상 / 동행인 분리 보호.’
‘07:15 / 보호자 확인 전 외부 문의 금지.’
성별과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우빈은 글자를 읽고도 속이 메스꺼웠다. 기록은 아이가 도착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었지만, 금고는 이를 ‘수령된 담보’로 바꾸려 하고 있었다.
“이때 일하신 분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나래가 화상 통화에서 물었다. 그녀는 현정이 허용된 범위의 운영 수첩을 보여 주자 오래도록 화면을 보았다.
팀장은 망설였다. “그분은 이미 은퇴하셨어요. 연락처를 무단으로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문의 전달 여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병상은 서서히 희미해졌다. 그 끝에서 검은 장갑이 튀어나와 수첩을 낚아채려 했지만, 현정이 먼저 보관함을 닫았다.
“이건 열람 절차에 따라 보존 중인 자료입니다.”
검은 장갑은 서류함 안쪽을 두드렸다. 규칙을 강요하던 금고가 이번에는 문을 열어 달라고 간청하는 것처럼 보였다.
십여 분 뒤 팀장이 돌아왔다.
“당시 야간 자원봉사자로 일했던 분이 연락을 받겠다고 하셨어요. 다만 본인이 있는 집으로 오지 말고 가까운 도서관에서 만나자고 하십니다.”
“이름을 알 수 있나요?”
“유하영 씨입니다.”
소라가 메모를 남겼다. 우빈은 생존한 증인을 찾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동시에 그 사람이 기억할 수 없는 일이 많을 거라는 점도 알았다. 오래된 기억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압박할 수는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차 앞유리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이슬 사이로 문장이 떠올랐다.
[외부 증인 접촉 감지]
[선택: 증언 확보 / 대상자 B 생활기록 보호]
[양자 동시 선택 불가]
우빈은 그 문장에 웃음이 나왔다. 한 사람의 입을 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으라는 요구. 익숙한 거짓 양자택일이었다.
“선택지가 둘이면 세 번째 방법을 찾으면 되죠.”
소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원래부터 둘 중 고를 이유가 없어요. 우리가 할 일은 증언을 청하고, 그분이 거절하면 받아들이는 겁니다.”
우빈은 말없이 차 문을 열었다. 이런 싸움에서 자신이 배워야 할 것은 용기만이 아니었다. 남의 선택을 기다리는 힘이었다.
제14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