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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41화
PAYLUA ORIGINAL · 제141화

141화. 두 번째 아이의 자리

빚을 먹는 금고 · 2,725자

오프라인 책장
오해경의 목소리가 끊긴 뒤에도 녹음기에서는 테이프 돌아가는 소리가 십일 초 더 흘렀다. 그 짧은 잡음 동안 정우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중앙기록관리원 보존실에는 종이 넘기는 소리조차 멎어 있었다. 김소라는 휴대전화 화면에 남은 파형을 바라보고 있었고, 박현정은 재생 종료 시각을 증거 목록에 적었다. [원본 00 / 대체 거래 발동] [대상: 인계되지 않은 두 번째 아이] [새 수령자 지정까지 47:59:39] “사람을 물건처럼 적어 놨네요.” 소라가 말했다. “물건이라는 뜻은 아닐 거예요.” 서강재가 화면을 확대했다. “이 장치는 ‘인계되지 않았다’는 표기 하나를 근거로 수령 책임을 만들어 낸 적이 있어요. 이번에도 그 규칙을 적용하겠다는 뜻일 겁니다.” 우빈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자주 같은 함정에 걸렸는지 떠올렸다. 급하다는 이유로 이름을 채우고,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대신 서명했다. 그런데 기록의 주인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묻는 순간이면 금고는 늘 다른 서류를 내밀었다. “사진부터 다시 봅시다.” 모니터에 1998년 11월 5일 오전 6시 42분의 사진이 떴다. 동백여관 후문 앞, 작업복을 입은 오해경으로 추정되는 여자와 후드 차림 아이 하나가 있었다. 강재가 밝기를 조정하자 문 안쪽에 다른 신발 끝이 보였다. 사진 가장자리에는 누군가의 작은 손이 반쯤 잘려 있었다. “한 사람이 움직이는 동안 두 번 찍힌 흔적일 수도 있겠죠?” 현정이 물었다. “원본 필름에는 이중 노출 흔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두 사람의 신원이 사진만으로 증명되진 않습니다.” 그들은 새로 발견된 문구 두 줄을 나란히 놓았다. [구호 대상자 A / 귀가 확인 11월 5일] [구호 대상자 B / 인계처 공란] “강나래와 강민호를 보호하라는 1998년 기록이 이미 있었어요.” 소라가 말했다. “그런데 그 보호 요청과 이 새 기록이 같은 두 사람을 가리키는지는 아직 모르죠.” 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제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앞서 강나래와 동생 강민호의 보호 약속을 찾아냈고, 민호로 추정되는 성인에게서 제한적인 증언도 받았다. 새로 드러난 것은 5일 아침의 인계 과정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는 점이었다. “어디로 갔는지를 모르는 것과, 인계되지 않았다는 건 다르잖아요.” “맞습니다.” 현정이 말했다. “‘인계처 공란’은 빈칸입니다. 미인계 확정이 아니에요.” 그러자 보존실 끝의 작은 금고가 덜컹거렸다. 쇳소리 뒤로 낮은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저도 집에 가면 안 돼요?’ 우빈은 반사적으로 금고를 향해 걸었다. 소라가 앞을 막았다. “지금 들린 목소리가 실제 아이의 녹음인지 먼저 확인해야 해요.” “알아요. 그런데…” “저도 들었어요. 모른 척하자는 게 아니에요.” 소라의 표정은 단호했지만 눈가가 젖어 있었다. 어머니 이정민이 실종됐을 때 자신도 수없이 같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 언제 돌아와도 되느냐고.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질문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현정이 잠금장치의 상태를 기록하는 사이, 강재는 파일의 마지막 십일 초를 별도 사본으로 분리했다. 잡음 아래에서 짧은 금속성 소리가 검출됐다. 종소리 세 번, 쉬었다가 두 번, 다시 한 번. 동백여관 문을 두드리던 것과 같은 박자였다. “누가 남긴 신호인지 모르겠지만, 날짜가 같은 물건끼리 연결돼 있을 가능성은 있네요.” 우빈은 나래에게 바로 전화하려다 멈췄다. 그녀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록을 열람할 권리가 있었지만, 그 기록이 나타날 때마다 갑자기 불려 나올 의무는 없었다. 그는 먼저 짧은 메시지를 썼다. ‘1998년 11월 5일 인계 기록에서 두 아이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기존에 확인한 보호 기록과 관련 있을 수 있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설명을 듣고 싶으시면 연락 주세요. 원하지 않으시면 기다리겠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조급함이 줄지는 않았다. 대신 자신이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보존실의 전화가 울렸다. 현정이 수화기를 들자 처음 듣는 남자가 자신을 ‘임시 인계 담당자’라고 소개했다. “대상자 B의 현재 주소를 알려 주십시오. 확인되지 않은 보호자를 즉시 지정할 수 있습니다.” “담당 기관과 권한을 확인할 문서를 보내 주세요.” “기한이 지나면 책임이 귀 기관으로 이전됩니다.” “기한을 만든 주체부터 확인하겠습니다.” 통화가 끊겼다. 현정은 발신 번호와 시각을 기록했다. 이상한 점은 번호에 지역번호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열한 자리도, 인터넷 전화 형식도 아니었다. 단지 여섯 개의 숫자뿐이었다. ‘031711.’ 강재가 화면을 보자 얼굴이 굳었다. “이건 전화번호가 아니라 접수번호처럼 보여요.” 그 순간 프린터가 켜졌다. 아무도 보내지 않은 종이 한 장이 나왔다. [대상자 B / 보호자 지정 요청] [우선 후보: 1998년 당시 동행 아동 A] [미응답 시 A의 현재 생활 기록을 대신 압류] 우빈은 종이를 잡지 않았다. 보호라는 말을 앞세워 한 사람의 삶을 다른 사람에게 담보로 묶으려는 수법이었다. 그는 그 종이를 사진으로 남기고 현정에게 건넸다. “대상자 B를 찾는 일과 나래 씨의 삶을 빼앗는 일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바로 그때 나래에게서 답장이 왔다. ‘설명 듣겠습니다. 다만 제 동생의 현재 이름이나 주소는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두 사람 기록을 구분해서 보여 주세요.’ 우빈은 비로소 심호흡을 했다. 금고가 가장 먼저 지우려는 것은 기록이 아니라, 그 기록 속 사람의 선택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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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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