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장은 1998년의 아침과 2026년의 정오가 겹친 곳이었다.
유리창 너머에는 오래된 동백여관 골목이 보였다. 낡은 버스가 길모퉁이에 서 있었고, 작업복 차림 사람들이 젖은 바닥을 조심스럽게 건넜다. 그러나 우빈이 고개를 돌리면 중앙기록관리원의 밝은 복도와 컴퓨터 화면이 나타났다. 두 장소의 사이에 서 있는 것은 검은 양복의 남자와 무수한 종이 시계뿐이었다.
[소유권 확인 심사 개시]
[담보: 1998-11-04, 실종자의 마지막 하루]
[수령자 후보: 박현정]
[이의 신청 시간: 00:30:00]
“삼십 분입니다.” 미결이 말했다.
우빈은 현정을 보았다. 그녀는 명찰의 글씨가 완전히 사라진 채 서 있었다. 그러나 책상 위에 놓인 자료의 첫 장에는 여전히 ‘기록관리 담당 박현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람이 지워졌다고 기록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검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기록이 비어 있습니다. 수령자가 없으면 담보는 자동으로 인수됩니다. 한 명을 정하면 모두가 편해집니다.”
“그 말만 세 번째 듣네요.” 소라가 말했다.
“진실은 반복됩니다.” 남자가 대답했다.
“거짓말도요.”
현정이 동백여관 유실물 인계서를 펼쳤다. 소유주의 허가, 관리인의 확인, 보존 물품 목록과 촬영 시각이 차례대로 적혀 있었다.
“보관물을 발견하고 접수한 사람은 소유자가 아닙니다. 서류를 보존했다고 해서 그 내용의 채무를 맡지 않습니다.”
남자의 구두 끝에서 검은 물결이 퍼졌다. 책상 한쪽이 기울었다. 우빈은 손을 뻗어 흔들리는 자료를 붙잡았다. 현정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록부터 읽었다.
“박현정은 이 서류의 보관을 담당했습니다. 1998년의 임금을 수령하거나, 실종자의 하루를 담보로 제공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대리 수령 불인정: 접수]
첫 번째 종이 시계가 깨졌다.
다음은 임동식이었다. 그는 화상 통화로 참여했다. 버스에 여덟을 태웠다고 기억하는 사실, 일곱이 내린 것을 확인한 사실, 마지막 좌석을 확인하지 못한 사실을 나눠 말했다.
“내가 확인하지 못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내 버스 안에 지금까지 가둬 둔 건 아닙니다.”
[미하차 확정 기록: 보류]
두 번째 시계가 멈췄다.
소라가 이정민의 진술을 읽었다. 사고 뒤 오해경의 목소리를 기억하지만, 시간과 장소를 단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가현은 오해경과 함께 일했던 시간을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교대가 새벽 세 시 십칠 분에 끝났고, 이후 다른 사람의 근무를 승계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강재는 2010년에 만든 문서로 1998년 당사자의 동의를 입증하려 한 오류를 짚었다. 대출 지급 사본이 남아 있는 사람과 담보 제공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을 같은 계약에 묶었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이들은 같은 하루를 살았을 뿐, 같은 채무에 동의한 게 아닙니다.”
시계가 연이어 깨졌다. 그런데 가장 위에 걸린 시계는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양복의 남자가 웃었다.
“당사자가 없습니다. 오해경 씨가 직접 거부하지 않으면, 미확인 기록은 영원히 유효합니다.”
우빈은 자신도 잠시 그 말에 흔들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해경이 나타나서 모두 끝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실종된 사람을 기다린다는 이유로 남은 사람을 볼모로 잡아 두는 것은, 처음부터 금고가 만든 구조였다.
“오해경 씨의 행방을 아직 모릅니다.” 우빈이 말했다. “하지만 모른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그분의 하루를 줄 수는 없어요.”
“그러면 누가 그 하루의 주인입니까?”
“그날을 살았던 사람들 자신이죠. 그리고 확인하지 못한 시간은 그냥 확인하지 못했다고 남겨야 합니다.”
우빈은 마지막 자료를 올렸다. 명숙이 쓴 1998년 가계부와 정희의 수기 매출 장부였다. 각각 그날을 기다렸던 사람과 일했던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의 경험은 서로 달랐고,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대신하지 않았다.
“하루가 비었다는 계약의 전제부터 틀렸습니다. 여기에는 살아낸 사람들이 있어요.”
검은 남자의 얼굴에 붙은 미완성 계약서가 일그러졌다. 그러나 남자는 종이 시계를 부수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소유권 확인을 포기하십시오. 보관금을 받을 기회도 함께 사라집니다.”
현정이 손을 뻗었다. “잠깐.”
그녀는 구호비와 미지급 임금 자료를 다시 펼쳤다. 실제로 지급되지 않은 돈이 있다면 그 권리는 남아야 했다. 그런데 금고는 잘못된 담보를 포기시키면서 정당한 보상 청구권까지 없애려 했다.
“담보 소유권 자동 승계에 이의 신청합니다. 그러나 실제 미지급 임금, 구호비, 보상금에 대한 개별 조사와 권리는 유지합니다. 둘은 별개입니다.”
“그것은 선택지에 없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선택지가 틀렸다는 사실을 접수해 주세요.”
미결이 우빈을 보았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 빈칸에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 점은 천천히 움직이며 글자를 만들었다.
[이의 사유: 계약 목적물 특정 불가]
[대리 수령 동의 증거 없음]
[실제 채권·보상금은 별도 검증 유지]
가장 높은 시계의 유리에서 금이 갔다. 가느다란 소리가 심사장 전체에 울렸다. 검은 양복의 남자는 서류들을 붙잡으려 했지만, 소매가 종이 조각으로 풀어졌다. 조각들은 공중에서 서로 부딪치더니 타다 남은 영수증처럼 바닥에 내려앉았다.
[1998-11-04 ‘잃어버린 하루’ 소유권 자동 승계: 중지]
[담보 현물 회수 지정: 취소]
[실제 미지급금·구호비 권리: 유지, 별도 심사]
[원본 00: 소유권 증명 실패]
현정의 명찰에 이름이 돌아왔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목에 걸린 직원증을 확인했다. 그리고 습관대로 책상 위의 종이를 정리했다.
“다 끝난 건 아니네요.”
“그래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덮어 놓지는 못하겠죠.” 우빈이 말했다.
심사장이 사라지자 중앙기록관리원의 조명이 돌아왔다. 몇몇 직원은 정전 때문에 당황했지만, 아무도 그들이 무엇을 막았는지 알지 못했다. 현정은 자료를 다시 봉인했다. 오해경의 얼굴이 나타난 필름은 별도 보존했고, 관련 기관에 확인 가능한 기록 대조를 요청했다. 서명받지 않은 서류는 끝까지 서명받지 않은 채 남았다.
우빈은 복도 끝 창가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수는 오늘도 오해경 씨를 찾았느냐고 물었다.
“아직요. 다만 사고 다음 날 오전에 그분 명찰을 단 사람이 있었던 사진이 나왔어요. 지금으로선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어요.”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아버지. 아직 그분을 찾는 이유가 사과하려는 마음 하나만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태수는 긴 침묵 뒤에 대답했다. “알아.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어.”
통화를 마친 우빈은 보존실에서 마지막 사진의 디지털 사본을 받아 보았다. 문턱 앞에 선 여자와 후드를 쓴 작은 사람. 그 사이에 어른 손바닥만 한 빈 공간이 있었다. 사진을 밝게 보정한 강재가 우빈을 불렀다.
“여기 보세요. 작은 사람의 발치에 다른 그림자가 하나 더 있습니다.”
“두 명이 있었다는 뜻인가요?”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림자만으로는 말할 수 없죠. 대신 사진 뒷면에 남은 인쇄를 찾아냈어요.”
거기에는 희미한 문구가 있었다.
‘구호 대상자 A / 귀가 확인 11월 5일.’
‘구호 대상자 B / 인계처 공란.’
소라가 말을 잃었다. 그동안 그들이 찾던 미하차자 한 사람 외에 또 하나의 인계 기록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때 우빈의 휴대전화에 짧은 음성 파일이 도착했다. 발신자는 없었지만 파일명에는 오래된 관리번호가 적혀 있었다.
‘98-SM-03_마지막_확인.wav’
우빈은 소라와 현정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재생했다. 낡은 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 뒤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오해경입니다. 11월 4일은 누구에게도 팔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날을 담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5일 아침에 나간 아이들을 확인하세요.’
기계가 지직거렸다. 여자는 숨을 고르고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지켜야 했던 아이는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음성이 끊겼다. 우빈은 사진을 다시 보았다. 뒤편 문이 반쯤 열린 틈에서 작은 손 두 개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복도 시계는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보존실 가장 깊은 서랍에서 작은 금고가 한 번 울렸다.
[원본 00 / 담보 소유권 재확인 실패]
[대체 거래 발동]
[대상: 인계되지 않은 두 번째 아이]
우빈은 알았다. 그들이 되찾은 것은 스물여덟 해 전 하루의 주인 자리가 아니었다. 그날 누군가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을 다시 묻기 시작할 권리였다.
그리고 이제, 기록에서 지워진 또 한 사람의 삶이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제14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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