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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39화
PAYLUA ORIGINAL · 제139화

139화. 마지막 하루의 심사관

빚을 먹는 금고 · 3,248자

오프라인 책장
박현정에게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이름표였다. 중앙기록관리원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녀가 목에 걸고 있던 직원증의 글씨가 흐려졌다. 얼굴 사진은 그대로였지만 성명란만 비어 있었다. 출입문 앞 단말기가 카드를 읽지 못하자 경비 직원이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시스템 오류인 것 같네요. 인사팀에 연락하겠습니다.” 현정은 고맙다고 말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자신은 그저 일시적인 전산 장애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빈은 현정이 보관실에 들어가자마자 출입 기록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박현정 / 원본 00 보관 책임자] [담보 현물 수령자 지정 대기] “기록을 지키는 사람을 물건을 받은 사람으로 바꾸려는 거예요.” 현정은 화면을 내려다봤다. 잠시 턱이 굳어졌지만 곧 종이철을 집어 들었다. “내가 여기서 일한 것이 사실이고, 보존물을 접수한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접수했다고 소유하게 되는 건 아닙니다. 인계서와 보관 지침을 따로 준비해요.” 그녀가 쓰는 말투는 평소와 같았다. 다만 손끝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우빈은 그 떨림이 무섭지 않은 척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전문 보존실에서는 필름을 안전하게 스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강재는 작업자가 제공한 원본 보존 절차를 확인하고, 디지털 사본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화면에 첫 사진이 나타난 것은 소유권 확인 심사를 두 시간 남긴 때였다. 사진 속에는 동백여관 뒤편의 작은 문이 있었다. 날씨는 흐렸고, 골목 바닥은 젖어 있었다. 사진 모서리에 카메라가 찍어 놓은 날짜가 나타났다. [1998-11-05 / 06:42] “날짜 표시 자체가 진짜인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강재가 말했다. “네. 그래도 다른 증거와 비교할 수는 있어요.” 두 번째 사진에는 낯익은 작업복 차림 여자가 문턱에 서 있었다. 오른손에 급여봉투를 들었고 왼손으로 작은 문을 붙잡고 있었다. 얼굴은 측면이라 분명하지 않았지만, 옷에 붙은 명찰이 보였다. ‘오해경.’ 가현이 숨을 들이켰다. 우빈은 그녀가 사진 앞으로 달려갈 줄 알았지만, 가현은 의자를 당겨 천천히 앉았다. “저건… 반장님 옷이에요. 단추를 위에서 두 번째까지 채우시던 습관도 같아요. 하지만 얼굴을 확인해야 하겠죠.” 세 번째 사진에서는 여자가 문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런데 여자의 뒤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 키가 작았고 머리 위에 후드를 쓰고 있었다. 한 손은 여자의 작업복 자락을 잡고 있었다. 소라가 화면을 확대했다. “아이인가요?” “그럴 수 있습니다.” 현정이 말했다. “하지만 나이도 성별도 사진만으로 판단하긴 어려워요.” 네 번째 사진에는 후드를 쓴 사람이 없었다. 여자만 문 앞에 서 있었다. 문턱 아래로 작은 신발 한 짝이 보였다. 사진 맨 끝에는 누군가 손으로 적은 문장이 있었다. ‘하차 인원 확인 필요. 미하차 확정 금지.’ 그들은 처음으로 1998년 사고 뒤 5일 아침에도 오해경이라는 명찰을 단 사람이 동백여관에 있었다는 물증을 확보했다. 하지만 그 사진이 왜 봉인됐는지, 작은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는 여전히 몰랐다. 심사 예정 시간이 한 시간 남았을 무렵 중앙기록관리원 전등이 꺼졌다. 비상 조명이 켜지자 보존실 바닥에서 영수증 모양 종이들이 솟아올랐다. 종이는 스스로 접히며 구두를 만든 뒤 검은 양복의 남자를 형성했다. 그의 얼굴은 이번에도 정해지지 않았다. “박현정 씨. 보관물 인계가 완료되었습니다.” “접수와 인계의 구분부터 확인하십시오.” 현정이 말했다. “실물을 건드린 자가 소유자가 됩니다. 모든 규칙은 단순합니다.” “그 규칙은 누가 정했습니까?” 남자가 대답하지 않자 강재가 화면을 띄웠다. ‘소유권 자동 승계’ 항목의 작성 시각은 2010년이었다. 사고와 구호 작업이 벌어진 때보다 십이 년 뒤였다. “1998년 당사자가 동의한 규칙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나중에 적힌 거군요.” 우빈이 말했다. 검은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소매에서 종이 칼날이 쏟아져 현정의 책상으로 날아갔다. 우빈은 몸을 던져 종이를 막으려 했지만, 소라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서류를 찢으면 안 돼요. 저자가 원하는 건 우리가 또 증거를 없애는 거예요.” 우빈은 서둘러 보존 문서함의 뚜껑을 닫았다. 남자의 그림자가 뚜껑 위에서 기어 다녔다. 현정은 보존실 경보 장치를 작동하고 직원들을 안전한 쪽으로 이동시켰다. 소라와 강재는 복제해 둔 증거 목록을 별도 단말기에 띄웠다. 미결이 보존실 유리창에 비쳤다. 그의 입 자리에 검은 선이 두 개 생겼다. “현재 장치가 요구하는 것은 사실 확인이 아닙니다. 확인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령자를 임의 지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걸 막을 권한은요?” 우빈이 물었다. “당사자 이의 신청, 기록 보존, 대리 수령 거부가 함께 접수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대신 답하면 실패합니다.” 현정이 고개를 들었다. “한 사람이 할 일이 아니군요.” 그들은 각자의 기록을 준비했다. 동식의 승차 진술, 가현의 근무 시간표, 명숙의 가계부, 정희의 매출 장부, 보존 필름과 인계 기록. 모든 문서에는 확인된 부분과 미확인 부분이 표시돼 있었다. 검은 남자는 책상 위에 다른 계약서를 놓았다. 깔끔한 흰 종이였다. ‘박현정이 모든 보관 책임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나머지 당사자 전원 면책.’ 현정은 종이를 읽고 고개를 저었다. “이 한 줄은 실종자가 누구인지, 누가 돈을 받았는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럼 여섯 분이 곤란해집니다.” 남자가 말했다. “우리가 곤란한 이유를 증거로 남겨야겠지요.” 검은 종이 칼날이 천천히 멈췄다. 남자는 처음으로 현정의 이름을 제대로 불렀다. “박현정 씨. 당신은 기록에 매달리느라 누군가를 구할 기회를 놓칠 겁니다.” 현정의 눈이 흔들렸다. 그 말은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가끔 서류의 형식을 지키느라 도움이 늦지는 않을까 밤새 고민했다. 그러나 그녀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타인의 이름을 허락 없이 쓰는 것이 구원이라면, 우리는 같은 피해를 다시 만드는 겁니다.” 심사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보존실 벽 전체에 거대한 네모가 열렸다. 그 안쪽에는 수많은 시계가 걸려 있었다. 모든 시계는 다른 시간을 가리켰다. 단 하나, 가장 높은 곳에 걸린 시계만 같은 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1998-11-05 07:00] 금고는 이제 그 시각에 누가 무엇을 받았는지 결정하려 하고 있었다. 우빈은 심사장으로 발을 내디뎠다. 누군가를 위해 이름을 적는 일이 아니라, 이름을 지우지 않기 위해 사실을 읽는 시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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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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