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여관 뒤편의 문턱은 생각보다 낮았다.
우빈은 다음 날 이른 아침 다시 그곳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건물 관리인과 시설 점검 담당자가 함께였고, 현정이 기록물 보호 절차를 준비해 왔다. 문턱 판을 걷어 내는 동안 누구도 신비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평범한 건물 수리였다.
그러나 나무판 아래에는 녹슨 작은 금고가 박혀 있었다. 낡은 철제 상자는 성인 주먹 두 개 정도의 크기였고, 주변에는 물에 젖었다 마른 종이들이 꽉 끼어 있었다. 금고 겉면에는 98-SM-03이라는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또 금고인가요.” 소라가 중얼거렸다.
“크기는 다르지만 같은 계열의 보관 장치인 것 같아요.” 현정이 말했다. “열 수 있는 권한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관리인이 소유주의 허가서를 보여 주었다. 안전 점검 중 발견된 유실물은 임의 폐기하지 않고 보존기관에 인계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정은 그 절차에 따라 인계 기록을 작성했다. 그때 우빈이 전날 봉투에서 나온 녹슨 열쇠를 꺼냈다.
금고의 열쇠구멍은 텅 비어 있었다. 대신 앞면에 세 개의 얕은 홈이 있었다. 첫 번째에는 ‘들어온 사람’, 두 번째에는 ‘나간 사람’, 마지막에는 ‘확인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가 찾는 건 열쇠 구멍이 아니네요.” 강재가 말했다.
가현은 어릴 적 오해경이 사람의 이름을 부르던 방식을 기억해 냈다. 반장은 사람을 세어 보고, 나간 사람을 다시 불렀다. 대답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적지 않고 ‘확인 중’이라고 표시했다.
“그렇게 하면 숫자가 안 맞는다고 상사에게 혼났어요. 하지만 반장님은 대답이 없다는 것과 사람이 없다는 건 다르다고 하셨죠.”
그녀는 금고 앞에 앉아 손가락으로 세 번째 홈을 가리켰다.
“우린 계속 마지막 사람을 찾는다고 했지만, 그분이 꼭 사라졌다는 보장은 없어요. 누가 어디로 갔는지 확인하지 못했을 뿐이에요.”
현정이 소방서 기록에서 확인된 피난자 이름들을 읽기 시작했다. 여덟 명을 모두 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3일의 구호 대상, 4일의 이송 대상, 5일의 귀가 확인 목록을 각각 다른 표로 적었다. 강재는 2010년에 합쳐진 항목을 붉은 펜으로 표시했다.
바깥에서는 관리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예상치 못한 번호였다. 전화를 받은 그는 잠시 듣더니 얼굴이 굳었다.
“소유주라고 하면서 당장 작업을 멈추랍니다. 이 건물에 지하 유실물이 없었다고요.”
“실제 소유주 번호인가요?” 현정이 물었다.
“아닙니다. 처음 듣는 번호예요.”
전화기에서는 기계적인 남자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보관물 자동 회수 예정. 건드린 모든 사람이 수령 책임을 집니다.’
우빈은 자신이 보았던 검은 양복의 남자를 떠올렸다. 그는 언제나 책임을 들먹이며 사람들의 손을 서류 위로 끌어당겼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소유주인 척하면 믿을 줄 아는군요.”
우빈이 말했다. 실제 소유주에게 먼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전달하고, 정식 인계 절차를 계속했다. 그 순간 금고 표면에서 금속 긁히는 소리가 났다.
[수령 책임 불인정]
[보관 내용 열람 가능]
세 개의 홈 가운데 세 번째가 미세하게 빛났다. 상자 뚜껑이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큼 열렸다. 안에는 돈도 귀중품도 없었다. 작은 종이 띠와 필름 한 통, 붉은 실로 묶인 명찰 두 개가 있었다.
명찰 하나에는 ‘오해경’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하나에는 이름 대신 ‘대리 확인자’라는 글자만 있었다. 명찰 뒤에는 잉크가 번진 손글씨가 남아 있었다.
‘직책은 대신할 수 있어도, 사람의 하루는 대신 받을 수 없다.’
가현이 명찰을 들고 오래 침묵했다.
“반장님 글씨 맞아요.”
그러나 현정은 그녀에게 재확인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래전 선생님이나 가족의 글씨를 닮았다는 기억만으로 원본 판정을 끝낼 수는 없었다. 가현은 자신이 알아본 특징을 설명했고, 현정은 별도의 대조가 필요하다고 기록했다.
강재가 필름 통을 들었다. 안에는 1998년 당시 소형 카메라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네거티브 필름이 들어 있었다. 보존 상태를 확인하기 전에는 함부로 펼칠 수 없었다. 관리인은 그 물건들을 촬영한 뒤 인계서에 서명했다.
그때 현정의 휴대전화에 한 줄이 나타났다.
[담보 소유권 확인 심사 개시까지 06:00:00]
“여섯 시간 남았습니다.”
“필름을 현상할 시간이 있을까요?” 소라가 물었다.
“원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전문 보존실에 맡겨야 해요.”
우빈은 이상하게도 초조하지 않았다.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하루를 잃는다고 장치는 경고했지만, 성급히 결론 내린다면 바로 그 하루를 또 다른 사람에게 넘겨 버리는 셈이었다.
그들이 작업을 끝내고 나왔을 때 작은 문의 창에 사람 그림자가 비쳤다. 작업복을 입고 손에 급여봉투를 든 여자였다. 그녀는 그들을 바라보는 대신 문턱을 내려다보았다.
유리 위에 성에처럼 문장이 떠올랐다.
‘내 이름을 찾지 말고, 내가 열어 둔 문을 보세요.’
소라가 그 글씨를 보는 동안 그림자가 천천히 사라졌다. 우빈은 창고 문을 다시 잠그는 관리인의 손을 지켜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오래전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려면, 얼굴을 찾는 일보다 그가 남긴 빈자리를 지키는 일이 먼저였다.
그가 돌아서자 휴대전화에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다.
[원본 00 / 담보 현물 회수 지정]
[수령자 후보: 박현정]
우빈은 걸음을 멈췄다. 현정은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서류를 지켜 온 사람이었다. 금고가 이번에는 그 손을 노리고 있었다.
제13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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