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식의 정비소에는 아침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창이 하나 있었다.
창문 너머에는 차고지 담벼락이 붙어 있었고, 담벼락에는 버스의 오래된 노선 번호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우빈은 그 숫자를 보며 밤새 녹음한 임동식의 진술을 들었다. 녹음은 동식의 동의를 받고 진행했고, 본인이 원하지 않는 부분은 중단할 수 있게 했다. 소라는 그런 절차를 하나도 빼놓지 않았다.
“여덟 명을 태웠다는 건 좌석을 세어 봤기 때문입니까?”
“예. 바닥에 누운 분도 있어서 두 번 셌습니다.”
“일곱 명이 내렸다는 건요?”
“병원 앞에서 이름을 불렀어요. 의사가 확인하러 나오기도 했고.”
“여덟 번째 사람이 승객이 아니라는 문구는 그때도 보였습니까?”
동식은 고개를 저었다. “저 글씨는 지금 처음 봅니다.”
동식의 말은 일관됐지만 하나의 빈칸을 채워 주지 못했다. 그는 마지막 좌석을 확인하지 못했다. 사고 뒤 구호 작업이 이어지는 혼란 속에서 버스는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이후 폐차될 때까지 운행일지가 부분적으로 분실됐다.
“사람을 찾으려다가 오히려 다른 사람을 미하차자로 만들어서는 안 돼요.” 소라가 말했다.
우빈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불안이 이름 하나를 빨리 채우려는 욕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오후, 소라는 어머니 이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정민은 오래전 사고와 관련해 자신이 기억하는 바를 여러 번 증언했다. 그러나 4일 새벽 버스에 누가 탔는지까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혼란 속에서 그녀가 실제로 본 장면과 나중에 들은 이야기가 뒤섞여 있었다.
“엄마, 그날 버스가 기억나?”
“문이 안 열렸다는 소리는 들었어. 그런데 나는 버스 안에 있지 않았어.”
“오해경 씨는?”
“그 사람을 봤다고 생각해 왔는데… 사고 전날인지 뒤인지 자신이 없어. 얼굴보다 목소리가 남아 있어.”
“어떤 목소리?”
이정민은 한참 말을 고른 뒤 대답했다.
“울지 말고 이름을 말하라고 했어. 이름을 알면 적을 수 있고, 적으면 잊지 않을 거라고.”
소라는 전화를 끊은 뒤 작은 수첩에 ‘직접 목격 아님’이라고 분명히 써 놓았다. 어머니의 기억까지 이야기의 빈칸에 끼워 맞추고 싶지는 않았다.
강재는 동식의 승차권 뒷면에서 희미한 인쇄 자국을 찾아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문구가 빛을 비스듬히 비추자 드러났다.
[1~7번 / 구호 대상]
[8번 / 탑승 검증표]
“사람이 아니라 표 자체가 여덟 번째였어요.”
“그럼 동식 씨는 왜 여덟 명이라고 기억한 걸까요?” 우빈이 물었다.
“정말 여덟 명을 보았을 수도 있고, 나중에 표를 여덟 장 확인했을 수도 있죠. 둘은 달라요. 아직 결론을 낼 수 없습니다.”
강재가 인쇄 자국을 확대해 보였다. 여덟 번째 표에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다른 항목이 있었다.
[확인자: 당일 최종 근무 책임자]
[소속: 퇴근하지 않는 자]
단어가 소름 끼칠 만큼 매끈했다. ‘퇴근하지 않는 자’는 처음부터 사람의 별명이 아니었다. 어떤 자리를 가리키는 명칭이었을 가능성이 커졌다. 누군가 이름을 바꾸고 역할을 이어받아도 같은 수령인이 남는 구조였다.
소라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처음 그 자리에서 돈을 받은 사람도 모를 수 있겠네요.”
“받은 사람이 아니라 받도록 지정된 자리일 수 있어요.” 현정이 대답했다. “실제 계좌 흐름은 따로 확인해야 하지만.”
그때 차고지에서 짧은 경적이 울렸다. 동식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저 버스는 배터리가 없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 안전 관리자의 협조로 확인한 사실이었다. 버스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앞문 안쪽에서 노란 불빛이 한 번 켜졌다. 그 빛 아래 빈 운전석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운행 종료 확인 요청]
[당일 미수령자 1명]
[대리 확인 가능]
우빈이 문 앞으로 갔다. 부품이 고장 난 버스였지만, 문 안쪽의 공기는 차갑고 습했다. 문이 아주 조금 열렸을 때 붉은 손잡이 하나가 보였다. 그 손잡이에는 ‘운행 종료’라는 글씨가 있었다.
“저걸 당기면 마지막 승객이 내린 걸로 되는 건가요?”
미결이 차고지 벽의 그림자에서 나타났다. 사람의 윤곽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문장을 적을 수 있는 빈자리만 남아 있었다.
“그렇게 기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내렸다는 증거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안 당겨요.”
“종료 기록이 없으면 버스는 계속 운행 중으로 분류됩니다.”
“기록이 잘못됐다면 분류가 틀린 거겠죠.”
우빈은 동식에게 시선을 돌렸다. “기사님이 기억하는 마지막 장소가 어디였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운행 종료 서명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동식은 공책을 펼쳤다. 자신이 사고 뒤 적어 둔 위치 메모가 한 장 남아 있었다. 병원 이름 아래 연필로 쓰인 주소는 처음 보는 곳이었다.
‘동백여관 뒤편 / 새벽 다섯 시 십 분 / 작은 문.’
“왜 여기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동식이 말했다. “그런데 이 문 앞에서 누군가가 내게 표를 돌려달라고 했어요.”
“누구였습니까?”
“오해경 씨라고 생각했죠. 목소리가 같았으니까.”
그가 공책을 덮는 순간, 빈 운전석에 놓인 종이가 두 장으로 갈라졌다. 첫 장에는 ‘승객 하차 완료’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다른 장에는 한 줄만 쓰여 있었다.
[종착지 변경 / 아직 끝나지 않은 11월 4일]
우빈은 이제 봉투 속 돈보다 동백여관 뒤편의 작은 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라진 것은 하루 자체가 아닐지 몰랐다. 그 하루에 누가 남았는지 알려 줄 마지막 출입 기록이었을 것이다.
제13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