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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30화
PAYLUA ORIGINAL · 제130화

130화. 누구의 하루도 담보가 아니다

빚을 먹는 금고 · 4,087자

오프라인 책장
정산이 시작되기 열일곱 분 전, 정태수는 아들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가 직접 적은 진술서였다. 1998년 11월 3일 새벽, 삼목 철공소에서의 일이 시간 순서대로 쓰여 있었다. 문을 닫았다는 사실, 그때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사실, 구조를 도우러 온 사람들, 자신이 시간을 임시 기록했다는 사실, 그리고 확인하지 못한 사람의 이름을 대신 쓰지 않겠다는 문장까지. “이걸 내라.” 우빈은 종이를 받아 들고 마지막 줄을 읽었다. ‘본인은 타인의 노동시간을 수령하거나 대표 수령한 사실이 없으며, 임금 지급 여부는 별도의 증거로 확인되어야 함.’ “아버지.” “어제 네가 말한 걸 생각했어. 잘못한 일을 설명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받았어야 할 돈을 내 이름으로 가져오는 건 다르다고.” 태수는 바닥을 잠깐 바라봤다가 덧붙였다. “오해경 씨를 찾으면 내가 사과할 거야. 사과가 받아들여지든 아니든. 그리고 그때 못 적은 시간표는 지금이라도 제대로 적고 싶다.” 우빈은 아버지의 손에서 펜 자국을 보았다. 사고 때의 상처보다 훨씬 작은 흔적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자국이 어쩐지 더 무거워 보였다. 현정이 실물 기록을 분류했다. 1998년 종료 확인서, 2010년 봉산 재처리 로그, 실제 임금 지급 여부에 관한 확인 가능한 자료, 새로 확보한 증언들. 어느 문서에도 거짓으로 ‘전액 지급 완료’라고 쓰지 않았다. 반대로 1,108,231시간 전체가 실제 일한 시간이라고 적지도 않았다. “이건 두 개의 질문이에요.” 현정이 말했다. “어떤 시간이 실제로 일한 시간인가. 그 시간에 해당하는 임금이 실제로 지급됐는가. 두 질문은 서로 대신할 수 없어요.” 장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을 바꾼 뒤 처음으로 자기 과거의 기록을 스스로 제출하는 자리였다. “저는 새벽 두 시 오십 분부터 세 시 십칠 분까지 현장에 있었습니다. 임금을 받았는지는 당시 자료가 남지 않았어요.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예요.” 정태수도 말했다. “제가 기록한 시간 가운데 일부는 기억이 흐립니다. 추정이라고 표시해 주세요.” 소라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남기겠습니다.” 미결이 조용히 나타났다. 유리문 너머 그의 얼굴은 이전보다 사람과 비슷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눈동자 대신 빈칸이 있었다. “이의 신청 접수 권한을 회복했습니다. 원본 00의 자동 정산에 반대 의견을 올릴 수 있습니다.” “올린다고 끝나지는 않겠죠?” 우빈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시스템이 먼저 가정한 사실과, 실제로 확인된 사실을 나눠 기록할 수 있습니다.” 우빈은 문 앞에 선 검은 양복의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여전히 대표 수령인을 요구했다. 얼굴이 없는 사람이 얼굴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내놓으라고 했다. “정우빈 씨, 마지막 기회입니다.” “우리가 뭘 받아야 하는데요?” “미지급 시간 전부를 수령할 권리입니다.” “그걸 받으면 누가 임금을 받는 거죠?”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받을 돈과 일한 시간을 구분해야죠. 한 사람이 그 시간을 받아 버리면, 실제로 일한 사람은 어디로 가요?” 미결이 장부 첫 줄을 가리켰다. 붉은 숫자 밑에 작은 글씨가 나타났다. [원본 노동시간: 98-SM-03 / 확인 필요] [자동 이월 보관일수: 별도 항목] “처음부터 달랐네요.” 강재가 말했다. “원본에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2010년에 보관일수를 노동시간으로 바꿔 계산한 겁니다.” 그는 비교표를 투명문 앞에 놓았다. 서명된 종료 확인서에 기록된 일곱 사람의 시간을 별도로 합산하고, 지급 기록이 확인되지 않은 구간을 표시했다. 동의 없는 자료는 여전히 미확인으로 남겼다. 현정이 최종 이의 신청을 제출했다. ‘퇴근 시각 미등록은 무기한 근로 제공에 대한 동의가 아님. 보상금 보관기간을 노동시간으로 환산한 2010년 재처리 규칙의 적용 중지 요청. 실제 미지급 임금에 대한 조사 및 지급 판단은 별도 절차 유지.’ 검은 남자의 어깨에서 종이 조각이 흩어졌다. 장부 위의 숫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남자는 끝까지 웃고 있었다. “그럼 누가 책임을 집니까?” 우빈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각자 한 일을 확인하겠습니다. 숨긴 기록을 만든 사람의 책임도요. 아무것도 안 한 사람에게 대신 갚으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남자가 뒤로 밀렸다. 그의 구두 밑에 시계 초침이 흩어졌다. 제일 먼저 태수의 그림자에서 검은 장갑이 벗겨졌다. 다음으로 장가현의 손목에 감긴 오래된 흰 붕대가 풀렸다. 마지막으로 보존실 벽시계가 조용히 한 칸 움직였다. [미지급 시간 자동 이월: 중지] [1,108,231시간 일괄 정산: 보류] [실제 노동시간 및 임금 지급 여부: 개별 확인] [부당 지급 확인서의 법적 효력: 별도 검토] 누군가는 환호하지 않았다. 박현정은 자동 이월이 멈췄다는 기록을 다시 확인했고, 소라는 가현에게 변동된 사실을 설명했다. 장가현은 잠시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일을 마쳤다는 건 인정받은 거네요.” “최소한 계속 일하고 있다는 허위 기록은 멈췄습니다.” 소라가 말했다. “받을 돈이 있다면 찾는 일은 계속해야 해요.” 가현이 웃었다. “그래요. 이번에는 기다려 볼게요. 누군가 내 이름으로 대신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 그들이 제출한 자료는 마침표가 아니었다. 실제 미지급 임금이 얼마인지, 관련 기록을 훼손하거나 지급을 허위로 확인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해야 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연락할 방법이 필요했고, 돌아가신 사람의 유족에게는 알릴 자격과 범위를 먼저 살펴야 했다. 누군가 서류의 이름을 적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빚을 떠안는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현정은 창고 문을 닫으며 다음 조사 일정이 적힌 메모를 붙였다. 마법이 멈춘 뒤에 남는 것은 오래 걸리는 일들이었다. 우빈은 아버지를 찾아갔다. 태수는 복도 끝 의자에 앉아 손을 펴고 있었다. 자신의 그림자가 다시 발밑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는 듯했다. “끝났나요?” 태수가 물었다. “하나는요.” “오 반장은?” “아직 찾아야 해요.”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한테서 받아야 할 용서가 있다면 그건 내 일이겠지.” 우빈은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의자 옆에 앉아 잠시 같이 있었다. 그날 저녁, 장부의 숫자가 사라진 뒤에도 바깥세상에는 많은 시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버스 기사들은 교대했고, 식당의 주방 직원들이 앞치마를 풀었고, 경비원은 퇴근 도장을 찍었다. 무엇이 특별하게 달라졌는지 대부분의 사람은 알지 못했다. 단지 누군가의 하루가 다른 사람의 빚으로 넘겨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밤 열 시가 넘어 현정에게서 전화가 왔다. “좋지 않은 소식이 있습니다. 봉산 장부의 이월 규칙이 중지되면서, 누가 그 숫자를 담보로 돈을 빌렸는지 거래 기록이 열렸어요.” “실제 돈의 흐름이요?” “일부는요. 지급 계좌의 명의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회사도, 백재헌도 아니에요.” 우빈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누구 이름인데요?” 현정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종이를 여러 장 넘기는 소리가 났다. “거래 원장에는 실명 대신 문구 하나가 있어요.” [담보 수령자: 퇴근하지 않는 자] [최초 대출일: 1998-11-04] [담보 물건: 실종자의 마지막 하루] 우빈은 창밖을 보았다. 거리에는 늦은 밤까지 불이 켜진 가게들이 있었다. 그 아래를 누군가 걸어가고 있었다. 오래된 작업화를 신은 여자가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서서 자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초침이 열두 시에 멈췄다. 우빈이 창문으로 다가갔을 때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을 분명히 볼 수 없었지만 한 손에는 낡은 급여봉투가 들려 있었다. 봉투 겉면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해경.’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사람들 사이로 여자가 사라졌다. 우빈의 휴대전화에 마지막으로 문장이 하나 도착했다. [미지급 시간 정산 종료] [새 채권 등록: 잃어버린 하루 1건] [담보 소유권 확인 예정: 48시간 후] 정우빈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 현정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지금부터는 임금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았던 하루를 찾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우빈은 불 꺼진 횡단보도를 오래 바라봤다. 아무도 대신 갚을 수 없는 빚이라면, 누구도 대신 가져가서는 안 되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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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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