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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29화
PAYLUA ORIGINAL · 제129화

129화. 지워지는 급여대장

빚을 먹는 금고 · 3,030자

오프라인 책장
원본 장부를 지우는 데에는 불이 필요하지 않았다. 중앙기록관리원의 서버실에서 낡은 전산기가 다시 켜졌다. 보존 장치에 접속한 직원은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았는데, 화면에는 이미 완료된 작업 목록이 표시됐다. [98-SM-03 근무 자료 이관] [이관 유형: 지급 완료 보존] [보존 원본 폐기 예정] 서류를 실제로 폐기하려는 사람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산상 ‘지급 완료’ 처리만으로도 나중에 임금을 청구할 때 중요한 근거를 잃을 수 있었다. 현정은 보존 책임자에게 즉시 절차를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시스템에 완료라고 뜬다고 파기할 수는 없습니다. 원본 폐기 근거를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보관실 출입을 잠갔다. 그러나 서버실 천장에서는 종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켜지 않은 문서 세단기 소리였다. 우빈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정산까지 네 시간이 남았다. 1998년 종이 서류는 정식 증거로 보존 중이었고, 장가현이 가져온 종료 확인서 원본은 아직 그의 손에 있었다. 2010년 재처리 로그와 2026년의 자동 이관 명령이 같은 출처에서 비롯됐다는 기술 검증도 진행 중이었다. “그럼 여기서 시간을 끌면 돼요.” 소라가 말했다. “실제 자료를 먼저 지키죠.” 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창고 안에서 뛰는 대신, 장부가 이미 가리킨 현실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 먼저였다. 현정은 원본을 분리 보관하고, 검증용 사본에는 각기 다른 식별값과 반출 이력을 남겼다. 강재는 회계 자료에 미지급 임금이 지급된 것처럼 표시된 날짜들을 정리했다. 그러던 중 강재가 한 항목에서 손을 멈췄다. “이건 수수료가 아니에요.” “뭔데요?” 우빈이 물었다. “임금 대체 지급 보전금. 예전에 한 번 지급한 것으로 처리한 뒤, 지급 확인서를 담보로 또 다른 계약을 체결했어요.” “실제로 사람들 계좌에 돈이 들어갔나요?” “그건 아직 확인할 수 없어요. 하지만 지급 근거가 된 확인서는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서명이 일곱 명을 대표한다고 되어 있어요.” 태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내 이름이겠지.” 서류에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BJH-00 / 대체 지급 확인] 소라가 서류를 집었다. “한 사람이 받은 건지, 계정이 지급 완료라고 처리한 건지부터 나눠야겠어요.” 그때 창밖에서 바람이 세게 불었다. 보존실의 투명문 안쪽에 검은 물이 차오르는 듯한 얼룩이 생겼다. 얼룩은 금세 글자가 되었다. ‘일곱 명의 임금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우빈은 자신이 잘못 읽었나 싶어 눈을 비볐다. 얼룩은 다시 번지더니 사람 형상이 되었다. 낡은 장화를 신은 사람. 손에는 종이 명찰이 붙어 있었다. 명찰에는 이름 대신 작업 시간이 적혀 있었다. [23:30~04:08] 오해경이었다. 가현이 뒤로 물러섰다. “반장님?”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명찰에 적힌 시간이 눈물처럼 흘렀다. 손끝이 허공에서 종이를 넘기는 동작을 반복했다. 우빈은 지금 눈앞의 존재가 실제 오해경의 혼인지, 시스템이 기록을 이용해 만든 형상인지 알 수 없었다. “저 모습만 보고 살아 있다거나 죽었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미결이 말했다. “금고는 기억을 사람의 모양으로 만듭니다.” 가현은 대답 없이 자신의 종료 확인서를 펼쳤다. 떨리는 목소리로 읽었다. “오해경. 1998년 11월 3일, 밤 열한 시 삼십 분부터 새벽 네 시 팔 분까지. 일을 마치고 구급차에 올랐어요. 그 뒤 행적은 미확인.” 그림자의 명찰에서 마지막 두 글자가 떨어졌다. '미확인.' 순간 복도의 그림자가 길게 뻗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문 너머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또렷하지 않았지만 가슴에는 작은 인식표가 달려 있었다. [BJH-06 / 자료 회수] “이미 지급된 돈입니다.” 남자가 말했다. “지급 완료 처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원본 보전을 중지해야 합니다.” 현정이 문을 열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 결정은 적법한 보존 절차에 따라 합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우빈의 휴대전화에 일곱 개의 선택 버튼이 떠올랐다. 각 버튼에는 작업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나를 누르면 그 사람이 임금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고, 나머지는 미확인으로 남는다고 했다. “한 사람만 고르시면 나머지 손실을 보전하겠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우빈은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그것도 거짓이죠. 누구한테 얼마를 지급했는지 증거가 없잖아요.” “확인이 늦어지면 정산이 진행됩니다.” “그럼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남길 겁니다.” 남자가 잠시 침묵했다. 그림자의 소매가 흩날리더니 문틈으로 가느다란 검은 종이가 밀려 들어왔다. [최종 지급 확인 원본] [서명란: 오해경] 가현이 몸을 굳혔다. 서명은 그녀가 기억하던 오해경의 필체를 흉내 내고 있었다. 그러나 획 끝의 먹물이 마르지 않았다. “우리 반장님은 저런 종이에 서명한 적 없어요.” “그걸 어떻게 확신합니까?” 남자가 물었다. 가현은 잠시 대답을 골랐다. “서명을 안 했다고 단정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본 적 없는 종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실제로 있는지 조사합시다.” 말이 끝나자 젖은 서명의 글자가 흐릿해졌다. 시스템은 여전히 선명한 이름 하나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더는 빈칸을 사람으로 채우지 않았다. 금고의 시계가 빨라졌다. [정산 개시까지 00:17:00] 우빈은 자기 손바닥을 펼쳤다. 처음 금고에 채무 계약서를 넣던 날, 그 손은 너무 빨리 움직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적힌 글씨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 이제는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종이에 닿기 전마다 그 뒤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노동을 지키려는 일에서조차 자신이 영웅이 되고 싶어 한다면, 금고는 그 욕심까지 이용할 것이다. 현정이 보존실의 증거 목록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강재는 지급 내역과 출근 기록을 분리한 비교표를 올렸다. 소라는 피해자들이 공개를 허락한 진술서를 정리했다. 우빈은 문 앞에 놓인 도장을 바라봤다. 이제 열일곱 분 안에 어떤 답을 내야 했다. 도장이 아니라, 기록 그 자체가 답할 수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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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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