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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25화
PAYLUA ORIGINAL · 제125화

125화. 일을 마친 사람의 이름

빚을 먹는 금고 · 2,568자

오프라인 책장
장은서는 이름을 바꾼 이유를 스스로 말했다. 본래 이름은 장은서였다. 지금은 법적으로 장가현이라는 이름을 쓴다. 삼목 철공소가 폐업한 뒤 몇 년 동안은 예전 이름으로 살았다. 이름을 바꾼 것은 금고를 피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따라다닌 우편물이 자기 생활 전체를 설명하는 것이 싫어서였다. 하지만 개명 절차를 끝낸 날에도 옛 우편은 그대로 왔다. 그래서 은서는 이름을 바꿨다는 사실이 무엇을 해결해 주지 않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2010년부터 이상한 우편물이 오기 시작했다. 한 번도 정식 직원으로 등록된 적 없는 공장의 근무 연장 통지서였다. 반송하면 다음 달에 또 왔고, 주소를 옮기면 새집으로 도착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우편물이 은서가 아니라 그의 남동생 앞으로 왔다. “제 이름을 빼 달라고 신청했어요. 그런데 이름을 빼려면 제 뒤를 이어 근무할 사람이 필요하다더군요.” 벤치 위에서 은서가 꺼낸 서류에는 ‘임시 책임자 변경’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남동생의 이름 옆에 낯선 서명이 찍혀 있었다. “동생은 그날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제 시간을 물려받았다고 적혀 있었어요.” 우빈은 2010년의 시스템이 아버지의 부재와 후손의 이름을 이어 붙였던 일을 떠올렸다. 금고에게는 사람이 태어나기 전이든, 일을 시작하기 전이든 상관없었다. 먼저 빈칸을 만들고 그 안에 사람을 넣으면 됐다. 소라가 물었다. “오해경 반장은 어떻게 되셨나요?” 은서는 우산 끝으로 흙바닥에 작은 선을 그었다. “제가 알기론 살아서 현장을 나왔어요.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어서요. 비 때문에 다들 정신이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구급차에 올랐거든요.” 태수가 눈을 크게 떴다. “살았다고?” “구급차에는 올라탔습니다. 그 뒤는 제가 직접 못 봤어요.” 태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우빈은 아버지가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은서를 바라봤다. 살아서 현장을 나왔다는 것과 그 뒤에도 살아 있다는 것은 다른 사실이었다. 이제까지 수없이 배웠지만, 가장 절실한 순간에는 구별하기 힘든 말이었다. “오해경 씨의 가족과 연락이 닿았나요?” “저도 몰라요. 대신 한 장을 가지고 있어요.” 은서는 천가방 바닥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1998년 11월 3일 응급근무 종료 확인서였다. 정식 서식도 아니었고 회사 직인도 없었다. 다만 일곱 명의 손글씨가 차례로 적혀 있었다. 이름 옆에는 들어온 시각과 돌아간 시각이 있었다. “오 반장은 회사에서 시간 적어 주지 않으면 우리끼리라도 써 두라고 했어요. 나중에 돈 받을 때 필요하다고.” 소라는 종이를 받지 않고 소장 의사를 확인했다. 은서는 원본을 본인이 보관하되 사본을 공적인 절차로 제출하는 데 동의했다. 불필요한 개인정보는 가리고 확인된 범위만 사용할 예정이었다. 태수의 시선이 첫 번째 줄에 멈췄다. [정태수 / 00:45~03:12] “나도 있었구나.” “있었죠.” 은서가 말했다. “문을 잠근 사람도 그날 일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일을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오해경 / 23:30~04:08] 태수는 그 시간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퇴근을 했는데…” “그렇죠. 여기에는 끝나는 시간이 있어요. 금고에는 그게 없을 뿐.” 은서가 마지막 줄을 가리켰다. 자기 이름 옆에는 03:17이라는 숫자가 있었다. [장은서 / 02:50~03:17 / 업무: 피난자 인원 확인] “제가 문을 열지 않았어요. 이정민 씨가 열었죠. 저는 안에 몇 명이 남았는지 세어서 알려 줬어요. 그래서 그런지 모든 자료에 제 이름이 지워졌더라고요. 문을 연 사람도, 문을 잠근 사람도 아니니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거죠.” 우빈은 그 말을 들으며 수첩을 펼쳤다. 일의 시작과 끝을 적는 것은 단순히 돈을 받기 위한 일이 아니었다. 자기가 그곳에 있었다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 했다는 기록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표의 맨 아래에는 이름 없는 여덟 번째 줄이 있었다. [현장 지원 / 03:17~미기재] “이분은 누구예요?” 소라가 물었다. 은서가 종이를 뒤집었다. 거기에는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작은 문이 있었다. 문 옆에 세 번, 쉬고 두 번, 마지막 한 번을 의미하는 점 여섯 개가 찍혀 있었다. “그날 마지막으로 현장에 온 사람입니다. 우리도 이름을 몰랐어요. 다만 그분이 오 반장에게 이렇게 말했죠.” 은서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돈을 못 받았다고 해서, 그 시간을 누군가 소유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그 순간 우빈의 휴대전화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미지급 노동시간 원본 증거 접수 가능] [대상: 98-SM-03] [이의 신청 기한 47:59:59] “기한이 줄었네요.” 강재가 말했다. 소라는 화면을 들여다봤다. 숫자 밑에 새 문장이 있었다. [미등록 제8근무자] [자발적 시간 인수 대기] 우빈은 종이를 내려다봤다. 시간표의 빈칸을 메우면 모두가 살 수 있다고 장치는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빈칸에 이름을 쓰는 사람은 다시 한 번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갚게 될 터였다. “여덟 번째 사람을 찾아야겠어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빚을 떠안도록 만들려고 찾는 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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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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