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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22화
PAYLUA ORIGINAL · 제122화

122화. 퇴근하지 못한 반장

빚을 먹는 금고 · 2,759자

오프라인 책장
오해경의 이름을 찾는 데에는 열두 분이 걸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일했다는 곳을 확인하는 데에는 스물두 해가 걸려 있었다. 박현정은 서류철 두 개를 꺼내 놓았다. 1998년 삼목 철공소의 일용직 명부와, 2001년 폐업 정산 자료였다. 어느 쪽에도 오해경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대신 오래된 보건소 신고 기록의 작업반장란에 연필로 ‘해경’이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 “성도 없고 주민번호도 없네요.” 소라가 말했다. “그래서 없었던 사람이라고 처리했을 겁니다.” 현정이 대답했다. “하지만 명부가 없다는 것과 사람이 없었다는 건 다르죠.” 태수는 탁자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오 반장은 쉰 살쯤 됐어. 혼자 사는 분이라고만 들었고. 사고 당일엔 배수로가 막혀서 제일 먼저 물에 들어갔지. 사람을 부를 때도 이름 대신 ‘셋째 조!’라고 했어.”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예요?” “내가 빗장을 걸기 전. 그때 나를 말렸어.” 태수는 진술이 녹음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계속했다. 오해경이 왜 말렸는지 당시에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누군가 문을 열어 두면 물이 차올라 기계가 망가지고, 문을 닫으면 사람을 확인할 시간이 사라졌다. 자기 눈앞의 피해부터 막고 싶었던 그는 문을 닫았다. “그분이 뭐라고 하셨어요?” 우빈이 물었다. “저 안에 있는 아이만 사람이냐고. 밖에서 물 퍼내는 사람들도 사람이라고. 그래서 한 명씩 확인하고 닫자고.” 우빈은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저지른 일의 다른 얼굴을 알게 되는 순간마다 그를 미워하기도, 용서하기도 어려워졌다. 센터 내부 연락망에는 사고 당일 응급 처치 인력에 관한 자료도 있었다. 누군가는 발목을 다쳤고, 누군가는 폐 속에 들어간 흙탕물 때문에 기침을 멈추지 못했다. 기록은 '경상 2명'으로 끝났지만, 그 옆의 이송 시간은 모두 달랐다. 우빈은 숫자만 보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생각했다. 한 줄을 지우는 데에는 몇 초면 충분했을지 몰라도, 그 줄 아래에 있었던 몸은 수십 년을 살아야 했다. 현정이 서류철 맨 끝에서 얇은 메모지를 꺼냈다. 당시 산재 조사 자료의 부속 사진에 끼워져 있던 종이였다. 젖었다 말라 구겨진 메모에는 검은 볼펜으로 시간이 적혀 있었다. 03:07 — 펌프 2대 가동. 03:11 — 삼목 3조 인원 미확인. 03:17 — 비상통로 열린 후 인원 재점검. 그 아래에 숫자 일곱 개가 세로로 있었다. 숫자마다 동그라미와 세모가 붙어 있었다. “일곱 명이 근무했다는 뜻일까요?” 강재가 물었다. “그때 우리가 일곱이었다.” 태수가 말했다. “나까지 여덟. 오 반장은 출근부 대신 사람을 직접 세었어. 회사가 안 적어 주면 자기가 적는다고.” “메모지는 누가 보관했어요?” “보건소 구조 담당이었을 거다. 나중에 낸 진술서에서 이 종이를 본 기억이 나.” 소라는 문서를 휴대전화로 촬영하지 않았다. 원본 출처가 적힌 사진을 별도로 요청하고, 태수의 기억과 기록에서 확인되는 사실을 두 줄로 나누어 메모했다. 우빈도 그 구분을 읽었다. 아버지의 후회가 진실을 전부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점은 이제 알고 있었다. 그때 관리원 창밖으로 배송 오토바이 한 대가 들어왔다. 헬멧을 벗은 중년 남자는 정문 경비에게 작은 봉투를 전했다. 발신인은 빈칸이었다. [수취인: 정태수] [물품: 미퇴근 통지서] 경비가 봉투를 건네려 하자 태수가 손을 뻗었다. 우빈이 급히 그의 팔을 막았다. “아버지, 지금은 받지 마세요.” “내 이름인데.” “이름이 있다고 받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뭔지부터 알아야죠.” 현정은 기관의 접수 절차대로 봉투를 등록했다. 경비실 책상에 놓인 봉투는 저절로 부풀어 올랐다. 종이 안쪽에서 젖은 작업복 냄새가 났다. 방금 세탁한 줄무늬 셔츠가 봉투의 입구를 비집고 나오더니 소매 하나가 바닥을 기었다. [근무 종료 확인 필요] [확인자 불응 시 근무 연장] 소라가 경비를 문밖으로 안내했다. 셔츠 소매는 탁자 위의 메모지 사진을 향해 움직였다. 마치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사람의 팔 같았다. 태수가 사진을 집어 들자 셔츠가 움찔했다. 우빈은 그가 무언가를 대신 떠안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태수는 한 사람의 이름을 읽었다. “오해경. 당신은 그날 퇴근해야 했어.” 셔츠는 멈췄다. 비린 물 냄새가 조금 옅어졌다. 태수는 이어 말했다. “나는 그 사실을 기록하지 못했고. 당신이 어디로 갔는지도 확인하지 못했어. 다만 당신이 계속 일하겠다고 한 적은 없어.” 소매 끝이 종이처럼 얇아졌다. 봉투가 납작해지면서 그 안에서 물에 번진 도장 하나가 떨어졌다. [삼목 철공소 / 야간 작업 보조 확인] [관리번호: 98-SM-03] 현정은 도장을 확대해 보다가 눈을 들었다. “이건 이상합니다. 회사 기록에는 그날의 야간조가 전원 오후 여섯 시에 퇴근했다고 나와 있어요.” 강재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럼 새벽 기록 자체가 정식 출근부에서 빠진 거군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현정이 종이 뒷면을 가리켰다. “98-SM-03은 삭제된 작업조가 아니라, ‘작업 완료를 기다리는 조’로 분류돼 있어요.” 그날 밤, 철공소에서 나간 사람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기록에서만 아무도 퇴근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빈은 일곱 개 동그라미를 다시 세었다. 마지막 세모 옆에는 작은 글씨가 하나 적혀 있었다. ‘오 반장, 아이를 데리고 나감.’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그럴 리가 없어. 아이를 데리고 나간 건 이정민 씨였는데.” 그 순간 세모 위에 젖은 손가락 자국이 나타났다. 누가 누구를 구했는지, 오래된 장부는 또다시 두 사람의 행동을 하나로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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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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