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보관관은 누구입니까?”
중앙기록관리원 지하의 전화가 물었다.
그들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차문수는 죽은 뒤에도 출근한 사람이 아니었다. 박현정은 기록을 지키는 직원이지 보상금의 주인이 아니었다. 경화는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지 승인한 사람이 아니었다. 우빈이나 소라도 빚을 대신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전화는 답을 요구했다.
[직책 말소 처리]
[기존 담당자 성명 필수]
현정이 낡은 전화를 올려다보았다. 수화기는 전시함에서 옮겨 와 지하 책상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어두운 유리창에는 사람이 앉아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비쳤지만 실제 의자는 비어 있었다.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을 보관관으로 확정하려는 겁니다.”
“그럼 없다고 쓰면요?” 우빈이 물었다.
“시스템이 안 받을 가능성이 높아요.”
소라는 그 말을 듣고 기록실에 가져온 자료를 차례로 펼쳤다. 최초 로그, 재처리 로그, 차문수의 퇴직 기록, 손경화의 반려표, 외부 계약 자료. 어느 한 장도 혼자서 사건의 답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란히 놓이자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2010년의 봉산 작업은 사람이 아니라 '자리'를 만들었다. 누가 앉든 보관 수익을 승인한 것으로 취급하는 자리였다. 자리가 비면 그 빈자리마저 새로운 수익으로 계산됐다.
“이걸 없애는 방법은 자리의 주인을 찾는 게 아닐지도 몰라요.” 소라가 말했다.
“어떻게요?”
“애초에 그런 자리를 만들 수 있었는지 묻는 거예요.”
우빈은 기록을 바라봤다. 금고가 가장 잘하는 일은 질문을 바꾸는 것이었다. '돈을 갚았습니까?'를 '누가 대신 갚습니까?'로 바꾸고, '이름이 없습니까?'를 '누구 이름을 넣겠습니까?'로 바꾸었다. 이제 또 '직책이 부당합니까?'를 '직책 주인이 누구입니까?'로 바꿔 놓았다.
현정은 공식 기록 정정 요청을 다시 작성했다. 그러나 신청서의 빈칸에 억지로 누군가의 이름을 넣지 않았다. 대신 부속 설명서를 붙였다.
‘제1보관관 직책의 생성 근거가 확인되지 않음. 실재 담당자 확인 전까지 해당 직책에 귀속된 수수료와 책임의 자동 산정 중지 요청.’
전산 시스템은 이를 접수하지 않으려 했다. 화면은 붉게 변했고, 문장의 마지막에서 마우스 포인터가 멎었다. 동시에 보존실 벽을 따라 동전 소리가 울렸다. 수많은 종이 동전이 책상 아래에서 굴러 나왔다.
[보관관 부재 시 강제 승계]
[최초 현장 책임자: 정우빈]
우빈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여전히 금고는 처음 자신을 잡아끌었던 방식으로 접근했다. 가족을 구하기 위해 빚을 먹는 금고를 열었던 밤. 그가 잊고 싶어 하던 선택을 다시 들이밀고 있었다.
정태수의 목소리가 휴대전화에서 들렸다. 아버지는 현정이 요청한 증언을 확인하러 관리원에 도착하는 중이었다.
“우빈아,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마.”
“아버지.”
“그날 내가 문을 늦게 열었던 건 내 선택이었어. 그건 내가 설명해야 해. 그렇다고 네가 오늘 보지 않은 서류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어.”
우빈은 목소리의 끝을 들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을 지우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아들의 이름으로 옮기지도 않으려 했다.
소라는 수신 대기 중이던 손경화의 통화 기록을 보여 주었다. 경화는 이의 신청을 철회하지 않았다. 현정은 최초 로그의 원본을 다시 제출했다. 서강재는 별도 회계 자료의 확인 범위를 명시한 진술서를 보냈다. 이정민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과 현재 보상금 지급 여부는 다르게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들은 한 사람의 이름을 대신 써 넣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의 사실을 제자리에 놓고 있었다.
미결이 보존실 중앙에 나타났다. 그를 붙들던 검은 도장이 조금씩 갈라졌다.
“최초 로그의 보류 사유가 복원되었습니다. 이의 신청이 유효한 동안 새 보관관을 강제 등록할 수 없습니다.”
“그럼 제1보관관은?” 우빈이 물었다.
“원래 이력에 존재하지 않는 자동 직책으로 표시됩니다.”
미결의 목소리는 아직 작았다. 그러나 처음보다 분명했다.
현정이 최종 자료를 송부했다. 잠시 뒤 화면의 붉은 글자가 회색으로 바뀌었다.
[제1보관관 자동 승계: 중단]
[반복 보관 수수료 생성: 중지]
[기존 회계 수익 및 지급 내역: 별도 조사 대상]
전화기에서 마지막 벨이 울렸다. 수화기의 검은 줄이 마치 오랫동안 잡고 있던 것을 놓는 손처럼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빈은 그 순간 승리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보상금이 아직 지급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이름은 복원되었지만 수십 년간 잘못된 기록으로 살아온 시간은 남아 있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누군가의 이름이 새로 금고에 갇히는 일을 막았다.
현정이 의자를 밀어 넣었다.
“차 선배의 이름도 정정할 수 있겠네요.”
“시간이 걸리겠죠.” 소라가 말했다.
“걸리더라도 하겠습니다.”
우빈은 서랍에 보관한 복사본을 정리했다. 마지막 장에 손경화가 남긴 반려 문장이 있었다. '지급 대상자 확정 전 수익자 대리 등록 불가.' 그 짧은 거절이 십오 년 뒤 누군가의 생명을 지켰다.
그날 밤, 우빈은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명숙은 따뜻한 국을 내왔고, 태수는 반찬을 덜어 주었다. 식탁 위에는 독촉장도, 수령 확인서도 없었다. 누구도 오늘의 일을 대신 갚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우빈은 울리는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발신자는 박현정이었다.
“지금 보존실 장부가 새로 펼쳐졌어요.”
“또 제1보관관입니까?”
“아뇨. 첫 번째 장과 두 번째 장에 잠금 표시가 붙었습니다. 대신 세 번째 장의 제목이 나왔어요.”
우빈은 휴대전화를 더 가까이 들었다.
“무슨 제목인데요?”
현정은 천천히 읽었다.
[제3장 / 지급된 적 없는 임금]
[원본 00 / 작업 시간 환급 대기]
[최초 대상: 보관관이 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 줄.
[기록된 총 미지급 시간: 1,108,231시간]
우빈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았던 사람들과, 보관료를 받았다고 기록된 사람들. 그 뒤에는 또 다른 무리가 있었다. 돈을 받을 권리조차 명부에 오르지 못한 노동자들이었다.
휴대전화 너머에서 현정이 덧붙였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어요. 이 시간에 대한 최초 확인자의 이름이…”
그 순간 통화가 끊겼다.
우빈의 휴대전화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미지급 노동시간의 최초 기록자: 정태수]
[정산 개시까지: 71:59:59]
우빈은 식탁에 앉은 아버지를 바라봤다. 태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빈 그릇을 치우고 있었다.
문을 늦게 열었던 날, 아버지는 또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일까.
제12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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