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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2화
PAYLUA ORIGINAL · 제12화

12화. 열세 번째 대기번호

빚을 먹는 금고 · 3,545자

오프라인 책장
대합실에는 열두 사람이 있었다. 우빈이 지하에서 올라오기 전에도 그랬고, 돌아온 뒤에도 그랬다. 노인, 퇴근하지 못한 배달 기사, 교복 위에 외투를 걸친 청년, 허리가 굽은 식당 주인. 모두 자기 것이라 믿은 서류 한 장씩을 들고 있었다. 문제는 벽의 전광판이었다. [접수 인원: 13명] [대기 인원: 12명] [처리 중: 1명] "한 명은 어디 있죠?" 소라가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살피다가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낯선 사람과 얽히고 싶지 않은 마음은 모두 같았다. 우빈은 맨 앞 노인에게 다가갔다. 아들에게 빚을 물려주기 싫다고 했던 사람이었다. "제가 아까 큰소리쳤죠. 죄송합니다. 무슨 서류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노인은 색 바랜 봉투를 접었다 폈다 했다. "아들이 자영업하다 실패했어. 걔가 어릴 때부터 남한테 싫은 소리 못 하거든. 내가 연대 보증하면 끝난다고 하더라고." "누가요?" "전화 온 사람이. 여기 오면 은행 기록이 싹 없어진대." 우빈은 봉투 겉면을 확인했다. 안내장 위에 붉은 인쇄가 있었다. [신청자 사유: 자녀 보호] [분류: 자발적] "전화 한 통 받고 여기 온 게 자발적이라는 겁니까?" 서강재가 낮게 말했다. 우빈은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가 선택하셨다는 뜻은 아니죠. 누가 선택지를 숨겨 놓고 하나만 보여 준 거니까." 노인은 우빈을 오래 바라보았다. 종이를 내밀지는 않았다. 그건 자신의 삶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결정처럼 보였다. "그럼 여기서 어떻게 해야 돼?" "먼저 원래 빚이 어디서 왔는지 보여 달라고 해야죠. 서명은 그다음이고요." 대기석 맞은편에서 누군가 코웃음을 쳤다. 청바지에 기름 얼룩이 묻은 젊은 여자였다. "말은 좋네요. 은행 가서 똑같이 해 보셨어요? 법률 상담 받으려면 돈부터 필요해요." 소라가 그 여자 곁에 앉았다. "여기서 빚을 없애 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는 증거가 있어요. 저도 가족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 "증거를 보여 줘요." 소라는 곧바로 나무판을 내밀지 않았다. 대신 지하에서 인쇄한 분리 심사 요청서를 보여 주었다. 신청인의 이름이 아니라 '최초 채권자 미확인'이라는 문장이 찍혀 있었다. "누구의 돈인지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여자는 한참 서류를 들여다보더니 자기 봉투를 펼쳤다.그녀는 봉투를 열기 전 세 번이나 망설였다. 자신이 가진 문제가 또 다른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는 게 싫어 보였다. 소라는 먼저 물었다. "성함은 안 말씀하셔도 돼요. 내용을 보여 주는 것도 싫으시면 그만두셔도 되고요." "그만두면 다시 저 혼자예요." 여자는 봉투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문질렀다. "세탁소를 했어요. 어머니랑 같이. 기계 하나를 사고 건물주한테 보증금을 줬죠. 장사가 안 돼서 가게를 뺐는데, 보증금을 안 돌려줬어요. 그러더니 제가 오히려 돈을 빌려 갔다더라고요. 계약서를 내밀면서요." "원본을 보셨나요?" "봤죠. 제 글씨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날짜가 이상했어요. 그날 저는 어머니 장례식장에 있었거든요. 가게에서 계약서에 서명할 수가 없었는데." 우빈은 여자가 그날을 떠올릴 때 목소리가 낮아지는 것을 들었다. 금고는 돈을 빚으로 만들 뿐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아픈 날을 증명하게 만들었다. 이 사람은 돈 때문에 가게를 잃고, 억울함 때문에 어머니 장례식의 시간을 다시 꺼내야 했다. "증명할 사람이 있으세요?" "오래전 일이라 다 잊었겠죠." "기억하는 물건이라도 있을 수 있어요. 상을 치를 때 받은 문자나, 그날 신었던 신발 같은 거요." 여자는 입술을 깨물더니 휴대전화를 켰다. 오래된 사진 폴더를 한참 뒤졌다. 장례식장의 꽃들이 흐릿하게 찍힌 사진 한 장이 나왔다. 사진 속 여자의 오른손에는 파란색 붕대가 감겨 있었다. "손가락을 베어서 바느질도 못 했어요. 그래서 가게 문을 일주일 닫았는데." 소라가 사진 날짜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은 당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부터 확인하면 되겠어요. 여기 사람들이 그러라고 있는 건 아닐까요?" 여자는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대출을 없애 주는 사람이 아니라 제 말을 믿어 줄 사람부터 찾으라는 거군요." "믿기만 하면 안 되죠. 함께 확인해야 해요." 우빈의 말에 그녀는 봉투를 더 단단히 쥐었다. 남에게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안에 든 것이 자신의 책임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안에는 세탁소 보증금 반환 각서가 있었다. 월세를 제때 낸 세입자에게 건물주가 돌려줘야 할 돈인데, 각서에는 오히려 여자가 채무자로 적혀 있었다. "제가 갚아야 할 돈이 아닌데요?" "그걸 확인하는 게 먼저예요." 대합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서로 종이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어느 노인의 서류에는 이미 해지된 카드의 연회비가 적혀 있었고, 배달 기사 서류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고의 합의금이 있었다. 이름과 금액은 정확했으나 채무가 생긴 이유만 엉뚱했다. 우빈은 열두 사람에게 한 가지씩 부탁했다. 누구에게도 서명하지 말 것. 자신이 기억하는 원래 사정을 한 문장씩만 말해 줄 것. 동의하지 않으면 기록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여덟 명이 말했고 네 명은 입을 다물었다. 우빈은 네 사람도 그대로 두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선택하지 않을 권리'를 빼앗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제 알았다. 그때 번호표 발급기에서 짧은 소리가 났다. 딩. 아무도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 종이가 한 장 나왔다. [13번 / 본인 확인 완료] 우빈은 기계를 살폈다. 좁은 틈 안쪽에서 작은 손이 나타나 번호표를 끌어당겼다. 그는 뒤로 물러났다. 기계 아래 바닥에 아이 한 명이 웅크리고 있었다.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작은 운동화 한 짝은 새것이고 다른 한 짝은 젖어 있었다. 손에는 봉투가 없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아이는 우빈을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또렷했다. "제 차례를 기다려요." "누구랑 왔니?" "저를 데려온 사람은 이미 계산했어요." 소라가 아이에게 다가가려 하자 서강재가 막았다. "잠깐. 저 얼굴, 명단에 없었습니다." "제 이름은 나래예요." 아이는 말했다. 우빈은 이름을 듣는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발급기 전광판에 13이 뜬 뒤에도 '처리 중' 숫자가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접수 인원: 13명] [대기 인원: 12명] [처리 중: 1명] 아이는 이미 처리 중이면서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번호를 기다리니?" "00번이요." 우빈의 손에 든 망치가 미세하게 떨렸다. "누가 그 번호를 알려 줬어?" 아이는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오래된 도면이었다. 정태수의 공방에서 보았던 필체로 붉은 원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아저씨가요. 이름은 기억 안 나요. 자꾸 바뀌어서." 도면 뒤쪽에는 작은 글씨가 있었다. '증인이 없는 채무는 빚이 아니다.' 우빈은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발밑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대신 번호표 발급기 뒤 벽에 길고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림자는 아이보다 키가 훨씬 컸다. 그림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우빈 씨,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원본의 목격자를 회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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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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