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참여자는 누군가를 고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한 장의 서류를 반려한 사람이었다. 최초 로그의 첨부 목록에는 2010년 11월 17일 회의 참석자 열 명의 서명이 있었다. 그 뒤에 붙은 노란색 반려표에는 다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손경화.
우빈은 처음 보는 이름이 아니었다. 구 서람기록창고의 예전 관리 목록을 정리할 때 사무 보조 직원 명단에서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수백 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이름이 거절 사유와 함께 남아 있었다.
[반려 사유: 지급 대상자 확정 전 수익자 대리 등록 불가]
“이분이 처음부터 문제를 알고 있었던 거네요.” 소라가 말했다.
현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 얼마나 아셨는지는 확인해야 해요. 다만 대리 등록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로그에 남아 있어요.”
손경화의 주소는 오래전 주소록에만 있었다. 현정은 기관 명의로 정식 협조 요청을 전달할 방법을 찾았다. 소라는 사적인 연락처를 무작정 알아내거나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타인의 안전을 지키자고 시작한 조사에서 또 다른 사람의 생활을 침범할 수는 없었다.
연락은 손경화가 먼저 해 왔다. 보존소가 남긴 업무용 회신 연락처로 오후 늦게 전화가 걸려 왔다.
“열한 번째 사람이 누구인지 찾으신다면서요.”
여자의 목소리는 나이가 들었지만 또렷했다.
“제가 맞습니다.”
우빈은 질문을 급히 꺼내지 않았다. 경화는 자신이 원하는 범위까지만 말하겠다고 했다. 직접 만나겠다는 의사도, 자료를 공개해도 된다는 의사도 아직 밝히지 않았다.
“서명하지 않으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돈을 보관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사람이 찾아갈 수 없는 돈으로 바꾸겠다는 내용이었어요.”
“그게 무슨 뜻이죠?”
“반송된 편지가 많았어요. 주소가 바뀐 사람, 사고 때문에 집을 옮긴 사람,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던 사람. 그걸 전부 연락 불가로 묶더군요. 확인할 방법이 남아 있었는데도요.”
경화는 숨을 한번 고르고 말을 이었다.
“보상금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찾아야 했죠. 그런데 그 회의에서는 못 찾는 동안 벌 수 있는 돈부터 계산하고 있었어요.”
소라가 손끝을 굳혔다. 이정민의 이름이 적힌 장부가 떠올랐다. 어머니의 생존을 확인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수익 종료 사유였던 것이다.
“회의는 누가 주도했나요?”
“승인 서류를 가져온 사람이 있었어요. 검은 장갑을 꼈죠. 이름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백 실장이라고 불렀어요.”
“백재헌일까요?” 우빈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날 본 건 사람이고, 이름은 남들이 부른 소리뿐이니까요.”
우빈은 경화의 정확한 구분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 작은 신중함 때문에 그는 서명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경화는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제가 반려한 뒤에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그 서류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는데 결재가 끝났다고 알림이 왔습니다. 제가 그날 밤 메모 하나를 남겼어요. 당시에는 아무도 읽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메모가 아직 있습니까?”
“있어요. 원본은 제가 갖고 있고, 사진 사본을 보낼 수 있어요.”
전화가 끊기지 않도록 소라는 경화에게 먼저 확인했다. 누군가의 오래된 기록을 보는 것이 현재의 안전까지 당연히 허락받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사진을 보내시면 저희가 확인에 필요한 부분만 보고, 다른 사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경화가 말했다. “예전에 저는 반대했다는 이유로 일을 그만둬야 했어요. 그 뒤로 서류를 볼 때마다 누가 뒤에 서 있는 것 같았죠.”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런데 누군가 이제야 그 서류를 읽겠다고 하니 좀 이상하네요. 끝난 줄 알았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잠시 뒤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작은 수첩 사진이었다.
'나는 서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회의실에는 내 이름을 가진 의자가 남아 있었다.'
“의자요?” 소라가 물었다.
“서류를 반려하고 나갔는데, 회의실에서 자꾸 제 이름을 불렀어요. 돌아보니 제가 앉아 있던 의자 위에 검은 가방이 놓여 있었죠. 누군가 그 가방에게 서명해 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경화는 그날 이후 종종 우편물을 받았다고 했다. 보관료 청구서였다. 금액이 늘지 않았는데도 매년 한 장씩 도착했고, 그는 한 번도 서명하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는 우편이 멈췄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그때 통화 너머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화가 말없이 전화를 내려놓는 기척이 났다.
“무슨 일 있습니까?” 우빈이 물었다.
“문밖에 누가 왔어요. 검은 가방을 들고 있어요.”
소라가 즉시 말했다.
“문을 열지 않으셔도 됩니다. 필요하시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저희도 정식으로 확인할 방법을 찾겠습니다.”
경화는 잠시 뒤 대답했다.
“그 사람이 종이를 문 밑으로 밀었어요. 제 이름이 적혀 있어요.”
“무슨 종이입니까?”
“회의 참석자 서명지요.”
우빈이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열한 번째 서명을 받으려 하고 있었다.
경화가 읽었다.
[제11참여자 이의 신청 철회]
[대리 서명 시 수수료 보전]
그리고 경화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때도 사인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하지 않을 겁니다.”
통화 너머에서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났다. 경화가 서류를 탁자 위에 놓은 듯했다. 잠시 뒤 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멎었다.
우빈의 화면에 변화가 나타났다.
[이의 신청 기록 존속 확인]
[봉산 작업 최초 로그 재열람 허용]
소라가 경화에게 물었다.
“괜찮으신가요?”
“예. 문은 잠가 뒀어요. 다만 당신들이 알아야 할 게 있어요.”
“무엇인가요?”
“그날 반려한 서류에는 돈이 들어갈 곳을 따로 적어 놓았어요. 우리 눈에는 보상금이라고 했지만, 장부 뒷면에는 다른 이름이 있었죠.”
“무슨 이름이요?”
“기다림.”
전화를 끊은 뒤 우빈은 자신이 처음 금고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돈이 없어 기다린 사람들의 시간을, 누군가는 장부에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11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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