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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12화
PAYLUA ORIGINAL · 제112화

112화. 죽은 사람의 출입증

빚을 먹는 금고 · 2,791자

오프라인 책장
출입증의 이름 칸은 비어 있었다. 그런데 뒷면에는 사용 흔적이 있었다. 얇은 플라스틱 표면이 오래 문질러져, 원래 새겨졌던 숫자의 윤곽만 반짝였다. 우빈은 그것을 집지 않았다. 관리원 보안 담당자가 투명 봉투에 넣은 상태로 가져온 출입증이었다. 아침부터 출입 통제 시스템의 오류를 확인하던 담당자는, 2010년 이후 쓰지 않던 옛 서랍에서 이 물건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사용 시간이 왜 오늘 새벽으로 찍히죠?” 소라가 물었다. 담당자가 모니터를 돌렸다. [출입증 번호: 0001] [발급일: 2010-11-17] [사용 시각: 금일 01:47] [사용자명: 공란] “진짜 카드 리더가 인식한 게 맞나요?” “이력상으로는요. 하지만 당시 리더기는 전부 교체됐습니다. 현재 장비가 이 오래된 카드를 읽을 수 있는지 실험부터 해야 합니다.” 현정은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시험하려면 복제카드를 쓰죠. 원본을 리더에 대는 순간 카드가 유효해질지도 몰라요.” 보안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무심코 '확인 완료' 버튼을 누르려다 손을 멈췄다. 그 버튼 옆에 낯선 체크박스가 생겨 있었다. [사용자 확인 시 업무 승계 동의] “우리 프로그램에 이런 항목은 없었는데.” 우빈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금고가 은행 앱에서 시작해 접수 창구, 환승역, 관리원까지 사람의 선택지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손쉬운 버튼 하나가 한 사람의 일생을 옮겨 놓을 수도 있었다. 그들은 화면을 촬영하고 시스템 관리자에게 비정상 항목을 따로 기록해 달라고 했다. 담당자는 네트워크 격리를 진행했다. 그러나 카드 사용 이력은 끊기지 않았다. 새벽의 팔 초는 네트워크 로그뿐 아니라 종이 출입 대장에도 찍혀 있었다. ‘제1보관관 출근.’ 글씨는 사람의 필체였다. 손목이 약한 사람이 천천히 쓴 듯 글자 끝이 떨렸다. “이건 누가 썼을까요?” 우빈이 물었다. “필체 감정이 필요하겠죠.” 현정이 답했다. “저는 예전에 비슷한 글씨를 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 떠오르는 이름을 적으면 그게 답처럼 보일까 봐 겁나요.” 소라는 대장을 잠깐 덮었다. “그럼 떠오르는 이름은 따로 메모해 두세요. 직접 본 사실과 추정은 분리해서요.” 세 사람은 지하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는 한 층을 지나칠 때마다 미세하게 멈칫거렸다. 보존실 문 앞에는 청소 카트가 있었고, 영수증은 아까보다 길어져 있었다. [보관료 산정 기간: 5,820일] [청구 가능 횟수: 5,820회] “누가 저걸 매일 만들었을까요?” 우빈이 중얼거렸다. 미결이 어두운 벽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이 만든 첫 양식이 이후 문서를 자동 생성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처음에 버튼을 눌렀겠지.”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첫 입력자와 현재 이익 수취인은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백재헌을 떠올리던 우빈에게 필요했다. 의심스러운 이름 하나만 찾는 것으로 끝날 사건이 아니었다. 지난 십수 년간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들과, 뒤에서 돈을 받아 간 사람들을 구분해야 했다. 복도 끝의 보존실 3호는 창고로 쓰이던 공간이었다. 잠금장치를 해제하자 얇은 먼지가 문틈에서 떨어졌다. 벽을 따라 오래된 장부가 쌓여 있었다. 선반에는 '보상금 지급 관련 원본'이라는 상자가 세 개 놓여 있었다. 첫 번째 상자에는 지급 신청서, 두 번째에는 반송 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세 번째는 비어 있었다. 현정이 목록표를 확인했다. “세 번째 상자는 원래 비어 있었어요. 개봉한 날짜도 기록돼 있고요.” 우빈은 상자 안쪽에 붙은 작은 종이를 발견했다. [실물 없음 / 관리 책임 유지] “물건은 없는데 계속 관리료를 받는 겁니까?” “그것도 확인해야죠.” 소라가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은 사람이 작성했을 수도 있어요. 아직은 문장 하나입니다.” 그때 비어 있던 상자에서 달그락 소리가 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소리가 한 번 날 때마다 청소 카트의 영수증에 숫자가 늘어났다. [보관료 +180원] [보관료 +180원] 우빈은 상자에 다가가지 않고 바닥을 살폈다. 투명한 물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먼지가 젖어 있었다. 젖은 자국은 신발 자국 모양으로 보존실을 가로질렀다. 그런데 출입 기록상 이곳에 들어온 사람은 그들뿐이었다. 보안 담당자는 젖은 자국을 억지로 닦지 않았다. 보존실의 온도와 습도를 기록한 뒤, 바닥의 오염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하려 했다. 사진에는 발자국이 찍혔다. 그러나 적외선 측정기에는 바닥 온도 차이가 없었다. 손을 가까이 대니 차갑지도 않았다. “누군가 걸어온 흔적처럼 보여요.” 보안 담당자가 말했다. “하지만 사람이 실제로 지나갔다는 뜻은 아니겠죠.” 우빈은 그 문장을 마음에 새겼다. 금고는 언제나 가장 그럴듯한 모양으로 나타났다. 빚에는 도장을, 수령에는 서명을, 출근에는 발자국을 붙였다. 그 모양을 본 사람은 곧바로 그 뒤에 사람이 있었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모양과 원인은 다른 것이었다. 젖은 발자국이 멈춘 곳은 벽에 걸린 오래된 직원 명단 앞이었다. [2010년 11월 17일 임시 업무 배치] [보관 책임자: 차문수] [승인자: 백재헌] 우빈은 처음으로 제1보관관에 연결된 실제 이름을 보았다. “차문수.” 현정의 얼굴빛이 변했다. “그 이름을 기억해요.” “누구였어요?” “제가 입사했을 때 기록을 정리하던 선배예요. 그런데 그분은 2010년에 이미 퇴직했어요.”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망 신고는 2011년에 접수됐습니다.” 복도의 오래된 전화가 다시 울렸다. [제1보관관 / 차문수] [현재 근무 상태: 정상] 누군가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십오 년 동안 출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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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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