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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10화
PAYLUA ORIGINAL · 제110화

110화. 아무도 받지 않은 것의 주인

빚을 먹는 금고 · 4,069자

오프라인 책장
오후 세 시, 서람시의 전광판에 또다시 00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숫자 옆에 새로운 문장이 붙었다. [수익자 미확정 자산 정산] [장기 미수령 책임 배분 예정] 대부분의 사람은 광고 오류라고 생각했다. 몇몇은 사진을 찍었고, 일부는 은행 앱을 확인했다. 우빈은 누구에게나 보이는 화면이 사람들을 겁주려는 신호라는 것을 알았다. 두려움을 이용해 누군가가 서명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이명숙은 지원센터 직원에게 자신의 이름이 도용된 문서 사본을 맡겼다. 그녀가 직접 쓴 메모와 덧붙여진 문장이 서로 다른 시기에 작성됐다는 의심을 정리했다. 한인규는 자신이 날인하지 않았던 1998년 수령 대장의 사본을 제출했다. 강민호는 기억에 확신이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구분한 진술을 남겼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서명하지 않았다. 우빈은 폐기 전산실 앞에서 현정과 통화했다. “옛 출력물의 감정 결과는 아직이에요. 다만 1998년 기록과 2010년 후손 연결 기록이 같은 시점의 문서가 아니라는 건 목록만으로도 확인돼요.” “그게 정산을 막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사실은 분명해졌죠. 금고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지는 또 다른 문제예요.” 우빈은 통화를 끝내고 지하로 내려갔다. 소라와 미결이 함께였다. 아무도 닫힌 문을 억지로 부수지 않았다. 관리인의 입회 아래 문을 열자, 어제까지 있던 기계 캐비닛이 사라지고 넓은 대기실이 나타났다. 금고의 내부 공간이었다. 열일곱 개의 창구가 일렬로 놓여 있었다. 각 창구 앞에는 번호표를 쥔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그림자들의 가슴에는 익숙한 단어가 쓰여 있었다. [미수령] [보관] [대리] [반환] 맨 끝 창구에는 작고 낡은 유모차가 놓여 있었다. 우빈이 한 걸음 가까이 가자 유모차의 바퀴가 저절로 돌아갔다. “이게 진짜라고 생각해요?” 소라가 물었다. “아니요. 진짜 유모차가 존재했는지도 기록으로 확인해야 해요. 이건 장치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모양이에요.” 미결이 우빈을 바라봤다. 그 말에 잠깐 안도하는 표정이 스쳤다. “최초 수익자 검증을 시작합니다.” 대기실 천장에 붉은 숫자가 떠올랐다. [00:08:14] 중앙 창구의 유리가 열리고 눈이 없는 관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관리자는 봉투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우빈의 이름이 찍힌 이름표와 1998년 수령 기록, 2010년 후손 연결표가 있었다. “정우빈. 귀하는 미수령 자산의 장기 수익자로 지정되었습니다.” “지정한 사람이 누굽니까?” 우빈이 물었다. “보관자와 후손 연결 규정.” “그 규정에 동의한 사람이 있습니까?” “기한 내 이의가 없었습니다.” “1998년에는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관리자의 얼굴에 검은 선 하나가 생겼다. “2010년에 대상자가 확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1998년에 내가 받았다는 기록은 거짓이잖아요.” 관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뒷벽의 종이들이 들썩였다. 검은 영수증들이 긴 팔을 만들어 우빈을 향해 뻗었다. 소라가 그를 끌어당겨 피했다. 팔 끝이 의자 다리를 스치자 의자가 종이처럼 구겨졌다. “소라 씨, 뒤로!” 그들은 창구 옆의 통로로 움직였다. 미결이 바닥에 표시된 이름표들을 읽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원본 서식 확인. 1998년 수익자 칸은 비어 있습니다. 2010년 연결은 별도 행위입니다. 소급 등록은 실제 수령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관리자가 외쳤다. “정산하지 않으면 316명의 불이익이 발생합니다.” 우빈은 멈춰 섰다. 바로 그 순간이 금고가 기다린 선택임을 알았다. 타인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자기 이름을 내놓는다고 말하면, 장치는 다시 한 사람을 영웅으로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영웅은 언제나 다음 청구서를 만드는 재료가 됐다. “316명의 불이익은 당신들이 만든 겁니다.” “대체 수령자를 지정하십시오.” “안 합니다.” “그렇다면 손실을 감수하시겠습니까?” “피해를 막을 방법을 찾겠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에 서명하지는 않겠습니다.” 관리자의 손끝에서 수백 장의 서류가 떨어졌다. 하나하나 다른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우빈은 그것들을 향해 손을 뻗지 않았다. 대신 작은 녹음기를 꺼냈다. 강민호가 동의한 범위에서 제공한, 원본 08 증언의 검증된 사본이었다. 정해원의 목소리가 금고 내부에 울렸다. ‘이것은 상환 요청이 아니라 긴급 보호 요청입니다. 아이들 이름을 대신 적지 마세요.’ 관리자가 뒤로 물러났다. 그의 등 뒤에 있던 문들이 동시에 열렸다. 방 안으로 바람이 불어닥쳤다. 우빈은 미결에게 외쳤다. “이 증언이 왜 중요한지 설명해 줘!” 미결이 입술을 떨었다. “최초 입력 목적이 다릅니다. 보호물품 관리와 채권 수취는 별개의 절차였습니다. 원본 00은 보호 요청을 수익자 권리로 전환했습니다. 전환 승인자를 제시하지 못하면 후손 연결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관리자가 고함쳤다. “승인자는 보관관입니다!” “이름은?” 우빈이 물었다. 관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라가 단호하게 덧붙였다. “직책이 사람의 동의 대신 서명할 순 없어요. 누가 언제 무슨 권한으로 결정했는지 밝혀요.” 대기실 천장의 숫자가 멈췄다. [00:00:03] [00:00:02] 마지막 숫자가 1이 됐을 때 그림자들이 일제히 창구로 다가왔다. 우빈은 소라의 손목을 붙잡지 않았다. 대신 그녀를 보며 물었다. “같이 나가겠어요?” “당연하죠.” 두 사람이 함께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순간 미결이 손을 들어 올렸다. “재정산 근거 미제시. 기존 수령인 등록의 효력 보류. 316명에 대한 자동 집행 일시 중지.” 어둠이 유리창에 부딪혔다. 서류들이 공중에서 멎었다. 관리자의 얼굴을 채웠던 검은 선이 하나씩 지워졌다. 우빈은 기쁜 마음보다 먼저 무릎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의 빚을 대신 갚는 방식이 아니라, 빚이라는 주장부터 확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승리는 완전하지 않았다. 미결의 손이 종이 가루로 흩어졌다. 그의 얼굴이 흐려지자 우빈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달려갔다. “미결!” “저는 아직 소멸하지 않습니다. 다만 원본 00이 제 접근 권한을 끊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사람의 기록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제가 대신 증언할 수 없습니다.” 미결의 형상이 사라지고 대기실 벽에 서류 한 장이 남았다. [자동 집행 중지] [최초 전환 행위 검증 대기] [2010년 11월 17일 / 수익자관리실 권한 이관] [인계받은 제1보관관: 기록 열람 가능] 서류 아래에는 낯선 이름이 아니라 낯익은 표시가 있었다. 여섯 개의 도장과 비어 있는 일곱 번째 칸. BJH-06을 추적하며 보았던 회수 직책의 구조와 똑같았다. 소라가 마지막 칸을 읽었다. “'제1보관관은 계약 종료 후에도 자리를 유지한다.' 무슨 뜻이죠?” 우빈은 대답하지 못했다. 관리자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 오래된 전화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벨이 울리자 우빈은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스피커에서 먼저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316명의 자동 청구를 멈춘 건 축하합니다.” “누구십니까?” “당신들이 빈칸을 없애면 끝날 줄 알았나요? 우리는 그 빈칸을 팔아 왔습니다. 수익자는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 통화는 끊겼다. 전화기 옆에서 장부가 펼쳐졌다. 첫 장에는 '미수령 보호물품'이라는 제목이 있었다. 우빈이 다음 장을 넘기지 않아도 바람이 종이를 들췄다. 두 번째 장의 제목은 이러했다. [제2장 / 지급되지 않은 보상금] [원본 00의 최초 수익: 관리 수수료] [수수료 수령자: 제1보관관]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 한 줄. [제1보관관 현재 소재: 서람시 중앙기록관리원] 우빈은 보존실에서 전화를 받았던 박현정을 떠올렸다. 그 방에는 오래된 자료와 새로 등록된 접근 권한이 함께 있었다. 누군가 그곳에서 기록을 지켜보며, 사람이 아닌 직책으로 이익을 받아 온 것이다. 그가 소라를 바라봤다. “이제 찾아야 할 건 1998년에 내가 뭘 받았는지가 아니에요.” “알아요.” 소라가 말했다. “2010년에 누가 그 빈칸으로 돈을 벌었는지죠.” 창 밖에서는 서람시의 전광판이 정상 화면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중앙기록관리원 지하의 한 책상에서는 오래된 전화벨이 다시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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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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