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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04화
PAYLUA ORIGINAL · 제104화

104화. 수익자관리실

빚을 먹는 금고 · 3,254자

오프라인 책장
구 서람기록창고는 철거 예정 건물이었다. 골목 끝에서 보면 외벽에 얹힌 안전 펜스와 낡은 간판만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아직 누군가 드나든 흔적이 있었다. 안내판의 개관 시간은 지워져 있었고, 철제 출입문 아래로 희끗한 종잇조각들이 쌓여 있었다. “무단으로 들어가면 우리 쪽 기록부터 나빠져요.” 박현정이 말했다. 우빈은 건물 앞에서 멈췄다. 현정은 정식 열람 협조를 요청했고, 소유주 측 관리인이 현장에 나와 입회하기로 했다. 수익자관리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지, 안의 자료를 함부로 가져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관리인 최종범은 열쇠를 세 번 돌린 끝에 출입문을 열었다. “별거 없을 겁니다. 건물 명의가 세 번 바뀌어서 남은 물품도 거의 없어요.” 바닥에 먼지가 쌓여 있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차가워졌다. 지하 1층에는 책상과 의자가 남아 있었지만 지하 2층에는 뜻밖에도 좁은 상담창구가 있었다. 반투명 유리 너머에 의자 하나, 작은 금속 서랍 하나가 놓여 있었다. 벽에는 빛바랜 표어가 붙어 있었다. '받지 않은 도움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이걸 누가 쓴 거야.” 우빈이 중얼거렸다. 소라가 말을 받았다. “도움을 기록할 순 있죠. 문제는 그걸 빚으로 만드는 거예요.” 서랍에는 오래된 필름 봉투가 있었다. 현정이 관리인에게 확인 절차를 설명한 뒤 봉투의 겉면을 촬영했다. 거기에는 '1998년 6월, 인계 대상자 불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우빈은 손전등으로 벽을 비췄다. 길게 붙인 장판 아래에서 잉크로 그린 선이 보였다. 화살표가 아니라 여러 개의 네모가 연결된 도형이었다. “금고 배선도 같은데요.” 우빈은 작은 창구를 바라보며 그곳에 앉았을 사람들을 상상했다. 장마로 집을 잃거나 급히 병원에 간 사람들, 연락이 끊긴 가족의 물건을 대신 맡아 온 사람들. 누구나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어야 했다. 하지만 창구는 사람들의 사정을 단 한 줄로 바꾸었다. 인수했다, 안 했다. 갚는다, 안 갚는다. 서랍 옆에는 수기로 붙인 날짜표가 있었다. 매월 말일에 작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1998년 다음 해에도, 보관 물품이 없어진 뒤에도, 문이 잠긴 뒤에도 날짜표는 계속 이어졌다. 2010년 무렵부터 날짜 옆에 금액이 적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백 원, 다음에는 몇천 원, 나중에는 자릿수가 커졌다. “이게 모두 관리 수수료면…” 소라가 말을 잇지 못했다. “원래 돈을 받아야 할 사람을 찾을수록 수익이 줄어들겠네요.” 우빈이 말했다. 현정은 날짜표가 남아 있는 위치와 훼손 정도를 기록했다. 액수의 의미는 회계 자료와 대조해야 했지만, 우빈은 처음으로 금고가 무엇을 먹고 자라는지 조금 이해한 것 같았다. 사람의 절망뿐만이 아니었다. 해결되지 않은 상태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 돈이 되는 구조였다. 관리인 최종범이 오래된 의자에 손을 올렸다가 흠칫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여기 근처에서 일하셨어요. 서류를 놓고 오면 집에 못 간다고 했죠.” “어떤 서류였나요?” 소라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늘 '받은 사람이 없다'고 짜증을 내셨어요.” 그는 의자에서 손을 뗐다. 창구 안쪽에서 누군가 기침하는 소리가 났다. 분명 빈 방이었는데, 서류가 넘어가는 소리가 한 번 더 이어졌다. 그때 상담창구의 유리가 안쪽부터 검어졌다. [상담 가능] [최초 수익자의 대리인 확인] 종이 먼지가 허공으로 말려 올라왔다. 검은 서류철들이 하나씩 책상 위에 펼쳐졌다. 서류에는 보험금, 지원금, 보상금처럼 익숙한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맨 마지막 항목은 달랐다. [권리 양도 대상: 아직 이름이 지정되지 않은 사람] “누구나 될 수 있도록 만든 거예요.” 소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미결이 유리 앞에 섰다. “수익자관리실은 실제로 보상금을 지급하는 부서가 아니었습니다. 지급되지 않은 물품과 지원 약속을 미래의 회수 권한으로 바꿨습니다.” “그걸 허락한 사람은 누구인데?” 우빈이 물었다. “원본 00의 최초 운영자 기록이 없습니다. 대신 수령 불명 상태를 유지할 권한을 관리한 직책이 있습니다.” 유리 아래에 작은 명패가 떠올랐다. [제1보관관 / 직책 승계 중] 최종범이 목을 가다듬었다. “저도 이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원래 저 의자가 거기 있었던가요?” 창구 안 의자 위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얼굴 대신 하얀 빈칸이 달린 형상이었다. 두 손에는 접수표와 만년필이 들려 있었다. “방문 목적을 작성해 주십시오.” 우빈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기록 열람입니다.” “열람은 수령입니다.” “아닙니다.” “내용을 확인하면 이용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소라가 맞섰다. “우리가 본 것과 우리가 동의한 건 달라요.” 빈 얼굴이 천천히 소라 쪽으로 돌아왔다. 반투명 유리에서 길쭉한 팔 하나가 나오더니 바닥을 긁었다. 팔 끝에서는 새하얀 접수표가 끊임없이 뽑혀 나왔다. 현정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말했다. “저희는 열람 중단을 요청합니다. 적법한 기록 인계 절차를 확인하겠습니다.” 형상은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그 사이 관리인 최종범이 문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에 작은 스티커가 나타났다. [현장 물품 인수 확인] “잡지 마세요!” 우빈이 소리쳤다. 너무 늦었다. 종범의 손바닥에 파란 잉크가 번졌다. 형상은 갑자기 웃는 입을 얻었다. “확인 완료. 제1보관관의 후임이 등록되었습니다.” 종범이 손을 떼려 했지만 금속 손잡이가 피부에 붙어 있었다. 그의 그림자 뒤에서 서류 뭉치가 사람 모양으로 자랐다. 우빈은 종범의 팔을 붙잡았다가 손을 거두었다. 아무 이유 없이 함께 수령인으로 기록될지 몰랐다. 그러나 사람이 다치는 것을 그대로 볼 수도 없었다. “종범 씨, 제가 잡아당길게요. 괜찮으세요?” 종범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빈과 소라가 동시에 그의 팔을 지탱했다. 미결은 손잡이의 글자를 하나씩 읽었다. “접촉은 인수가 아닙니다. 동의 확인 절차가 없습니다. 현장 안전 행위를 별도 기록합니다.” 문손잡이가 삐걱거리며 풀렸다. 종범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손바닥에는 파란 얼룩이 남아 있었다. 형상은 창구 너머로 사라졌다. 책상 위 서류들이 한꺼번에 접혔고, 벽의 명패가 천천히 뒤집혔다. [승계 실패] [대체 후임 탐색 범위: 기존 수령인 가족] 우빈은 이명숙의 얼굴을 떠올렸다. 다음 대상이 누구인지 금고가 알려 주기 전에, 그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건물 계단 끝에 닿았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머니에게서 온 문자였다. '우빈아. 오늘 집 우편함에 너 앞으로 온 편지가 있어. 그런데 받는 사람 이름 옆에 내 서명이 찍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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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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