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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03화
PAYLUA ORIGINAL · 제103화

103화. 빈 유모차의 주인

빚을 먹는 금고 · 3,270자

오프라인 책장
이명숙이 꺼내 놓은 사진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다. 밤새 오래된 장롱 아래를 뒤진 모양이었다. 사진 속 복도는 지금 우빈이 아는 어느 건물보다 낡았다. 벽 아래에는 장마 때 물이 찼던 자국이 보였고, 끝에는 철문 하나가 서 있었다. 그 앞에 작은 유모차가 놓여 있었다. 아이가 타는 부분은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이게 왜 이제 나온 거예요?” 우빈이 물었다. “봉사단 사진이야. 우리가 찍은 게 아니고 현장 담당자가 나눠 준 거지. 나도 오래 잊고 있었어.” 사진 뒷면에는 '15:17'이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우빈은 그 숫자를 사진이 찍힌 시각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누군가 뒷날 써 넣었을 수도 있었다. 소라가 확대경으로 필체를 살폈다. “연필 위에 펜으로 덧쓴 흔적이 있어요. 시간 아래에 글씨도 하나 남았고요.” 희미한 글씨는 '물품 보관'으로 읽혔다. “이런 걸 유모차에 적어요?” “유모차 자체를 물품으로 취급했을 수도 있어요.” 소라가 말했다. “문제는 안에 누가 있었냐가 아니라, 왜 그걸 인계 대상에 넣었느냐겠죠.” 이명숙은 식탁 한편에 쌓아 둔 종이들을 정리했다. 낡은 수첩과 영수증, 봉사단 명단이 있었다. 그녀는 1998년 사고 직후 물품 지원을 갔을 때 대기실에서 만난 한 노인을 기억한다고 했다. “이름이 한인규였나. 아니, 한인규 선생님은 그때 젊었어. 구청 직원이었고. 그분이 우리한테 말했어. 유모차만큼은 만지지 말라고.” “어디서 연락할 수 있어요?” “한 번 찾아보자. 그분이 지금까지 계신지는 모르겠다.” 우빈과 소라는 봉사단의 당시 명단을 바탕으로 연락이 닿는 사람을 찾았다. 여러 곳을 확인한 끝에 한인규가 지역 주민 기록 봉사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직접 만나기 전까지 전화로 사건 내용을 설명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후, 세 사람은 오래된 도서관 작은 회의실에서 한인규를 만났다. 머리가 희끗했지만 옷깃을 단정하게 여민 남자는 이명숙을 보고 한동안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담요를 가져오셨죠.” “맞아요.” 이명숙이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 사진이 기억나세요?” 한인규는 사진을 받지 않고 책상에 펼쳐진 그대로 내려다보았다. “기억합니다. 제가 인계 대장에 적지 말자고 했던 물건이에요.” “왜요?” “그 안에 아이가 없었거든요.” 우빈이 몸을 굳혔다. “그럼 누구 물건이었습니까?” “그걸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거기까지는 제 잘못이었죠. 하지만 물건 주인을 모른다고 해서 새 주인을 아무나 정할 수는 없었어요.” 인규는 당시 자신의 위치를 설명했다. 사고 당일 구조 담당자는 아니었고, 다음 날 물품 인계 대장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유모차는 창고 앞에서 발견됐지만 접수표가 없었다. 그때 이미 누군가 '미확인 수령품'으로 분류하려 했다고 했다. “처음엔 유실물 처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등록 서식에 항목이 이상했죠. 소유자, 발견자, 보관자 대신 채무자, 수익자, 이행 완료가 있었거든요.” “물건을 재산 거래처럼 등록한 거군요.” 소라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서식에 날인하지 않았어요.” 인규는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삼십 년 가까이 보관한 사본이었다. 제법 빛이 바랬지만 인쇄된 글자는 읽을 수 있었다. [임시 구호물품의 미확인 수령권 관리 시험] [시행 부서: 수익자관리실] 우빈은 두 번째 줄을 읽었다. '수익자'라는 전화 발신 이름이 떠올랐다. “수익자관리실이 진짜 부서였어요?” “그 건물 운영사 안에 있던 작은 방이었어요. 이름을 멋대로 지은 것 같았죠. 구청의 공식 조직은 아니었습니다.” 인규가 말을 이었다. “나중에는 그 방이 없어졌어요. 다른 회사로 넘어갔다고 들었습니다.” 한인규는 주름진 손등으로 수첩의 모서리를 펴더니 자기 이름이 찍힌 옛 출입증 복사본을 보여 주었다. 그날 자신이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설명하는 데 거의 반평생을 쓴 사람 같았다. 우빈은 그게 슬펐다. 누군가의 악의를 막기 위해 평범한 사람의 하루가 얼마나 길게 늘어날 수 있는지 새삼 알 것 같았다. “그때 누가 저한테 그랬어요. 도장 하나 안 찍는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냐고.” “뭐라고 답하셨어요?” 소라가 물었다. “세상이 달라질지는 모르지만, 제가 거짓으로 적을 순 없다고 했죠. 큰 용기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닙니다. 틀렸을 때 뒤집어쓸 게 무서웠어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살아 보니 남들이 찍으라는 도장을 안 찍은 일이 내 인생에서 제일 오래 기억나더라고요.” 우빈은 한인규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당시 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유모차가 언제 치워졌는지, 수익자관리실 직원의 얼굴을 기억하는지. 그러나 한 번에 열 가지를 묻는다고 명확한 답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인규가 한 모금 물을 마시는 동안 그는 질문을 세 가지로 줄였다. 사진을 처음 본 때, 원본 서식에 관해 직접 아는 부분, 그리고 다른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 인규가 마지막 물음에 대답했다. “누가 그 방에 돈이 들어간다고 했어요. 지원금이 아니라 관리비가 들어간다고. 제가 직접 본 장부는 없으니 확인해 보셔야겠지만.” '돈이 들어가는 방.' 우빈은 그 짧은 표현을 기억했다. 물건을 받지 않았다는 상태만으로 누군가 돈을 번다면, 영원히 받을 사람을 찾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었다. 회의실 창문이 미세하게 떨렸다. 바깥에 지나가는 버스의 진동처럼 보였지만, 유리 안쪽에 작고 검은 손자국이 나타났다. 미결이 우빈의 그림자에서 떠오르며 낮게 말했다. “권리 주장 접근이 감지됩니다.” 유리 위에 새로운 글자가 생겨났다. [한인규 / 보관 미승인 행위] [미수령 보전 손실: 계산 중] 인규는 글자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손끝이 굳었다. 종이 사본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졌다. “왜 그러시죠?” 이명숙이 일어났다. “그때도 이런 기분이었어요. 내가 도장을 안 찍으면 누군가 다칠 것 같은…” 우빈은 사본을 집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종이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옆의 책을 가져다 눌렀다. “그때 날인하지 않으신 건 잘못이 아닙니다.” 소라는 도서관 직원에게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도록 회의실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인규가 원한다면 지금 대화를 중단하고 귀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긴 숨을 쉬었다. “아니요. 제가 아는 만큼은 남기겠습니다.” 그가 스스로 말하자 유리의 손자국 하나가 지워졌다. 그 밑에 작은 주소가 남았다. [수익자관리실 / 구 서람기록창고 지하 2층] 우빈은 주소를 기록했다. 이제 자신을 과거의 수령인으로 적은 자를 찾을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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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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