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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빚을 먹는 금고 · 101화
PAYLUA ORIGINAL · 제101화

101화. 태어나기 전에 받은 것

빚을 먹는 금고 · 3,435자

오프라인 책장
어둠 속에서 우빈의 이름이 한 번 더 빛났다. [원본 00 / 최초 수익자 검증] [수령 사실 미확인] [이의 신청 가능 시간: 47:59:58] 정우빈은 금고 앞으로 다가서지 않았다. 문 안에는 아기용 이름표가 누워 있었다. 하얀 플라스틱에 파란 실이 달린, 어디서나 볼 법한 물건이었다. 그 위에는 그의 이름이 또박또박 찍혀 있었다. 이름표 뒷면의 날짜는 1998년 6월이었다. 그는 그해에 태어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없었어.” 금고가 낮은 금속음을 냈다. [최종 수익자: 정우빈] [수령 경로: 보호자 대리] 우빈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화면 속 이름표는 남아 있었지만, 벽에 떠 있는 글자는 찍히지 않았다. 손으로 만지면 수령에 동의한 것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까지 금고가 사람을 속이던 방식이었다. 그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아버지 정태수는 식탁에 앉아 장부처럼 빼곡한 메모를 읽고 있었다. 어머니 이명숙은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야식 냄새와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다른 세계의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 아빠.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내 이름이 적힌 서류가 있을 수 있어요?” 이명숙이 물을 잠갔다. “무슨 소리니?” 우빈이 사진을 내밀었다. 태수는 이름표를 보자 턱을 굳혔다. 어머니는 사진을 확대했다가 손을 멈췄다. “이거, 예전 보육실 이름표잖아.” “알아요?” “이 모양을 안다는 거야. 저 날짜에 네 이름표가 있을 리는 없지.”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건은 어디 있냐?” “방 금고 안에요. 안 꺼냈어요.” 태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 어머니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당신. 이번엔 먼저 말해 줘요. 그때 뭘 봤는지.” 아버지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1998년 잠긴 문, 안에 갇힌 두 아이, 구조가 늦어진 시간. 그 사건은 이미 집안 식탁까지 따라 들어왔다. 태수는 다른 사람의 말로 빈칸을 채우는 버릇을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내가 문을 잠근 건 사실이야. 하지만 아이 이름표를 만들거나 기록을 관리한 건 아니야.” “그 말이면 충분해요.” 우빈이 말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해 주세요.” 세 사람은 함께 방에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보는 금고 안에는 이름표가 없었다. 이명숙에게도 그저 낡은 금속 내부만 보였다. 우빈에게는 여전히 선명한 파란 실이 보였다. “또 저만 보이는 거네요.” 태수가 금고 문 가장자리를 살폈다. 손잡이 주변에 전에 없던 가느다란 눈금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망치를 꺼내려다 멈췄다. “옛날엔 이음새를 때려 열면 속이 보인다고 믿었지.” “지금은요?” “때리면 안에 있던 게 왜 부서졌는지부터 따질 거야.” 우빈은 웃지 못했다. 금고가 처음 가족의 빚을 없애 준 날, 그는 검은 입 안으로 계약서를 밀어 넣으며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의 이름을 담보로 걸었다는 것을 뒤늦게 배웠다. 이제는 태어나지도 않은 자신을 수령인으로 만드는 서류 앞에 서 있었다. 이명숙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1998년 6월, 나는 그 건물에 한 번 간 적이 있어.” 태수와 우빈이 동시에 그녀를 보았다. “당신은 거기에 없었다고…” 태수가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사고 현장에는 없었지. 며칠 뒤에. 봉사단하고 물품을 가져갔어. 젖은 옷이랑 담요가 부족하다고 해서.” “왜 한 번도 말씀 안 하셨어요?” “그 일이 당신 아버지 잘못하고 엮였다는 걸 안 건 훨씬 뒤였으니까. 나도 정확하지 않은 기억을 확신처럼 말하고 싶지 않았어.” 우빈은 방을 나서기 전에 이름표를 한 번 더 보았다. 파란 실이 금고 문 밖으로 나온 거리만큼 이름표가 자란 듯했다. 이름은 분명 자기 것이었다. 그런데 '내 물건'이라는 확신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 낯선 불일치가 그를 가장 두렵게 했다. 금고가 없던 시절에는 성명과 날짜가 인쇄된 종이는 대체로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관공서의 대장, 은행의 거래 내역, 병원 팔찌. 누군가의 생사와 생활이 그런 것들에 매달려 있었다. 이제 그는 너무 잘 알았다. 종이가 사실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누군가 사실을 바꾸려고 종이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거실에서 어머니가 물컵을 닦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시절 시험에서 실수한 날마다 어머니는 그렇게 조용히 물컵을 닦았다. 우빈은 그때마다 혼이 날 것을 기다렸지만, 어머니는 늘 먼저 밥을 먹자고 했다. 오늘 어머니가 보여 준 불안한 얼굴은 그보다 낯설었다. 자식이 태어나기 전 일 때문에 자기 자식에게 어떤 청구서가 오게 될까 봐 걱정하는 얼굴. 우빈은 방 문턱에 발을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머니를 곧바로 서류 속 피해자나 용의자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태수는 낡은 안경을 끼고 사진을 들여다봤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줄자를 꺼내 사진 속 이름표의 길이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평생 기계를 고친 사람에게 익숙한 행동이었다. “이름표라면 윗부분에 끈을 묶는 구멍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는 없죠?” “응. 그냥 그려 놓은 물건일 수도 있다. 아니면 누가 보육실 물품 모양을 잘못 기억한 걸 수도 있고.” 우빈은 그 작은 차이를 적어 두었다. 금고가 과거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라고 믿게 만들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몰랐다. 우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소라였다. 그는 사진과 시간을 전송하고 짧게 통화했다. 소라는 졸린 목소리로 듣다가 1998년 이름표라는 말에 또렷해졌다. “보육실 물품이면 원본을 건드리지 말고 현재 모습만 기록해요. 어머니의 방문 사실은 다른 자료로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의 신청 시간이 있어요. 이틀이에요.” “그것부터 의심해요. 기한을 걸었다고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통화를 끊은 우빈은 금고로 돌아왔다. 이름표의 파란 실이 스스로 움직여 문턱까지 왔다. 이름표 아래에 새 문구가 솟아올랐다. [보호자가 부재할 경우 후손에게 인계] [이름표를 꺼내면 수령 확인] 우빈은 금고를 향해 말했다. “나는 보지도 못한 사람의 물건을 받은 적 없어. 이건 누가 써 놓은 주장일 뿐이야.” 문 안에서 어린아이 울음처럼 얇은 소리가 들렸다. 우빈은 움찔했지만, 이번에는 앞으로 숙이지 않았다. 목소리가 끊기자 아주 작은 글씨가 드러났다. [최초 입력일: 2010년 11월] [표시상 사건일: 1998년 6월] 우빈의 심장이 뛰었다. 이것은 과거에 작성된 문서가 아니었다. 누군가 열두 해가 지난 뒤 그의 이름을 옛 기록에 끼워 넣은 것이었다. “엄마.” 이명숙이 대답했다. “왜?” “그날 가져간 물건 중에 아기 이름표도 있었어요?” 어머니가 한참 눈을 감았다. “있었어. 그런데 이름을 쓰지 않은 것들이었지.” 금고 안쪽이 쿵 하고 울렸다. [수령인 확인 요청] [보호자 정보 연결 완료: 이명숙] 우빈은 어머니를 문밖으로 물러나게 했다. 그의 이름 하나를 의심하기 시작하자 금고가 또 다른 이름을 꺼내 들었다. 그것이 이 장치의 가장 오래된 버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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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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