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연의 기록 소멸 예고까지 열두 시간이 남았다.
오지안의 진술은 자동 반려됐고, 차수 중단 표지판은 배송 보류된 봉투 안에 있었다. 현우는 기록관 복도 끝 자판기 앞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두 손으로 감쌌다. 빨간 글씨는 이제 미연의 이름뿐 아니라 서류에 적힌 '미연'이라는 글자 주위에서도 번졌다.
그는 그 흔들림이 싫었다. 사람이 실수할 때도, 시스템이 사람의 말을 지우려 할 때도, 자신에게 보이는 붉은 경고는 똑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작정 달려갈 곳이 없었다.
가은이 옆에 앉았다.
“못 자고 있죠?”
“이름 하나를 잃는 게 이렇게 쉽다는 걸 또 보니까요.”
“지금까지 찾은 걸 셉시다.”
“열두 시간 남은 시계, 가짜 송장, 반려된 진술.”
“그리고 실제로 남아 있는 것들요.”
현우는 잠시 생각했다. 미연이 직접 보관한 금속판의 사진과 영상 진술, 지안의 다른 인화본, 서림의 수첩, 시설 도면, 당시 계약서. 서로 다른 보관 장소에 있는 자료들이었다. 하나가 없어져도 나머지까지 동시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워지는 사람을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겁니다.”
***
가은은 정정 절차에 이해관계가 없는 감사를 요청했고, 기록관 운영위원회는 임시 회의를 열었다. 주영은 자동 반려 규칙이 고쳐지기 전까지 관련 자료를 폐기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근거는 초자연적인 붉은 이름이 아니라 확인 가능한 사실들이었다. 원본 문서와 전산 기록이 불일치했고, 승인 주체가 자기 자신을 검증하고 있었다.
나경은 회의장에서 미연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대신 법적 보존 조치를 요청받은 자료가 왜 자동으로 '폐기 대상'으로 바뀌었는지 질문했다.
위원 한 명이 말했다.
“관리자 02가 실제 사람입니까? 회사입니까?”
주영이 답했다.
“운영 권한을 표시하는 계정 이름입니다. 당시의 잘못된 규칙을 승계한 자동화 시스템과 현재 그 계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최종 책임을 지는지는 조사해야 합니다.”
위원회는 외부 검증자를 지정하고 긴급 보존 명령을 발령했다. 문서가 나올 때까지 시스템이 기다려 주지는 않았다. 새벽에 가까워지자 미연의 옛 고용 기록에서 사진이 사라졌고, 가게 전화는 다른 번호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현우는 화상 통화에서 미연에게 말을 걸었다.
“미연 씨, 지금 본인 이름을 말할 수 있습니까?”
“최미연이죠.”
“스무 해 전에 무슨 일을 보셨는지도요?”
“두 번 울렸을 때 멈추라고 했어요. 그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현우는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받쳤다. 그녀가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동안에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
시간은 이상할 만큼 느리게 흘렀다. 기록관 문 앞에는 야간 경비원이 서 있었고, 지하의 팩스 기계는 몇 분마다 새 종이를 내뱉었다. 종이마다 서명이 필요했고, 서명 하나가 누락되면 다시 담당자를 찾아야 했다.
현우는 그 지루한 기다림을 견뎠다. 이전에는 기적이 나타나면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를 살린 것들은 그런 기적이 아니었다. 자료를 옮겨 준 보존 직원, 두 번 확인한 운송 기사, 서명란이 비었다고 다시 묻는 경비원 같은 사람들이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가은이 말했다.
“지금부터는 제가 진행 상황을 볼게요. 현우 씨는 미연 씨 통화를 이어 주세요. 혹시라도 연결이 끊기면 통화 시간과 상태를 적고요.”
현우는 대답했다. 사람을 지키는 일에도 역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혼자 다 맡을 필요는 없었다.
밤 열한 시 이십 분, 보존 명령이 시청과 자료 창고에 도달했다. 미연의 배송 봉투는 정식으로 봉인됐고, 창고에 있던 문턱 도면은 별도 보관함으로 옮겨졌다. 외부 검증자는 수문 원본의 소리 파일을 독립된 저장 장치에서 열어 보았다.
한 번은 내부 철판의 구조 요청. 그 뒤의 두 번은 외부 차수 중단 경고. 세 신호의 울림과 간격이 달랐다. 이 사실은 소리만으로는 모든 사건을 증명하지 못했지만, '동일한 발신자가 세 번 격리 승인을 보냈다'는 02의 분류를 부정하기에 충분했다.
검증자가 화면을 가리켰다.
“원본에는 외부 경보 2회가 따로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전산화한 파일에는 세 소리를 이어 붙이고, 마지막 항목에 승인 코드를 넣었어요.”
“누가 넣었습니까?” 가은이 물었다.
“변경 기록을 보면 열세 해 전입니다. 원본 문서의 작성 시기와 다르죠. 등록 계정은 '시설 기록 전환 사업 02'로 되어 있어요.”
주영이 얼굴을 들었다. “그때부터 사람의 증언보다 분류 코드가 우선했던 거군요.”
자정 직전 운영위원회는 해당 분류를 잠정 무효로 처리했다. 자동 반려와 폐기 연동이 중지되고, 미연의 기록을 복구할 수 있는 재심사 절차가 열렸다.
현우가 보던 붉은 글씨가 조금씩 옅어졌다.
[00:02:11]
[00:01:10]
[00:00:09]
현우는 숫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누가 시간을 줄이는 건지, 혹은 복구 절차가 제때 반영되는지 알 수 없었다.
숫자는 0이 되지 않았다.
[정정 접수 / 소멸 유예]
미연은 화면 너머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현우는 그녀가 울도록 내버려 뒀다. 축하하거나 웃으며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언제 다시 오류가 생길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밤, 그녀가 겪은 일을 말할 수 있는 자리는 남았다.
***
회의가 끝나자 지안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은을 통해 현우와 짧게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 봤어?” 지안이 물었다.
“얼굴 잘린 사진만 봤어. 다른 사진은 아직.”
“그럼 기억하려고 애쓰지 마. 그때 네가 한 말 하나만 전해 줄게.”
현우는 조용히 기다렸다.
“너는 그날 문 앞에 서서 '안에 있는 사람이 나오면 나도 갈게'라고 했어. 내가 '너도 나가야지' 하니까 이렇게 말했지. '그럼 우리 같이 기다리자.'”
현우의 눈이 뜨거워졌다.
지안은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더했다.
“그런데 문을 잠그라고 명령한 사람은 우리 둘 다 아니야. 그 사람은 신호가 멈췄는데도 문을 잠갔어.”
“누군지 알아?”
“이름은 몰라. 하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라면 기억해.”
통화가 끝나자 기록관 벽에 걸린 낡은 인터폰이 갑자기 울렸다.
‘현장 중단 확인. 인원 재확인.'
20년 전 경고문의 문장이었다. 이어 낯익지 않은 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확인은 필요 없습니다. 격리를 유지하세요.”
제9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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