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폰에서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스무 해 전의 어른 목소리가 분명히 들렸지만, 그것이 지금 누군가 살아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녹음된 음성일 수도 있고, 02가 남긴 자동 응답일 수도 있었다.
가은은 인터폰에 대고 묻지 않았다. 대신 연결 장치를 분리하기 전에 재생 시각과 입력 경로를 확인했다. 주영은 사내망에 외부 접속 흔적이 남아 있는지 조사했다. 장치는 시 기록관에 있던 오래된 비상 설비와 연결돼 있었다.
“현장 중단 방송이 따로 저장돼 있었네요.” 주영이 말했다. “격리를 유지하라는 두 번째 문장만 나중에 이어 붙인 흔적이 있어요.”
현우는 눈을 감았다. 지난 며칠 동안 세상이 잘못 들은 세 번의 소리를 쫓았다. 이제는 잘못 붙인 한 문장을 만났다. 보호해야 하는 아이들의 이름 대신, 누군가 쓰기 편한 절차 이름만 남아 있었다.
“분명 누군가가 이렇게 바꿨겠죠.”
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을 찾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원래 기록을 바로잡는 것부터 끝내야 해요.”
***
공개 재심사에는 세 가지 자료가 제출됐다. 첫째, 수문 설비의 원본 음성과 차수 중단 경고문. 둘째, 최미연과 오지안이 서로 다른 시기에 남긴 직접 진술. 셋째, 사고 당일의 문턱 도면과 전산화 사업 때 바뀐 승인 코드의 변경 기록.
위원장은 심사 직전에 말했다.
“증언자들의 이름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도 자료의 진위를 검증할 수 있도록 진행합니다. 당사자 본인이 원하지 않는 과거 신상은 공개 대상이 아닙니다.”
지안은 별도 방에서 음성만으로 진술했다. 세아는 사진이 사고 후 촬영된 것이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미연은 그날 손잡이를 붙든 아이에게 작업을 멈추라고 말하지 못했던 일을 떠올렸다. 현우는 자신이 스스로 문 앞에 남겠다고 적은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을 진술했다.
“그때 기다리겠다고 한 건 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다렸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영원히 가둘 수는 없습니다.”
위원장은 잠시 펜을 내려놓았다.
“증인은 기억하는 사실을 말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의 선택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어요.”
현우는 그 말을 오래 듣고 있었다.
***
재심사는 두 가지를 확정했다. 사고 당시 내부에서 한 번의 구조 요청이 있었고, 외부 차수판에서는 두 번의 중단 경고가 울렸다. '세 번의 격리 승인'이라는 전산 분류는 원본으로 뒷받침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 분류를 근거로 이어진 자동 폐기와 증인 반려는 중단돼야 했다.
미연의 기록 복구는 별도의 행정 절차로 진행하기로 했다. 잃어버린 데이터가 모두 즉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고, 거기에 담긴 정보 중 무엇을 공개할지도 당사자가 결정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직업 기록과 연락처가 더 이상 자동으로 비워지지는 않았다.
지안의 진술도 정식 접수됐다. '명단 미등재'라는 사유는 더 이상 증언을 거절하는 근거가 되지 못했다. 지안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제가 밖에 서 있던 걸 기록해 주세요.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기록하지 않아도 돼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현우는 처음으로 문턱의 목록을 제대로 이해했다. 목록은 사람의 수를 정하는 규칙이 아니었다. 위험한 물속에서 어디에 발을 두면 안전한지 알려 주는 표시였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숫자를 사람의 순서로 읽었고, 그 뒤부터 번호 없는 사람은 존재를 설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
재심사장에서 나온 뒤 현우는 지안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오늘 직접 말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우리가 어릴 때 함께 있었다는 것도 이제 알겠어.'
지안은 한참 뒤 답했다.
'네가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 우리가 어릴 때 했던 말이 지금의 우리를 전부 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현우는 화면을 천천히 닫았다. 기억을 전부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안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고, 세아도 그랬다. 이십 년 전 무슨 일이 있었든 그들의 오늘까지 과거의 명단에 가둬 둘 수는 없었다.
서림에게서는 길지 않은 음성 메시지가 왔다. '오늘 애들 얼굴을 보니 내가 미처 다 듣지 못한 말을 지금이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목소리 끝에서 잠깐 웃었다. 현우는 그 메시지를 두 번 들었다.
해 질 무렵 현우는 하린과 함께 강변 산책로를 걸었다. 물은 평소보다 낮았고, 다리 아래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하린은 손잡이에 매단 종이배 열쇠고리를 흔들었다.
“오빠, 오늘은 일찍 끝났네.”
“응. 끝내야 할 것 중 하나를 끝냈어.”
“그럼 다른 건?”
“아직 많지.”
“그래도 밥은 같이 먹자.”
현우는 웃었다. 스무 해 전 기다리는 일을 시작했을 때는 자신이 세상을 지키는 유일한 사람인 줄 알았다. 이제 그는 그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저녁 식사를 영원히 미뤄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다.
집으로 돌아오자 현우는 오래된 기록표를 꺼냈다. 자신의 이름이 쓰인 09번 표였다. 붉은 글씨는 없었다. 이따금 종이가 바람에 흔들릴 뿐이었다.
그는 표를 버리지 않았다. 다만 책장 맨 앞에 세워 두던 것을 서랍 속 보관함으로 옮겼다. 매일 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날 밤, 주영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산화 사업 자료를 보다가 이상한 부속 문서를 찾았습니다. '격리 유지' 문장을 추가한 사람의 계정 인증서를 추적해 봤는데, 실제 서명자 정보는 비어 있어요.”
현우가 창가로 다가갔다.
“그래도 누가 승인했는지 알 수 없습니까?”
“누군가는 알아요. 인증서의 수신인 칸이 따로 남아 있습니다.”
주영이 보낸 화면에는 열세 해 전의 자동 전송 기록이 있었다.
[발신: 시설 기록 전환 사업 02]
[수신: 증인 미등록 보관함]
[전달 항목: 격리 유지 승인 원본]
[수신 번호: 10]
[수신 확인: 없음]
현우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09는 자신이 문 밖에 남긴 약속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나중에, 누군가에게 다른 번호가 전달돼 있었다. 그 번호는 아직 누구의 이름도 아니었다. 받아야 할 사람이 받지 않았다는 기록일 뿐이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발신 번호가 표시되지 않았다.
'나는 10번이 아니야.'
곧바로 두 번째 문자가 도착했다.
'그 번호를 보낸 사람도 아니고.'
현우는 답장을 쓰지 않고 가은에게 화면을 전송했다. 누군가 또 숫자 하나로 사람을 묶으려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그것을 구분해야 했다.
마지막 문자가 도착했다.
'10번을 찾지 마. 그 봉투 안에 들어 있는 건 사람 이름이 아니라, 문을 잠그라고 명령한 사람의 음성이야.'
현우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창밖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유리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두 번, 일정한 간격으로 울렸다. 현우는 더 이상 그 소리를 구조 요청으로만 듣지 않았다. 그것은 누군가가 멈추라고 알리는 신호일 수도 있었다.
그는 책상에 새 종이를 펼쳤다. 맨 위에 '등록 10'이라고 쓰지 않았다.
대신 질문 하나를 적었다.
'그 문을 잠그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인가.'
제10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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