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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97화
PAYLUA ORIGINAL · 제97화

97화. 사진을 오려 낸 손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864자

오프라인 책장
사진에서 얼굴이 잘려 나간 아이는 가운데 서 있었다. 현우는 확대된 사진을 보자 자기 어깨 위에 얹힌 작은 손을 발견했다. 잘린 부분이 너무 정교해서 처음에는 사람의 윤곽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자른 선의 아래쪽에는 아이의 셔츠 끝과 파란 운동화 끈이 남아 있었다. 사진의 오른쪽에 서 있는 아이는 세아였다. 그녀는 지금보다 훨씬 짧은 머리에 손목까지 내려오는 빨간 장갑을 끼고 있었다. 서람초의 대피 사건이 끝난 뒤 세 아이가 함께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날 바로 찍은 사진입니까?” 가은이 물었다. 보존 직원은 사진 재질을 먼저 살폈다. 촬영 시각은 폴라로이드만으로 확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진 모서리에 붙은 학교 행사 스티커는 사고 뒤 두 달 동안만 배포된 종류였다. 사진이 사고 전부터 있었다는 추정은 적어도 맞지 않았다. 현우는 세아에게 사진을 보여 주기 전에 연락했다. 세아는 나경의 취재 현장에 있었다. 화면으로 사진을 보는 순간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이거… 누가 보냈어?” “보낸 사람은 확인 중이야. 네가 괜찮다면 사진 속 사람이 누군지 물어보고 싶어.” 세아는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화면 위에 손가락을 올려 자신의 어린 얼굴을 가렸다. “맞아, 나야. 그리고 왼쪽은 현우가 맞아.” “가운데는?” “내가 말하면 그 애가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길 수 있어.” 가은은 바로 질문을 거뒀다. “신원이 아니라 당시 상황부터 확인해도 될까요?” 세아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사진은 구조가 끝난 날 찍은 게 아니야. 그 애가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셋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찍었어. 이름을 적지 않기로 했지. 그 애가 원했으니까.” *** 세아는 어린 시절 사진을 오래 바라보다가 손목을 뒤집었다. 지금은 장갑을 끼고 있지 않았지만 빨간 장갑을 매고 다니던 버릇 때문에 손목에 늘 작은 실자국이 남아 있었다. “사진을 찍을 때 누가 웃으라고 했는지 기억나요?” 나경이 물었다. “아무도 안 그랬어요. 지안이 처음 웃었고, 그러니까 우리도 웃었어요. 다 끝났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에는 잠깐 괜찮았거든요.” 나경은 그 말을 원고에 적지 않았다. 세아가 기사에 싣도록 허락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자는 그 표정을 기억했다. 증거가 되는 사진에도 살아 있었던 순간이 있고, 사건을 설명한다며 그 순간까지 빼앗아서는 안 됐다. 태경은 사진의 옆면을 확대했다. 현우의 뒤에는 비닐천막과 응급 급수 시설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대피소 밖에서 며칠씩 지냈던 장소였다. 천막 모서리에는 똑같은 삼각형 문양이 두 개 있었다. 그 문양은 시에서 배포한 구호물품 표시가 아니었다. 당시 시설 운영을 맡은 외부 업체의 표식이었다. 주영이 오래된 계약서를 찾아냈다. 외부 업체는 차수판 설치와 작업자 안전 교육을 맡았으며 사고가 난 달에 계약이 해지됐다. “그 회사가 지금 02 운영팀과 같은 회사인가요?” 현우가 물었다. “법인 이름이 다릅니다. 인력이 겹쳤는지도 더 확인해야 해요.” 현우는 찢겨 나온 얼굴 자리 옆의 흰 선을 바라봤다. 누가 언제 사진을 잘랐는지 아직 몰랐다. 그런데 다른 한 짝의 운동화를 들고 나타난 사람이 그 사진을 어떻게 갖게 됐는지 더 궁금했다. 미연이 전화를 걸었다. “어제 수리점 앞에 왔던 사람의 목소리, 조금 기억나는 것 같아요.” 가은은 통화를 녹음해도 되는지 물었다. 허락을 받은 뒤 미연이 말을 이었다. “여자였어요. 젊지 않았고, 아주 낮게 말했어요. 신발을 돌려주겠다고.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람은 신발을 보여 주지 않았어요. 상자를 멀리 두고 갔지.” “그 사람이 뭘 신고 있었는지는 보셨나요?” “비가 와서 바닥만 봤어요. 우산 아래에 작은 발이 보이긴 했는데… 정확히 기억나진 않아요.” 주영은 영상에서 상자 배달자의 신발 크기를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익명의 문자에 쓰인 '신고 있었다'라는 말은 여전히 검증되지 않았다. *** 그날 오후 세아는 기록관으로 왔다. 사진을 다시 본 그녀가 말했다. “가운데 얼굴을 오린 건 그 애 본인이었어. 원본에서 자기 얼굴만 잘라 냈지. 그건 실종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 어른들이 그 애의 행선지를 함부로 알려 주는 게 무서웠거든.” “왜 무서웠는데?” 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아는 사진 아래에 적힌 날짜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날 누군가 우리 사진을 찍으며 말했어. '밖에 있던 아이는 구조 명단에 없으니 증언도 할 수 없다'고. 가운데 애가 화를 냈어. 자기가 말한 걸 없었던 일로 만들지 말라고.” 현우는 목 안쪽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어떤 아이는 이름이 적혀서 위험했고, 어떤 아이는 적히지 않아서 아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세아는 눈을 들었다. “그 애가 얼굴을 오린 뒤 뒷면에 썼어. '내가 보고 들은 건 지우지 마.' 나는 그 사진을 잃어버린 줄 알았어.” 현우는 사진 뒷면을 다시 확인했다. 최근 찍힌 붉은 경고 문장 아래, 빛을 비스듬히 비추자 오래된 연필 자국이 나타났다. '내가 보고 들은 건 지우지 마.' 그 문장 바로 옆에는 아주 작은 발자국 두 개가 그려져 있었다. 서로를 마주 보는 발이 아니었다. 하나는 문 안을 향했고, 하나는 문 밖의 배수구 쪽을 향했다. 그때 주영에게 연락이 왔다. 외부 업체의 옛 계약서 첨부 파일에서 한 줄이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현장 중단 신호 수신 시, 출입구 잠금 해제 전에 배수 압력 확인 필수.' “잠깐만요.” 현우가 말했다. “그럼 두 번 울렸다고 바로 문을 열어선 안 됐던 거네요.” 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지 말라는 경고였을 수 있어요. 그런데 누가 그 경고를 격리 완료의 증거로 바꿨을까요?” 현우는 사진의 잘린 얼굴을 바라봤다. 누군가 그 아이의 얼굴은 지웠지만, 아이가 남긴 두 발자국은 아직 지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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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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