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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95화
PAYLUA ORIGINAL · 제95화

95화. 목격자 지정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880자

오프라인 책장
최미연의 이름은 영상 속에서도 붉었다. 현우는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다시 보아도 글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두 번 깜빡이는 동안 숫자는 줄어들었다. “미연 씨, 지금 주변에 누가 있습니까?” 미연이 황당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가게 문은 닫았어요. 왜요?” 현우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숫자를 말할지 망설였다. 붉은 이름이 보인다고 해서 곧바로 상대를 겁줄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위험을 숨겨서도 안 됐다. “미연 씨의 기록이 외부에서 삭제 대상으로 표시됐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안전을 위해 몇 가지 조치를 같이 하셨으면 합니다.” 가은은 경찰 협조와 증거 보존 경로를 설명했다. 미연은 금속판을 손으로 들고 서성였다. “스무 해를 숨겨 뒀어요. 이제 꺼내서 보여 주려니까 이런 일이 생기네요.” “금속판을 먼저 안전하게 보관해 주세요. 사람을 보내기 전까지 가게에서 혼자 대면 조사를 받지 마시고요.” 그들이 통화를 끝낸 뒤 현우는 한참 벽을 바라봤다. 세상이 지워지는 경험에서 겨우 돌아왔는데, 바로 다른 사람의 시계가 켜졌다. 자신의 능력이 경고인지 위협인지 알 수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미연이 운영하는 수리점의 인터넷 리뷰에서 사진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건물 주소는 남아 있었지만 상호가 빈칸으로 표시됐다. 은행 거래 내역에는 가게 이름 대신 무작위 숫자가 붙었다. 미연은 아직 멀쩡히 전화를 받았고, 손님도 평소처럼 들어왔다. “제 이름을 잊지는 않아요.” 미연이 말했다. “그런데 영수증에는 이름이 없어요. 어젯밤에는 집 전화기에서 제 번호도 지워졌고요.” 태경이 통화에 들어왔다. “기록이 먼저 지워지고 있습니다. 현우 씨 때와 순서가 달라요.” 주영은 세 구역의 행정 시스템이 같은 아카이브 업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업체의 자동 정리 규칙 중 하나에 '출처 불명 현장 파일의 관계자 참조 제거'라는 항목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개인정보 보호 조치였다. 문제는 '출처 불명'이라는 판정이 원본이 아니라 02의 가공된 작업 목록에서 내려왔다는 점이었다. “원본에 있는 증인을 없애면 원본 자체가 출처 불명이 됩니다.” 가은이 말했다. “그러면 또 증인을 지울 수 있죠.” 나경이 받아쳤다. “자기 증명을 없애 놓고 증명이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가은은 기자에게 공개 범위를 다시 확인했다. 미연의 신원은 당사자 허락 없이는 기사에 쓰지 않기로 했다. 나경은 이름 대신 기록 삭제 절차와 외부 검증을 방해하는 구조를 취재하기로 했다. 현우는 미연에게 통화를 요청했다. “원하시면 직접 공개 진술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셔야만 기록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미연은 잠시 웃었다. “당신들은 말을 꼭 어렵게 하는군요.” “그냥… 결정하시는 건 미연 씨라는 말입니다.” 그녀는 한동안 생각했다. “제 이름은 일단 숨겨 주세요. 금속판은 보낼게요. 그리고 제가 직접 본 사실은 녹음해도 됩니다.” *** 미연은 오후 영업을 잠시 멈췄다. 수리점 문에 '개인 사정으로 조기 마감'이라고 적은 종이를 붙이자 글자의 절반이 희미해졌다. 처음에는 펜이 덜 나왔나 싶었다. 다시 썼지만 이번에도 잉크가 번졌다. 미연은 휴대전화로 종이를 찍었다. 사진 속 글자는 또렷했다. 그러나 사진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니 마지막 단어가 빈칸이 됐다. 종이와 화면 중 무엇이 지워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결국 종이를 떼어 가방에 넣고 가게 문을 닫았다. 문손잡이의 차가운 감촉은 예전과 같았다. 사라지는 일에도 이렇게 평범한 동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분했다. '나는 여기 있다.' 미연은 누군가에게 보내려다 만 문장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남겼다. 그리고 가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겁이 난다는 말을 덧붙이는 데도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한편 02 운영팀 명의로 시청 시설과에 새 공문이 도착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수문 대피소 주변 시설을 원상복구한다.' 원상복구라는 말 아래에는 보존 대상 표지판과 오래된 전기 배선을 폐기하는 공정이 포함돼 있었다. 가은은 시설과 담당자와 회의를 했다. 낡은 건물은 안전하게 정비해야 했다. 그러나 조사 중인 부품을 버릴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작업 자체를 모두 막는 대신 필요한 부품의 위치를 분리하고, 다른 구역의 정비는 계속 진행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시설과 담당자가 말했다. “사실 이 공문이 어제와 오늘 두 번 왔어요. 내용은 같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에는 승인자가 바뀌었습니다.” “누구로요?” “최미연 씨로 돼 있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미연은 시청 시설과와 관계가 없었다. 주영이 공문 기록을 확인했다. 결재 인증은 유효했다. 다만 실제 사람이 서명하는 대신 과거 기록의 빈칸을 자동으로 보정한 시스템이 승인자로 미연의 이름을 끌어온 것이었다. 현우는 그 기묘한 잔혹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증인을 지우려는 절차가 그 증인의 이름을 사용해 물건을 폐기하고 있었다. *** 그날 저녁, 미연에게서 택배 접수증 사진이 도착했다. 낡은 판은 이중 봉투에 들어 있었고, 수취인은 시 기록관의 보존 담당자로 지정돼 있었다. 집으로 보내거나 길거리에서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식 증거 보관 경로를 택했다. 택배 추적 화면에는 '집하 완료'가 떴다. 현우는 조금 숨이 놓였다. 그러나 한 시간 뒤 주영이 전화했다. “운송 내역이 바뀌었습니다. 수취 장소가 기록관이 아니라 폐기물 처리소로 변경돼 있어요.” “누가 바꿨습니까?” “시스템에는 신청인 본인이 바꾼 걸로 나옵니다.” 현우는 휴대전화를 쥐었다. 미연의 붉은 숫자 아래 작은 글씨가 새로 생겼다. [증인 귀속: 원본 수거 대상] 그는 깨달았다. 이제 누군가를 살리는 일은 실종 예정자를 찾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말했다는 사실을 지키는 일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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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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