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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93화
PAYLUA ORIGINAL · 제93화

93화. 문턱의 목록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3,043자

오프라인 책장
현우는 그 문장을 가은에게 보여 주었다. '다른 한 짝은 신발을 가져간 사람이 신고 있었어요.' “어른이 아이 신발을 신었다는 뜻일까요?” 가은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운동화 한 짝만 발견됐다는 사실을 아직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보존품 목록을 본 적이 있거나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 사람이 물리적으로 신었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갖고 있었다는 표현일 수도 있어요. 확인해야 해요.” 현우는 답장을 작성했다. '신발 주인의 이름은 묻지 않겠습니다. 위험 없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전송 버튼을 누르자 답이 거의 즉시 왔다. '문턱의 목록을 보세요. 그 명단에는 발이 있던 자리만 적혀 있어요.' *** 주영이 찾아낸 문턱의 목록은 주민 명부가 아니었다. 수문 대피소 출입구의 구조 작업자들이 사용한 바닥 표시 기록이었다. 물이 차오를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을 놓아야 할 위치에 숫자를 칠해 두었고, 점검이 끝날 때마다 그 숫자를 확인했다. 녹슨 도면 가장자리에는 표시가 아홉 개 있었다. “09가 사람 번호가 아닐 수도 있는 건가요?” 태경이 물었다. “아니요. 현우 씨의 등록 09는 실제로 있었어요. 지금 보는 아홉 개 표시와 같은 원본 체계에서 왔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주영은 서로 다른 문서 위에 붉은 선을 긋지 않았다. “숫자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연결하면 02가 했던 실수를 반복합니다.” 가은은 도면에 찍힌 잉크의 연도를 확인했다. 목록은 사고보다 이 년 전에 작성된 수문 점검 계획에 들어 있었다. 사고 당일에는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번호를 사용했을 뿐이었다. “운동화의 두 번째 인계가 사고 이 년 전인 것처럼 보였던 이유가 이거일 수 있어요.” “무슨 뜻이죠?” 현우가 물었다. “물품 하나가 아니라 번호 17번 바닥 표시를 인수했다는 기록이 신발 상자에 잘못 연결됐을 수도 있다는 거죠.” 재난자료 창고에서 담당자가 내선 전화를 받았다. 서로 다른 보존 체계의 번호가 전산화 과정에 합쳐진 이력이 있었다. 표찰 번호 E-00-17과 시설 위치 00-17을 같은 물건으로 처리한 흔적이었다. 현우는 오래된 말 한마디를 떠올렸다. 보호 대상으로 전환한다던 00의 원본 명령. 그리고 대기자를 보존본으로 만든 02의 계산. 사람과 물건을 같은 칸에 넣은 오류가 또 있었다. *** 문턱의 목록을 실제 시설과 비교하기 위해 이들은 안전 점검 일정에 맞춰 수문 대피소를 방문했다. 가은은 관리기관의 출입 승인을 받고, 도식은 점검 통로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지 먼저 살폈다. 붕괴 위험 구간에는 노란 경계선을 쳤다. 복도는 생각보다 짧았다. 현우의 기억 속에서는 끝이 없던 통로였다. 벽의 페인트가 벗겨진 자리에는 작은 발자국을 표시한 원이 남아 있었다. 07, 08, 09. 마지막 원 옆에는 벽으로 꺾이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현우는 09 앞에 멈췄다. 자신이 그날 여기 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기억에 남은 복도의 각도와 온기는 달랐다. 그는 발을 원 위에 올려놓지 않았다. 공간과 사람을 억지로 일치시키고 싶지 않았다. 도식이 손전등을 비췄다. 화살표 끝에는 작은 점검구가 있었고, 안에는 길쭉한 금속 손잡이와 비상 차수판이 보였다. “밸브를 한 번 열고 한 번 닫으면 안쪽에서 두 번 충격음이 나겠습니다.” 주영이 장비를 설치해 낮은 수압으로 시험했다. 첫 번째 시험에서는 두 소리 사이 간격이 길었다. 두 번째에서는 짧았다. 세 번째에서야 사고 음성과 거의 같은 파형이 나왔다. 하지만 끝에 붙은 클릭음은 재현되지 않았다. 태경이 사진을 보다가 손잡이 아래의 자리를 가리켰다. “여기 원래 뭔가 더 붙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빈 나사 구멍 두 개가 정사각형으로 벌어져 있었다. 도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동 차단 레버를 안내하는 작은 경고판이었을 겁니다. 누가 떼어 갔거나, 부식돼서 떨어진 거겠죠.” 가은은 현장 증거를 촬영했다. 지금까지 찾은 사실은 단 하나였다. 두 번의 소리가 물의 충격일 수 있다는 것. 그렇다고 사람의 개입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 밸브를 움직인 누군가는 있었을 것이다. *** 점검이 끝나자 현우는 안전선 밖에 놓인 접이식 의자에 앉았다. 발끝에 흙물이 묻어 있었다. 옛 복도에 들어왔는데도 정작 그 밤의 얼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들리지 않던 신호만 점점 구체적으로 들려왔다. 태경이 따뜻한 물병을 건넸다. “기억이 더 났어요?” “아니요. 그런데 신기하게 덜 두렵네요.” “모르는 게 뭔지 알아서?” “네. 아까는 제 기억이 틀렸으면 제 인생 전부가 틀린 것 같았거든요.” 태경은 대답 대신 도면을 접었다. 그의 손목에는 생존자 인식표를 착용했던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자신도 남들이 적어 둔 정보와 자신의 기억이 어긋나는 일을 수없이 겪었다. 현우는 그 자국을 보고 더 묻지 않았다. 건물 밖에서 기다리던 서림이 현우에게 낡은 종이를 건넸다. 사고 다음 날 자신이 급히 쓴 기록이었다. 글씨는 물에 번졌지만 마지막 문장은 읽을 수 있었다. '문 안의 아이는 구조 후에 말을 하지 못했다. 밖의 아이는 물이 멈추자 울었다.' 현우가 종이를 오래 바라보자 서림이 덧붙였다. “나는 밖의 아이가 너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네가 울었던 걸 내가 직접 본 건 아니야. 나중에 누군가 그렇게 말했지.” “누가요?” “당시 현장 책임자였던 사람. 나는 이름을 쓰지 않았어. 잘못 기억한 줄 알았거든.” 현우는 종이를 다시 보았다. 서림이 직접 본 일과 남에게 들은 일이 처음으로 구분되고 있었다. 건물 밖 주차장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래전 기록을 보던 현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문턱의 목록 찾으셨어요?” 낯선 여자 목소리였다. 현우가 대답하자 여자가 말했다. “그럼 그 목록 맨 뒤를 보세요. 아홉 번째 동그라미가 끝이 아닙니다.” 통화는 거기서 끊겼다. 현우는 종이를 뒤집었다. 도면 접힌 곳 안쪽에 연필로 그린 작은 별표가 하나 더 있었다. 그 옆에는 숫자 대신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숫자 밖에 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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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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