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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92화
PAYLUA ORIGINAL · 제92화

92화. 젖은 운동화 한 짝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794자

오프라인 책장
현관문 너머에는 아무도 없었다. 현우는 문을 열기 전에 화면으로 복도를 확인했다. 잠금장치는 그대로였고, 바닥에는 배달 상자도 없었다. 그러나 조금 전 분명히 두 번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정확히 같은 간격이었다. 그는 복도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건물 관리실에 연락해 공동 출입구 영상이 남아 있는지 물었다. 관리인은 그 시각 어느 누구도 복도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 앞에서 소리가 다시 났다. 똑. 똑. 이번에는 현관문이 아니라 싱크대 밑 배수관에서 올라왔다. 현우는 무릎을 꿇었다. 금속 관에 손바닥을 대자 진동이 전해졌다. 아래층 누군가 수도를 틀었다 잠근 뒤, 관 안에서 물이 흔들리는 소리였다. 두 번의 소리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두드린 것이라기보다 장치가 켜지고 꺼질 때 나는 듯했다. 현우는 곧바로 가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옛날 녹음기의 두 번이 사람 손에서 시작됐다는 전제부터 틀렸을지도 몰라요.” “녹음을 해 두세요. 건물 배관 소리와 그때 파형을 비교해 볼 수 있게요. 그리고 혼자 시설에 들어가지 말아요.” “알겠습니다.” 그는 휴대전화에 소리를 녹음하고, 오늘은 하린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사소한 약속을 지키는 일이 이상하게 어려웠다. *** 다음 날 기록관에 소방 설비 전문가 김도식이 찾아왔다. 그는 수문 대피소의 옛 배관 사진을 보자 먼저 물었다. “왜 두 번이 사람 신호라고 생각하셨죠?” “절차 문서에 그렇게 적혀 있어서요.” “저런 관은 밸브를 급하게 닫으면 두 번 울릴 수 있습니다. 물기둥이 충격을 되돌려 보내거든요. 다만 자동으로 두 번 울리는 배관과 누가 직접 두드린 배관은 표면의 흔적이 다르죠.” 그가 보여 준 것은 오래된 점검 기록의 사진이었다. 점검구 손잡이 아래에 작은 금속 방진판이 붙어 있었다. 방진판을 열면 배수로 밑에 쌓인 침전물을 제거할 수 있었다. 사진 한 귀퉁이에는 어린아이 운동화 한 켤레가 찍혀 있었다. 현우의 시선이 멎었다. 파란 끈의 왼쪽 운동화는 발등이 벗겨져 검은 천이 드러나 있었다. “이 사진은 누가 찍었죠?” 도식이 기록지를 뒤집었다. “시설 관리 용역이요. 원본 뒷면에 촬영자의 서명이 있었는데, 스캔본에는 빠져 있습니다.” 가은이 물었다. “신발은 증거로 수집했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 물품 번호를 찾아봐야겠네요.” 번호는 E-00-17. 보관 장소는 폐쇄된 서람초가 아니라 시립 재난자료 창고였다. 주영이 연락을 넣었고, 가은은 정식 인계 기록과 물품 봉인 상태를 확인하자고 했다. 그날 오후 창고 담당자가 보존품 상자를 가져왔다. 파란 운동화는 한 짝뿐이었다. 젖은 진흙은 굳어 있었고, 신발 안쪽에는 희미한 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돌려주지 말 것.' 현우는 숨을 들이켰다. 어린아이의 신발에 왜 그런 말이 쓰였을까. “누가 신발을 돌려주면 안 됐다는 거죠?” 태경이 물었다. 가은이 확대경을 내려놓았다. “아직 주어가 없어요. 잘못 돌려주면 위험한 물건이었을 수도 있고, 신발 주인이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도식은 운동화 밑창을 자세히 살펴봤다. 얇은 고무 사이에 흰 가루가 끼어 있었다. 학교 운동장 모래가 아닌 시멘트 계열 물질이었다. “이건 수문 안쪽 교실 바닥이 아니라 바깥 점검로에서 묻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 창고는 오래된 운동화만 보관하는 곳이 아니었다. 뒤편 선반에는 물에 젖었다 마른 식판, 주인을 찾지 못한 장갑, 이름이 벗겨진 보온병도 있었다. 사고가 끝났다고 물건까지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현우는 상자마다 달린 보존 기한을 보다가 물었다. “반환 신청을 한 사람이 없으면 이런 물건들은 어떻게 되나요?” 담당자는 접수 내역을 보여 주었다. “유실물로 처리할 수도 있지만, 재난 증거물은 다른 절차를 따릅니다. 돌려줄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으면 임의로 보내지 않아요.” 가은이 운동화가 담긴 상자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돌려주지 말 것'이라는 말만 보고 누군가를 가둬 두려 했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이 물품에 붙은 실무 지시일 수도 있죠.”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 위의 짧은 문장은 편리했다. 하지만 짧을수록 앞뒤를 잘라 내기도 쉬웠다. 물품 상자 맨 아래에는 세로로 접힌 노란 표찰이 있었다. 보존 직원이 지문과 필적 검사에 영향이 없도록 먼저 촬영했다. 표찰의 앞면에는 '배수구 접근 금지'라는 안내가 있었다. 뒷면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대피 사고 당일과 같았다. 서명 칸 아래에 아주 작은 문장이 보였다. '내가 여기 있었던 건 적지 마세요.' 현우는 표찰을 읽고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한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숨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을 무조건 소멸 시스템의 피해라고 단정하면 안 됐다. 도망친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알려지면 위험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었다. 가은은 표찰을 봉투에 넣었다. “우리가 밝혀야 하는 건 이 아이의 실명이 아니에요. 그날 배수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죠.” 그때 창고 직원이 인계대장의 한 페이지를 들고 왔다. “이상한 게 있습니다. 운동화는 하나인데 인계 확인이 두 번 됐어요.” 첫 번째 서명은 사고 뒤 사흘. 두 번째 서명은 사고 당일보다 이 년 전 날짜였다. 주영이 미간을 좁혔다. “있지도 않았던 신발을 이 년 전에 인계했다는 겁니까?” 가은은 숫자가 뒤바뀐 것인지 원본을 확인하자고 했다. 그 순간 현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날 익명 신청서의 회신 경로로 온 메시지였다. '운동화 한 짝을 찾았나요? 다른 한 짝은 신발을 가져간 사람이 신고 있었어요.'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그 사람은 어린아이가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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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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