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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9화
PAYLUA ORIGINAL · 제9화

9화. 동생이 남긴 노래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6,045자

오프라인 책장
접수실의 문이 닫히자 바깥 소리가 끊겼다. 방금 전까지 계단 아래에서 들리던 사람들의 대화, 시장 상인이 그릇을 정리하는 소리, 먼 도로의 자동차 경적이 순식간에 멎었다. 이현우는 문손잡이를 돌렸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쇠붙이를 잡은 느낌조차 없었다. 손바닥에 아무것도 없는 듯 미끄러운 벽면만 닿았다. "나갈 방법은 있을 거예요." 윤가은이 말했다.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려 애썼지만, 그 말이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라는 것을 현우는 알았다. 수첩 첫 장의 글씨가 더 흐려져 있었다. 그녀의 기억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윤가은 / 62:40:11] 가은의 머리 위에는 여전히 사흘짜리 붉은 이름이 떠 있었다. 현우는 그 숫자보다 더 무서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은이 현우에 관한 기억을 잃으면 그의 보류 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는 것. 휴대전화의 안내는 그 일을 십이 시간 안에 예고하고 있었다. 하린이 장부를 펼쳤다. 그 안에는 방금 접수한 사람들의 기록이 빽빽하게 들어 있었다. 흰 장부였는데 글씨는 종이 위에 적힌 것이 아니라 종이 아래쪽에서 떠오르는 듯 보였다.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문장들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원래 물건이 뭔지 알아야 해요." 하린이 말했다. "저 사람 말대로라면 우린 보관자가 된 거잖아." 현우가 대답했다. "그럼 보관소에 있는 물건 중 무엇을 돌려줘야 한다는 거지?" 가은은 접수실 안쪽 서류함을 살폈다. 서랍마다 '기억', '관계', '원본', '처리 보류'라고 쓰여 있었다. '처리 보류' 서랍을 열자 금속 상자 세 개가 나왔다. 상자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이현우] [윤가은] [민하린] "우리 것들이네요." 현우가 말했다. 그는 자기 이름이 붙은 상자를 먼저 열려고 했다. 가은이 말렸다. "잠깐. 지워진 기억이 들어 있는 물건을 함부로 열면 어떤 대가가 생길지 몰라요." "하지만 여기 갇혀 있잖아요." "그럴수록 순서를 정해야 해요." 가은은 수첩 마지막 장에 짧은 표를 그렸다. 발견한 물건, 추정되는 주인, 개봉 전후의 변화. 그리고 세 사람의 서명을 각각 받았다. 현우가 웃으려 하자 가은이 먼저 말했다. "지금 내게 남은 건 이 방법뿐이거든요." 현우는 그녀가 동생을 잊은 뒤에도 수사관으로서의 습관을 잃지 않았다는 점을 떠올렸다. 잃어버린 기억과 남아 있는 습관 사이의 차이를 기록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복원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가은의 상자에는 작은 머리핀이 들어 있었다. 푸른색 플라스틱 별이 달린 낡은 머리핀이었다. 별 끝 하나가 부러졌고, 금속 집게에는 오래된 붉은 실이 감겨 있었다. 그것을 보자 가은의 손이 멈췄다. "이거……" "기억나요?" 현우가 물었다. "몰라요." 가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머리핀을 든 손은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머리를 묶어 줬던 기억이 나요. 얼굴은 안 보여요. 근데 자꾸 그 애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린이 조용히 말했다. "그건 기억보다 아래쪽에 남은 거예요." "무슨 말이니?" "사람을 지울 때 말과 얼굴은 바꿔도,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까지 다 바꾸진 못해요. 형사님 손이 아는 거죠." 가은은 머리핀을 쥔 채 잠시 눈을 감았다. 자신도 모르게 자장가의 첫 세 음을 흥얼거렸다. 현우는 그 음을 알아들었다. 공중전화에서 들었던 바로 그 멜로디였다. 하린이 고개를 들었다. "계속 불러 봐요." "다음이 기억 안 나." "소리만 따라가도 돼요." 가은이 두 음을 더 불렀다. 머리핀의 부러진 별 끝에서 작은 불빛이 나왔다. 접수실의 형광등이 하나씩 켜지더니 맞은편 벽에 다른 문이 나타났다. 문 위에는 '반환 창구'라고 적혀 있었다. 현우는 숨을 삼켰다. "노래가 열쇠였어." 가은이 자장가를 멈추자 문도 희미해졌다. 다시 흥얼거리자 윤곽이 돌아왔다. 이곳은 사람의 이름뿐 아니라 그 사람에게 남겨진 습관과 감정에도 반응하는 곳이었다. *** 반환 창구로 들어가기 전, 가은은 수첩을 현우에게 건넸다. "이거 잠깐만 가지고 있어요." "왜요?" "제가 안쪽에서 뭔가를 잊더라도 밖에 있는 누군가는 봤다는 증거가 필요해서요." 현우는 수첩을 받아 들었다. 종이 모서리는 이미 손때로 부드러워져 있었다. 하루 사이에 수없이 펼쳤다 닫은 노트였다. 첫 장에 적힌 서로의 서명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동생이 있었다'라는 문장은 다른 문장보다 옅어져 있었다. "잊지 않게 해 드릴게요." "그렇게 쉽게 약속하지 마요." 가은이 말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게 사람의 기억을 고치는 일이라면, 현우 씨도 언젠가는 저를 잊을 수 있어요. 약속보다 필요한 건 그때 다시 확인할 방법이에요." 현우는 잠시 부끄러워졌다. 무슨 일이 생겨도 기억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멋진 일처럼 느껴졌지만, 이곳에서는 그 말이 결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럼 제가 오늘 형사님한테 하나 빚질게요." "무슨 빚요?" "상황이 끝나면 같이 따뜻한 밥 먹어요. 경찰서 얘기도, 사라진 사람 얘기도 잠깐 덮어 놓고요. 그때 오늘 일 중에 서로 제일 기억나는 장면 하나씩만 말하기로 해요." 가은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곧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나타났다. "좋아요. 하지만 밥은 제가 살게요." "왜요?" "현우 씨가 내 무전기 꺼 줬으니까요. 제일 듣기 싫은 말을 끊어 준 값입니다." 현우도 웃었다. 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어떤 날에 함께 식사할지를 정하는 평범한 약속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눈앞의 이상한 장소가 조금 덜 무섭게 느껴졌다. 하린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공책에 짧게 적었다. '두 어른이 살아서 밥 먹기로 약속했다.' 그 문장은 지금껏 그녀의 공책에 적힌 경고들 사이에서 유난히 밝아 보였다. 문 너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서가였다. 사람의 기억이 물건으로 바뀌어 꽂힌 곳이었다. 각 선반에는 작은 유리병과 종이봉투, 장난감, 신발 한 켤레 같은 것들이 모여 있었다. 어떤 물건에서는 아이 웃음소리가 나왔고, 어떤 것에서는 비 오는 날 흙냄새가 났다. 선반 번호를 따라 걷던 현우는 '윤가은'이라고 적힌 책갈피 하나를 발견했다. 책갈피에는 날짜와 함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동생을 다시 찾는 날, 그 노래를 끝까지 부를 것.' 그러나 동생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하린이 가은의 머리핀을 책갈피 옆에 올려놓았다. 별 조각이 짧게 빛나더니 책갈피 뒷면에 흐릿한 그림 하나가 나타났다. 작은 여자아이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곁에는 흰 우산이 있었고, 뒤쪽에 둥근 0 표시가 달린 지하철 출입구가 보였다. "여기……" 가은이 속삭였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현우는 그녀가 기억을 찾은 줄 알았다. 그러나 가은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안 떠올라요. 눈물이 나는데 이유가 없어요." 현우는 등을 토닥이지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눈물을 닦을 수 있도록 조금 떨어져 기다렸다. 하린은 서가 한쪽 벽의 안내문을 가리켰다. '원본 기억 반환 시, 등록된 현재 기억과 충돌할 수 있습니다. 중복 회수의 책임은 신청인에게 있습니다.' 가은은 머리핀을 손바닥에서 굴려 보았다. 금속 집게는 오래 만져서 한쪽이 부드럽게 닳아 있었다. 누군가 아이의 머리를 매일 아침 묶어 주었다면 바로 이 부분을 반복해서 잡았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핀을 여는 방향부터 알고 있었다. "제가 집에서 동생 머리를 묶어 줬을까요?" 현우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그랬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확실한 건 형사님 손이 그걸 익숙하게 다룬다는 사실뿐이에요." "이상해요. 기억이 하나도 없으면 슬픔도 없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가은은 잠시 말을 멈췄다. "기억이 없는데 왜 그 애가 보고 싶을까요?" 현우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생각할수록 세상에 있는 상실은 모두 같은 모양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잃어버린 사람을 똑똑히 기억하면서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누구를 잃었는지도 모른 채 빈자리에 손을 뻗는 것일지 모른다. 하린이 말했다. "보고 싶은 마음이 남은 거예요. 그 마음까지 없으면 누구도 다시 찾으러 오지 않을 테니까." "그럼 네가 여기 남아 있는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니?" 가은이 묻자 하린은 잠깐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요. 누굴 기다리는지 잊어버렸는데, 기다린다는 것만은 계속 알고 있었어요." 가은은 소녀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얼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조용한 시간이 현우에게는 이름을 열 번 부르는 것보다 더 분명한 관계처럼 느껴졌다. 그때 벽 안쪽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가은의 머리핀에 달린 푸른 별이 한 번 더 빛났다. 방 안의 서랍들이 저절로 열렸다 닫혔고, 어느 서랍에서는 어린아이가 달려가는 발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우는 이곳이 기억을 보관한다기보다 언제든 남의 삶을 다시 구성하려는 거대한 작업실처럼 느껴졌다. 어째서 이런 곳이 필요한지, 누가 이 일을 시작했는지 아직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업무 절차의 한 줄로 처리될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가은은 그 문장을 읽고 현우를 돌아보았다. "돌려받으면 지금 기억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죠?"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현우가 대답했다. 가은은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이미 동생에 관한 기억을 잃었고, 현우에 관한 기억까지 빼앗기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원본을 돌려받는다는 선택이 또 다른 기억을 지울지 모른다는 설명을 들었다. 무언가를 되찾기 위해 다른 것을 버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웠다. "지금은 열지 맙시다." 가은이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내 동생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는 알아요. 하지만 지금 현우 씨와 하린이를 잊고 싶지는 않아요. 이 일을 먼저 끝내고, 그다음에 다시 와서 찾을 거예요." 현우가 묻었다. "괜찮겠어요?" "괜찮지 않죠. 그래도 내 선택이에요." 그녀는 책갈피를 조심스럽게 복사하려다 멈추었다. 복사할 기계가 없었고, 휴대전화는 이곳에서 언제든 기록이 사라질 수 있었다. 대신 수첩에 머리핀 모양을 그리고 노래의 앞 다섯 음을 적었다. 그리고 한 줄을 남겼다. '나는 아직 이름을 모르는 동생을 찾고 있다. 그 사실만큼은 내 선택으로 기억한다.' 책갈피에 쓰인 글이 순간 선명해졌다. *** 현우는 자신의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열쇠 하나가 들어 있었다. 작고 평범한 황동 열쇠였다. 머리 부분에 숫자 0이 새겨져 있었고, 열쇠의 이빨 모양이 이상하게 좌우 대칭이었다. 가은이 열쇠를 들어 보려 하자 현우가 먼저 손을 뻗었다. 금속을 잡는 순간 머릿속에 짧은 영상이 지나갔다. 어린 현우가 계단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계단 끝에는 승강장처럼 넓은 공간이 있었고, 검은 옷을 입은 어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머리 위에 붉은 이름을 달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어린 현우에게 말했다. '어른이 되면 네가 왜 이걸 해야 했는지 알 거야.' 어린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난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그냥 저 애를 보내 주면 안 돼?' 손에는 황동 열쇠가 있었다. 영상이 끝나자 현우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가은이 급히 그의 어깨를 잡았다. "무슨 일이에요?" "내가…… 예전에 여기에 왔어요." 현우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어릴 때 여기 있었어요. 그리고 누군가를 보냈어요." 하린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열쇠를 보자 얼굴이 굳었다. "저거……" "아는 거야?" "문을 닫을 때 쓰는 열쇠예요. 사람을 가두는 문이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문요." 하린은 손을 뻗지 못했다. 그 열쇠가 금방이라도 자신을 사라지게 할 것 같은 눈빛이었다. "현우 아저씨가 그걸 가지고 있었다면……" 그녀가 말을 멈췄다. "아저씨는 원래 밖에 있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현우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가은이 조용히 물었다. "그럼 현우 씨는 어디에서 왔는데?" 하린이 답했다. "안에서요. 0번 승강장 안에서." 그때 반환 창구의 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반환 요청이 접수되었습니다. 첫 번째 대상, 이현우.' 목소리는 회수 담당자들과 달랐다. 지나치게 따뜻하고,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린 사람의 목소리였다. '관리자님. 드디어 오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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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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