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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89화
PAYLUA ORIGINAL · 제89화

89화. 자정의 빈자리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3,121자

오프라인 책장
수문 관제소의 00번 보관함은 벽 안쪽에 있었다. 낡은 철제 문 세 겹을 지나면 작은 봉인 서고가 나왔다. 그곳에는 스무 해 전 수문 대피 기록, 구조 대상자 확인표, 임시 보호 요청서의 부본이 보관돼 있었다. 금속 문 옆에는 녹슨 수동 회전 손잡이가 달려 있었고, 위에는 누군가 빨간 글씨로 '두 사람이 함께 열 것'이라고 적어 놓았다. 현우는 손잡이 앞에 섰다. 사라지는 사람이 혼자 문을 열면 모든 일이 끝나는 이야기라면, 그런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겪었다. 이번에는 혼자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가은이 나머지 손잡이를 붙들었다. “준비됐어요?” “아직 무서운데요.” “그 상태로 같이 합시다.” 둘이 동시에 손잡이를 돌리자 긴 금속 소리가 났다. 문은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큼 열렸다가 다시 멈췄다. 안에서 잠금쇠가 걸려 있었다. 주영이 도면을 꺼냈다. “비상 배수로 쪽에 별도 해제 장치가 있어요. 하지만 거기는 지금 물이 찼습니다. 우회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현우는 시계를 봤다. 아홉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무작정 물속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관리자의 허가를 받아 배수 밸브를 열고, 안전 장비를 준비했다. 순서를 줄일 수는 있어도 규정을 버릴 수는 없었다. *** 관제소 내부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09가 대기 상태를 유지하면 누구도 다치지 않습니다.' '09를 보호하려면 외부 참조를 종료해야 합니다.' 가은은 스피커 전원을 내렸다. 그러나 음성은 곧 벽 너머의 다른 스피커에서 이어졌다. 현우는 이상하게도 그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자신을 지우면 다른 사람들은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 스무 해 전에도 같은 착각을 했는지 모른다. 자기가 혼자 문을 지키면 모두 살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어린 마음. “그때는 아이였잖아요.” 가은이 말했다. 현우가 놀라 돌아봤다.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알아요?” “얼굴에 다 써 있어요. 지금도 혼자 해결할 방법을 찾는 표정이에요.” 현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이번엔 그럴 수 없다고 말해 주세요.” “할 수 없습니다.” 그 단호한 대답에 현우는 처음으로 웃었다. *** 배수로 작업이 끝났을 때는 새벽 두 시가 넘었다. 비상 잠금 장치가 해제되자 서고 문이 열렸다. 안쪽에는 공기가 오래 갇혀 있어 눅눅한 냄새가 났다. 바닥으로 물이 흘러 들어오지 않도록 보존 직원이 먼저 제습 장치를 켰다. 서고의 가장 안쪽 서랍에 두꺼운 봉투가 있었다. [00 상담실 / 대기 종료 관련 보관본] 서림이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두 장의 종이가 들어 있었다. 첫 번째는 서림이 신청했던 보호 요청서. 두 번째는 보건지소의 생존 확인서였다. 같은 사건의 문서인데도 왜 따로 보관됐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하나는 기다리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기록. 다른 하나는 기다림이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기록이었다. 그런데 두 종이 사이에는 찢어진 종잇조각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대기 종료 확인: 미전달.' 누군가 스무 해 동안 이 문서를 보내지 않았다. 고의였는지 사고였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02는 미전달 상태를 이용해 지금까지 대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다. 주영이 눈을 크게 떴다. “원본 접수증과 00 보관본이 동시에 있으면 이관 전의 중단 절차를 직접 실행할 수 있어요. 02가 통제하는 접속을 거치지 않고요.” “그럼 해 봅시다.” 현우가 말했다. *** 보존팀은 두 문서의 일치 여부를 확인했다. 가은은 현우가 직접 작성한 대기 종료 신청서와 그의 현재 의사를 녹음했다. 서림은 스무 해 전 요청에 자신이 입회했다는 사실을 진술했다. 세아는 어린 시절 도장을 찍었던 사실과 그 행위가 동의가 아니었다는 경위를 명확히 구분해 적었다. 절차는 조용하고 느렸다. 세상이 한 사람을 지우는 데는 몇 초면 충분했지만, 그 사람을 지우지 말아야 할 이유를 남기는 데는 많은 손이 필요했다. 현우는 그 광경을 보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누구도 자신을 대신해서 살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누구도 목숨을 걸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각자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주영이 서고 벽의 구식 송신 단자에 확인서를 연결했다. 수동 송신이 시작되자 수문 관제소의 각 구역에서 팩스 수신음이 울렸다. 일곱 구역으로 보내는 명단이 아니라, 00 기록의 정정 사실만을 보내는 절차였다. 첫 번째 전송. 성공. 두 번째 전송. 응답 지연. 세 번째 전송. 성공. 두 번째 구역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봉인된 통로로 받은 사람이 직접 서류를 읽어 주었다. '대기 종료 사실을 접수했다. 개인 신원이나 귀환 의사를 확인한 것은 아니다.' 그 말은 짧았지만, 지금까지 다른 모든 확인서를 혼동해 온 02의 안내문과는 완전히 달랐다. 현우는 고개를 들었다. 서고 바깥에서 기계음이 울리며 보존팀이 새 접수증을 발행하고 있었다. 하나의 사실을 다른 장소에서 다시 확인했다는 것.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 작은 차이를 얻기 위해 밤새 문을 열었던 것이다. 가은은 현우의 뒤에서 접수 순번을 하나씩 읽었다. 그의 이름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두 번째 구역으로부터 돌아온 확인서에는 신청자 이름 대신 접수 시각과 봉인 번호만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종이가 가장 든든해 보였다. 그때 붉은 글씨가 갑자기 커졌다. [00:03:00] “속도가 변했어요!” 현우가 소리쳤다. 삼십 분 넘게 남았던 시간이 세 분으로 줄었다. 관제소 전체의 화면이 붉게 변했다. [대기 종료 승인 불가] [원본 신청자: 09 대기본] [대기본 상태: 보존 우선] 주영이 외쳤다. “가짜 09가 최종 절차를 가로챘어요!” 현우는 화면을 향해 소리쳤다. “나는 끝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왜 내 말을 받지 않는 거예요?” 벽 너머에서 똑같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네가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내가 먼저 있어야 하니까.” 그 말이 끝나자 현우는 자기 손끝을 보았다. 손가락의 그림자가 바닥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가은이 그의 팔을 잡았다. “현우 씨!” 현우는 가은의 손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손바닥에는 아무런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붉은 숫자가 마지막 세 자리에 들어섰다. [00:00:03] [00:00:02] [00:00:01] 그리고 현우가 서 있던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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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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