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속 현우는 실제 현우보다 조금 어렸다.
나경이 화면을 멈추자 조수석 유리에 비친 얼굴의 눈가가 선명해졌다. 그 얼굴은 손을 뻗어 유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세 번, 잠시 쉬었다가 두 번. 서람초 아이들이 문이 닫혔을 때 쓰던 비상 신호였다.
“합성 영상일 수도 있잖아요.” 태경이 말했다.
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원본을 그대로 두고 분석용 사본만 복제했어요. 현장 다른 카메라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현우는 영상을 여러 번 보았다. 거울 속 인물이 자신인지 아닌지는 둘째 문제였다. 그 손짓은 어린 시절 자신이 남기기로 한 이유와 연결돼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기다릴게.'
그는 아무도 없는 계단을 밤새 지키던 아이를 떠올렸다. 누구를 대신해서 기다렸을까? 왜 어른이 올 때까지 도망가지 않았을까?
가은은 그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기억나는 게 있어요?”
“누가 문 안에서 세 번 두드렸어요. 그런데 두 번은 문밖에서 두드렸던 것 같아요.”
“대답이었다는 거군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서로 거기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
서림의 수첩에는 아이들의 발자국을 기록한 페이지가 있었다. 복도 밖으로 나온 아이의 흔적 하나, 다시 안으로 들어간 흔적은 없음. 그리고 문밖에서 기다린 아이의 발자국 둘.
현우는 그중 작은 발자국에 동그라미가 쳐진 이유를 물었다.
“제가 표시했어요.” 서림이 말했다. “누구 한 명만 남아 있었다는 기록이 되면 그 아이를 혼자 둔 어른들의 책임이 사라질까 봐. 실제로는 선생님들도 계속 왔다 갔고, 다른 아이도 돌아가며 문을 지켰습니다.”
그 말은 현우가 믿어 왔던 영웅담을 무너뜨렸다. 어린 자신이 홀로 모두를 지켰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었다. 한 명이 해낸 일을 중심에 놓으면서 그곳에 있었던 여러 사람을 지워 버린 이야기였다.
“그럼 09는 제 이름이 아니었네요.”
“처음에는 자리를 표시한 숫자였죠. 그 후 장부에 이름을 넣은 건 제가 했습니다.”
“왜요?”
서림은 긴 침묵 끝에 답했다.
“그 아이가 자기 이름을 말해 주었으니까요. 누가 불러 줄 수 있도록 남겼습니다.”
그녀는 그날을 설명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새벽, 구조대가 들어오고 보호소 직원들이 아이들을 데려갈 때 현우가 소리쳤다고 했다. 문 안의 아이가 나올 때까지 연락할 방법을 남겨 달라고.
“그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었어. 사라진 사람이 아니라고 확인하고 싶었죠.”
“대답은 왔나요?”
“보건지소 접수증이 있었죠. 살아 있다는 확인은 받았어요. 하지만 그 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싶은지는 따로 물어야 했습니다.”
서림은 수첩을 뒤집어 한 장 더 펼쳤다. 물에 젖어 거의 떨어져 나갈 듯한 페이지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대기자에게 담요 한 장. 물 한 컵. 보호자 귀가 여부 확인.'
현우는 그 목록 앞에서 한참 멈췄다. 스무 해 동안 자신은 모든 일을 해결하지 못한 어린아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누군가는 그에게 담요를 덮어 주었고, 누군가는 물을 건네고, 또 다른 사람은 집까지 데려다줄 어른을 찾고 있었다. 그가 아무것도 없이 버려진 아이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일이 어쩐지 어려웠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도, 누군가 자신을 도왔다는 사실도 모두 그의 기억과 어긋났기 때문이다.
현우는 가슴에 오래 붙어 있던 죄책감이 조금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그날 누군가를 버린 것이 아니었다. 영원히 누군가를 대신할 책임을 맡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문 안쪽에서 살아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기다렸었다.
***
한편 주영은 최초 명령이 복사된 경로를 좇고 있었다. 스무 해 전 종이 문서의 '보호 대상으로 전환'은 전산 이관 때 '대기자 목록에서 삭제하고 별도 보호'로 바뀌었다. 이후 02가 관리하는 자동 분기에서는 '별도 보호' 부분이 잘려 나간 채 '대기자 삭제'만 남았다.
“단어를 하나 지운 탓에….” 태경이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엔 실수였을 수도 있어요.” 주영이 말했다. “하지만 02는 그 차이를 알고도 수정을 막았습니다. 로그에 남아 있어요.”
수정 요청이 거부된 날마다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보호 대상은 공공 조회에서 제외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아래 다른 문장.
[제외를 완료하려면 참조를 모두 제거할 것.]
“공공 조회에서 제외하는 것과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게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일인데.” 가은이 말했다.
주영은 화면을 더 아래로 내렸다. 최초 이관 당시에는 긴급 중단 절차가 있었다. '대기 종료 신청'이라는 작은 항목이었다. 거기에는 원본 요청자의 확인, 대기 사유의 해소 여부, 해당 사람의 현재 의사가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다.
현우의 시선이 멈췄다.
“원본 요청자는 접수자 서림 씨가 아니라, 대기를 요청한 저 자신이라는 뜻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쓴 기록만으로 사건이 끝난다고는 할 수 없어요. 대기 사유가 해결됐다는 사실도 확인해야 합니다.”
가은이 생각에 잠겼다. “그럼 누가 그날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말했는지, 그게 본인의 현재 의사와 충돌하지 않는지까지 따져야겠네요.”
***
새벽 두 시, 현우는 물 한 잔을 마시러 복도로 나왔다. 불이 꺼진 기록관의 복도 끝에서 또 다른 자신의 뒷모습이 보였다.
“누구야?”
뒷모습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 얼굴은 보건지소 영상 속 남자와 같았다. 입술은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유리문에 글자가 하나씩 떠올랐다.
[당신은 기다린 적이 없다.]
[기다린 것은 나다.]
현우가 한 걸음 가까이 가자 남자는 손을 들어 유리문을 두드렸다.
세 번. 두 번.
현우도 똑같이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유리문 반대편에서 낯선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도 이렇게 대답했잖아.”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현우는 즉시 가은을 불렀다. 혼자 본 환영인지 누군가 만들어 낸 현상인지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 그러나 유리문 안쪽에는 그의 손보다 훨씬 작은 젖은 손자국 다섯 개가 남아 있었다.
붉은 이름의 숫자가 마흔여덟 시간 아래로 떨어졌다.
제8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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