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곽 보건지소는 철거 예정이라는 노란 표지판 뒤에 숨어 있었다.
입구 계단에는 잡초가 자랐고, 유리문의 손잡이는 두꺼운 비닐로 감겨 있었다.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간 지 오래였지만, 작은 건물의 구급차 진입로만큼은 누군가 최근까지 빗자루로 쓸어 놓은 듯 깨끗했다.
가은이 공무 협조 요청서를 관리인에게 내밀었다. 관리인은 우선 창고로 옮긴 폐기 문서를 열람하려면 보건소 책임자의 입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은은 기다렸다. 급한 마음에 문을 뜯고 들어가면 원본의 출처가 불명확해질 수 있었다.
한 시간 뒤 담당 공무원이 도착했다.
“여기 오래된 치료기록은 없습니다. 개인정보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관했어요.”
“그건 압니다.” 가은이 말했다. “저희가 찾는 건 열쇠 대장과 당일 시설 운용 기록입니다.”
담당자는 현우를 힐끗 보고 서류에 동행인 이름을 적었다. 얼마 뒤 그녀는 종이를 다시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제가 방금 뭘 적었죠?”
새하얀 빈칸만 남아 있었다.
현우는 손목시계를 봤다. 빨간 숫자는 육십 시간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담당자의 반응을 자세히 묻지 않았다. 겁에 질린 사람이 자기 기억을 해명하게 만드는 일도 또 하나의 부담이었다.
***
창고의 금속 캐비닛에는 출입자들의 이름 대신 열쇠 번호가 적혀 있었다. 가은이 봉인 절차에 따라 문을 열자 작은 마분지 상자가 나왔다. 안에는 녹슨 열쇠와 세 권의 교대 근무 수첩이 들어 있었다.
첫 수첩의 6월 어느 날 페이지.
06:14 수문 구조 신호.
06:22 응급환자 접수.
06:47 보호자 확인 요청.
세 줄 모두 다른 필체였다. 현우는 두 번째 줄에 작은 별표가 그려져 있음을 알아챘다. 별표 옆에는 '이름 없음' 대신 '이름 확인을 미룸'이라고 적혀 있었다.
“확인이 안 된 것과, 확인을 미룬 건 다른 말이에요.” 하린이 전날 한 말을 떠올리며 그가 말했다.
가은은 당일 근무자를 알아봤다. 세 번째 줄을 적은 사람은 기록 담당 임시 직원, 곧 서림이었다. 그녀는 간호 업무를 돕다가 이후 서람초 아이들 임시 보호소로 이동했다고 했다.
수첩 마지막 장에는 종이가 뜯겨 나간 자국이 있었다. 그 아래 압력으로 눌린 연필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현우는 햇빛에 종이를 비춰 보았다. 수첩의 아래쪽 모서리에는 마른 진흙 얼룩이 있었다. 양손으로 꼭 붙잡아야 할 만큼 젖었던 수첩을 누군가 그날 밤 끝까지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문득 그 어른이 자신을 찾으러 다녔을 모습을 상상했다. 자주 되풀이되는 기억 속에서 어른들은 명령서를 내미는 사람들뿐이었는데, 종이에는 땀이 묻고 발바닥에는 진흙이 튈 수도 있었다.
가은은 수첩을 담당자 앞에 놓고 촬영 허가를 요청했다. 기록을 들고 서 있던 공무원은 문서의 페이지마다 봉인 상태를 확인했고, 손상 여부를 먼저 적었다. 절차가 번거로울 정도로 길었다. 하지만 바로 그 속도가 현우에게는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다. 빨간 숫자가 줄어들어도, 이 종이를 함부로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었다.
[00 — 이름을 말할 때까지 기다릴 장소]
“00은 계정이 아니라 장소일 수도 있겠어요.” 가은이 말했다.
현우는 대답 대신 가까운 벽을 살폈다. 수첩에서 그린 작은 원이 비상용 출입구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계단 아래에는 창고와 연결된 오래된 방이 있었다. 문패는 떨어졌지만 철제 틀 안에 남은 스티커를 뜯지 않고도 읽을 수 있었다.
'00 상담실.'
***
문 안에서는 약품 냄새 대신 눅눅한 종이 냄새가 났다. 탁자 하나, 의자 세 개, 벽에 걸린 그림 몇 장. 아이들이 다정한 얼굴의 어른을 그린 듯한 그림 옆에 창문 없는 방 하나가 반복해서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 종이를 꺼내 놓았다. 탁자 중앙에는 갈색 수첩이 펼쳐져 있었다.
“손대지 마세요.”
어둠에서 들린 목소리에 가은이 몸을 돌렸다. 문가에 회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짧은 머리칼 사이로 흰머리가 눈에 띄었고, 오른손에는 두툼한 봉투가 있었다.
“서림 선생님이십니까?”
여자는 가은의 배지를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찾아올 줄 알았습니다. 다만 이 사람은 왜 데려왔나요?”
그녀의 시선이 현우를 지나쳤다.
“이현우 씨입니다.” 가은이 말했다.
서림은 현우가 있는 자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현우라는 아이를 알아요. 문밖에서 기다리던 아이였죠. 그런데 그 아이 얼굴이….”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현우는 말을 걸지 못했다. 그녀가 잊었다는 사실보다, 잊어 가는 과정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고통이 더 크게 보였다.
“괜찮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보신 것부터 말씀해 주세요.”
서림은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갈색 수첩 맨 앞장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아이가 연필로 쓴 약속이 있었다.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릴게.'
그 아래 어른의 필체로 덧붙인 문장.
'기다리는 아이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한 보호 조치가 필요함.'
그것이 최초의 00 기록이었다. 아이를 격리하라는 말도, 누구의 이름을 지우라는 말도 아니었다.
서림이 말했다.
“저는 그날 현우를 살리려고 이 요청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나중에 이 문장을 다른 뜻으로 바꾸었어요.”
그녀는 봉투를 열어 녹색 카세트테이프 한 개를 꺼냈다.
“이 안에 그 사람 목소리가 있어요. 명령을 바꾸라고 지시한 사람의 목소리.”
가은이 테이프를 받으려는 순간 건물 전체의 전등이 꺼졌다.
복도 어딘가에서 먼지가 쓸리는 소리와 함께 안내 방송이 울렸다.
[00 상담실 열람 이력이 확인되었습니다.]
[대기자 보호 재개.]
현우의 이름 위에서 숫자가 십 분 가까이 한 번에 떨어졌다.
제8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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