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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81화
PAYLUA ORIGINAL · 제81화

81화. 붉은 이름의 두 번째 밤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871자

오프라인 책장
“잠깐만요.” 현우는 도서관 창가에 선 채 오른손을 들었다. 손가락 사이에 낀 오래된 등록표가 희미하게 떨렸다. 종이는 분명 현실에 있었다. 그 위에 찍힌 연필 자국도, 스무 해 전 누군가 물에 적신 듯 번진 숫자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종이가 아니라 그 뒤편이었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 위로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이현우 / 71:59:42] 숫자가 하나 줄어들었다. 다시 하나. 그가 얼굴을 돌려도, 눈을 감았다 떠도 숫자는 따라왔다. “무슨 일이에요?” 가은이 물었다. “내 이름이 보여요.” 가은은 즉시 그의 얼굴이 아닌 발밑을 보았다. 이전 사건에서 실종 예정자가 사라지기 전, 본인의 존재를 비추는 물건들이 먼저 변한 적이 있었다. 그림자, 안내문, 출입표. 그녀는 손목시계를 꺼내 정확한 시각을 기록했다. “시작 시각, 오후 네 시 십칠 분. 몇 시간 남았죠?” “일흔한 시간 오십구 분.” 세아가 앉아 있던 의자가 소리를 내며 뒤로 밀렸다. “그럴 리 없어. 그 종이는 사람을 지우라는 명령이 아니야.” 주영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급해졌다. “방금 원본 승인표를 열자 09 상태가 바뀌었습니다. 보호 대상으로 전환이라는 문장이, 다음 줄에서는 보호 기록 정리로 바뀌어 있어요.” “정리가 뭘 뜻하는데요?” “설명란이 없습니다.” 현우는 창유리에 다시 손을 댔다. 실종자들을 구하면서 가장 싫어했던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설명이 없는 명령. 사람의 운명이 바뀌는데도 정작 본인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 그때 도서관의 자동 출입문이 열렸다. 우산을 접던 노인이 현우를 스쳐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다. “아, 죄송합니다. 거기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노인은 곧 현우의 어깨를 보고 다시 사과했다. 단순히 보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우는 노인의 첫말을 오래 놓지 못했다. 세아는 그의 팔꿈치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던 사람이 바로 옆에 서 있는데,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나도 너를 잊을까요?” “모르겠어요.” 현우는 대답했다. “그런데 예전에 선생님이랑 같이 있던 아이를 기억해 내셨잖아요. 그때는 얼굴을 몰랐어도요.” 세아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녀가 소지한 빨간 장갑의 노란 실이 끊어질 듯 당겨졌다. 현우는 물었다. “그 장갑, 누구에게 돌려줄 물건처럼 계속 들고 다녔죠?” “응. 누구였는지 알아내려고 보관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필요하면 다시 가져갈 수 있도록.” 현우는 장갑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남들이 자신을 잊기 전에 모든 추억을 끌어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조금 누그러졌다. *** 주영은 기록관 내부망에서 두 장의 문서를 전송했다. 한 장은 스무 해 전 수기로 작성한 접수표의 스캔본. 다른 한 장은 이후 만들어진 전산 승인 내역이었다. 수기 문서에는 똑같은 문장이 두 번 있었다. '대기자를 보호 대상으로 전환.' 한 번은 아이가 적은 짧은 부탁 아래에. 또 한 번은 빨간 도장 옆에. 전산본에는 그 다음 줄이 붙어 있었다. '보호 대상의 확인 기록은 원본 보관을 위해 외부 참조에서 제외한다.' 가은이 손가락으로 문장을 짚었다. “'외부 참조에서 제외'라는 말은 생존을 지킨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02가 그걸 존재 자체를 삭제하는 명령처럼 써 온 거죠.” “그러면 되돌리는 방법도 있을까요?” 세아가 물었다. 주영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원래 규칙이 어디까지인지 알아야 해요. 후대 전산 규칙이 무엇을 바꿨는지도요.” 현우는 두 문서를 나란히 보다가 수기 문서의 왼쪽 끝에 조그맣게 찍힌 구멍 세 개를 발견했다. 서람초에서 아이들이 종이배를 접을 때 남기던 표식과는 달랐다. 일정한 간격의 철심 구멍이었다. “이 종이는 원래 노트에 끼워져 있었군요.” 세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때 서림 선생님이 들고 다니던 갈색 수첩.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수첩은 어디 있습니까?” “그날 이후 서림 선생님이 직접 가져가셨어.” 현우는 처음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숫자는 줄어들고 있었지만 아직 움직일 시간은 있었다. “서림 씨를 만나야겠어요. 전산 명령이 아니라 그날 적은 원래 문장을 봐야 합니다.” *** 도서관을 나설 때 안내 직원이 주차 등록을 확인해 주겠다고 했다. 가은은 자동차 번호를 말했고, 직원은 두 사람이 방문객으로 등록돼 있는지 검색했다. “윤가은 님은 나오는데… 동행인은 없네요.” “제 옆에 있는데요.” 가은이 말했다. 직원은 고개를 들어 현우를 봤다. “아, 그러네요. 혹시 뒤늦게 들어오셨나요?” 현우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자신은 가은보다 먼저 들어왔고, 회의실 예약 명단에도 이름을 적었었다. 직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동안 예약 확인서의 이름 칸이 서서히 비어 갔다. 인쇄된 종이에서 잉크가 물에 번지듯 사라지는 모습을 세 사람 모두 보았다. 가은이 확인서를 재빨리 사진으로 찍었다. 사진에는 희미한 글자의 흔적만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 이 사람이 누군지도 잊게 되는 겁니까?” 직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가은은 현우를 보았다. 그는 직원이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다는 사실에 잠깐 안도했다. “아직은 모릅니다.” 가은이 대답했다. “그래서 지금부터 확인할 겁니다.” 차에 타자 현우는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었다.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썼다. 이현우. 그리고 그 아래 이렇게 적었다. '내가 사라진다고 해서, 내가 여기 있었다는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정할 수는 없다.' 막 저장하려던 순간 화면에 저장 실패 알림이 떴다. [사용자 이름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창밖에는 멀쩡한 도서관이 있었다. 낮은 하늘 아래로 사람들은 책을 빌려 집으로 돌아갔다. 그 평범한 풍경 속에서 현우의 붉은 시계는 두 번째 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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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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