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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78화
PAYLUA ORIGINAL · 제78화

78화. 얼굴 없는 통화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3,156자

오프라인 책장
“아무도 대신 책임지지 않습니다.” 가은이 그렇게 말하자 주영은 화면의 선택 창을 닫았다. 그러나 닫혔던 창은 다시 나타났다. 마치 누군가 대답을 요구하며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차기 수거 책임자 선택] [이현우 / 윤가은 / 임종수 / 기타] “선택하지 않으면 어떻게 돼요?” 태경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주영이 말했다. “하지만 선택하면 새 대리 책임자를 한 사람 정하는 꼴이 될 수 있어요. 기존 기록과 규칙을 같이 확인해야 합니다.” 가은은 기관 명의의 공동 보존 결정을 전달했다. 화면은 접수 오류를 표시했지만, 종이로 발행된 공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설 직원들이 인수 내역과 봉인 상태를 나눠 기록했다. 그 과정에는 현우도, 종수도 개인 계정으로 서명하지 않았다. 한동안 검게 보였던 화면에서 느닷없이 낡은 문자 한 줄이 올라왔다. [기록 책임은 시설에 귀속. 생존 책임은 누구에게도 이전할 수 없음.] 그 문장을 본 주영이 숨을 삼켰다. “이건 원래 규칙이에요. 스무 해 전 분류표에만 남았던 문장.” 현우는 흐려지는 종수의 붉은 이름을 보았다. 마지막 세 숫자가 사라지기 직전 잠깐 '확인 중'이라는 하얀 글씨가 덮였다. 그리고 다시 붉은 숫자가 나타났다. 분 단위로 줄던 속도는 멈춰 있었다. “완전히 해결한 건 아니군요.” 현우가 말했다. “맞아요. 그래도 지금은 물러설 곳을 만들었습니다.” 가은이 대답했다. *** 그날 저녁 가은은 도장과 특별 봉투의 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중계 연락소에 비공개 전달 요청을 보냈다. 내용은 짧았다. '등록 08의 기록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분께. 신분 공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20년 전 수거 규칙 변경의 경위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직접 답하실 수 있는 범위에서 연락 방법을 알려 주세요.' 두 시간 뒤 답장이 도착했다. '내 목소리를 들려주면 믿겠어요?' 가은은 '목소리만으로 신원을 확정하지 않겠다'고 적었다. 대신 답변의 일관성을 기존 물증과 비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좋아요. 09에게는 내가 먼저 연락할게요.' 통화는 저녁 열 시에 걸려 왔다. 현우가 받자 한동안 빗소리만 들렸다. 실제 바깥은 맑았다. 누군가 일부러 오래된 녹음을 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현우야.” 낯선 여자 목소리였다. 성인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름을 부르는 억양에는 이상하게 기억나는 구석이 있었다.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아홉 번째라고 불리기 전부터 널 봤어.” 현우는 휴대전화를 꼭 쥐었다. “그럼 제 진짜 이름도 알고 있었습니까?” “알았다고 믿었지. 그런데 스무 해 동안 그 믿음 때문에 잘못된 답장을 너무 많이 보냈어.” 그녀는 자기가 08로 분류된 첫날을 이야기했다. 여덟 번째 아이는 수문 계단에서 젖은 장갑을 주웠다. 밖에 있던 아홉 번째는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른들을 찾으러 뛰어다니는 동안 누군가 여덟 번째에게 작은 도장을 맡겼다. “어른들은 그걸 접수표라고 불렀어. 네가 편지를 받으면 도장을 찍으라고 했지. 나는 글을 잘 읽지도 못했는데.” “그걸 누가 시켰습니까?” “같은 일을 하던 사람이 여럿 있었어. 정확한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 그래서 누가 잘못했다고 한 사람을 지목하지는 않을 거야.” 현우가 침묵하자 여자는 말을 이었다. “그때 내가 도장을 찍으면서 빠뜨린 게 있어. 답장을 받았다는 표시와, 안에 있는 아이가 나오겠다는 동의를 구분해야 했어.” “어린아이였잖아요.” “그래도 내가 알아야 할 사실은 있어. 잘못한 어른들과 내가 한 일을 따로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 *** 현우는 통화를 중단할 기회를 그녀에게 주었다. 여자는 자신이 왜 연락했는지 설명하고 싶다고 했다. 그날 문이 열린 뒤 여덟 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금 기억났다고. “밖으로 나왔던 아이는 다시 들어가지 않았어. 보건소로 갔거든. 그런데 누가 '그 아이가 도망쳤다'고 기록했어. 그래서 08이 자리를 비웠다는 이야기가 퍼진 거야.” “당신이 나온 아이입니까?” “아니. 나는 밖에서 기다렸어. 그리고 그 애한테 장갑 한 짝을 줬어.” 현우는 두 장갑의 색이 달랐던 이유를 떠올렸다. 한 짝은 빨갛고 한 짝은 회색이었다. 어린 손에 맞지 않는 장갑 두 개를 서로 나눠 끼었던 기억. “그 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야. 다만 살아 있었다는 걸 증명할 자료는 남아 있어.” “어디에요?” “두 번째 배.” 전화는 잠시 끊기듯 잡음이 일었다. 여자는 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 배를 열면 누가 살아남았는지는 알게 될 거야. 하지만 누가 지금 어디에 사는지는 알 수 없어.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어.” 현우는 그 말의 무게를 이해했다. 알고 싶은 것과 알아도 되는 것을 구분하는 봉투였다. 여자는 잠시 이야기를 멈췄다. 통화 너머에서 가벼운 금속 소리가 들렸다. 아마 컵을 내려놓는 소리였을 것이다. 현우는 자기 손에도 물잔을 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서로 이름을 몰라도 같은 시간에 물을 마실 수 있었다. 그 평범한 생각이 뜻밖에 그를 진정시켰다. “나는 그날 이후 장갑을 한 번도 버리지 못했어.” 여자가 말했다. “왜요?” “누가 나를 찾으러 오면 보여 주려고. 내가 정말 거기 있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이 이것뿐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지금도 보여 주기 무섭습니까?” “응. 누가 알아보고 다른 사람까지 찾아낼까 봐.” 현우는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려던 말을 삼켰다. 질문을 하지 않는 것도 상대가 자기 이야기를 시작할 기회를 남기는 방법이었다. 여자가 먼저 말했다. “언젠가는 만나고 싶어. 그때는 종이배가 아니라 내 얼굴로 인사할게.” 현우는 그 약속을 기록하지 않았다. 약속이 성립하려면 두 사람이 모두 원해야 한다. 그는 대신 대답했다. “당신이 원할 때 연락하세요. 그때 저는 제 선택을 말하겠습니다.” 그때 여자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 이름을 공개할지는 내가 정할게. 대신 지금은 이것만 알아 줘. 02가 오늘 내게도 연락했어. '다른 사람의 책임을 네가 인정하면 종수는 살려 주겠다'고.” 현우는 무심코 일어섰다. “대답하지 마세요.” 여자는 짧게 웃었다. “이미 했어. 나는 누구를 대신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통화가 끝난 뒤 현우의 화면에 새로운 이름이 붉게 떠올랐다. 등록 08. 숫자는 종수의 예고와 똑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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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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