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섯 시. 수문 관리소의 문이 열릴 때 가은은 여전히 전날과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교대 근무자는 세 명이었지만 봉투가 사라진 경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밤사이 카메라가 꺼진 시간은 8분 23초였다.
현우는 시계를 보았다.
“또 그 시간이네요.”
“같은 간격을 고른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영이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 02가 직접 조작했다고 확인된 건 아닙니다.”
그들은 카메라가 멈춘 시각의 출입 대장을 펼쳤다. 실제 시설 출입 기록에는 야간 순찰 직원 한 사람만 있었다. 직원은 우편함에 손을 댄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다만 창고 문 아래로 종이가 한 장 밀려 나오는 것을 봤다고 했다.
“누가 밀었죠?” 가은이 물었다.
“사람은 못 봤습니다. 문이 닫혀 있었거든요. 전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창고에서 발견된 것은 우편물이 아니라 수거 내역표였다. 열두 번째 봉투는 '반송 대기' 항목으로 옮겨져 있었다. 뒷면에는 하얀 손도장이 찍혀 있었고 손바닥 한가운데 작은 배 두 척이 그려져 있었다.
“훔친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종수가 전화로 말했다. “우편함 안에 오래 두지 말라고 하던 특별 편지가 있었거든요. 원래 일정이 되면 별도 보관함으로 옮겨야 했소.”
“그럼 왜 내역표에 그런 사실이 안 적혀 있죠?”
종수는 한참 생각했다.
“스무 해 전에 내가 적어 두었는데, 다음 해부터 대장에 그 칸이 안 보였어요. 내가 잘못 기억한 줄 알았습니다.”
***
주영은 낡은 대장 위에 투명 필름을 한 장 올렸다. 지워진 칸의 눌림 자국을 비스듬한 조명 아래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반송 대기'라는 글씨 옆에 작은 숫자 08이 있었다. 도장 소유자나 수신인이 아니라, 특별 관리 절차를 표시하는 구분번호였다.
“편지를 빼돌린 흔적은 아닙니다.” 가은이 말했다. “오래전부터 분리 보관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때 단말기의 붉은 경고가 다시 떠올랐다.
[반송 대기 1건 / 보관 책임 자동 이관]
[이관 대상: 임종수]
[책임자 미확정 시 기록 만료]
현우는 화면을 바라봤다. 02는 이 편지가 어디로 갔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종수 한 사람의 책임으로 바꾸려 했다.
“편지 한 통의 위치가 불확실한 것과 종수 씨의 생존이 왜 연결돼야 합니까?” 현우가 물었다.
주영은 답을 찾는 대신 원래 업무 규칙을 화면에 띄웠다. 거기에는 보관 담당자가 교체될 때 최소 두 사람의 인수 확인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다. 중간에 추가된 규칙만 마지막 담당자 한 사람이 모든 누락을 책임진다고 바뀌어 있었다.
“일단 이 변경 규칙부터 보류할 수 있겠어요.”
“당사자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요.”
“그러면 관리소가 인수할 수 있는지 확인합시다.”
시설 대표와 지방 기록관이 공동으로 보관 책임을 맡겠다는 확인서를 냈다. 누락된 편지를 임의로 열지 않고, 위치와 분류만 찾겠다는 조건도 있었다.
***
한편 하린은 정연실과 함께 서람초의 낡은 도서대출표를 대조하고 있었다. 도서실에 있던 첫 출석부의 빈칸에는 물품 이름이 적혀 있었다. 손수건, 우산, 장갑, 종이배. 그중 '두 척의 배'가 그려진 칸 아래에는 작은 숫자가 눌려 있었다.
'12.'
“열두 번째 봉투가 이거일까요?” 하린이 물었다.
정연실이 고개를 끄덕일 뻔하다가 멈췄다.
“가능성은 있지. 그런데 이 숫자는 도서실에서 빌린 책의 순번일 수도 있어.”
하린은 아이들만 쓰던 책갈피 상자를 찾았다. 선생님이 허락한 자료 가운데 그림이 남은 카드가 있었다. 그 카드의 뒷면에는 연필로 쓴 짧은 구절이 보였다.
'여덟 번째가 돌려주러 오면, 두 번째 배는 열지 마세요.'
“왜 열지 말래요?”
“모르겠어.” 정연실이 말했다.
“그럼 열지 말자고 알려 줘요. 이유는 나중에 찾아도 돼요.”
하린은 스스로도 놀랐다. 이제는 누군가 금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궁금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확인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
오후 두 시, 별도 보관실의 관리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창고 뒤쪽의 잠금 상자에서 반송 대기 봉투 한 통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포장은 온전했다. 봉투를 이동시키는 데 필요한 인수증에는 20년 전 등록 08과 등록 09의 서명이 나란히 있었다.
현우는 자기 서명을 보자 몸이 굳었다.
“전 이런 편지를 옮긴 기억이 없습니다.”
가은이 문서를 확대했다.
“서명이 아니라 어린아이 글씨로 적은 숫자예요. 당시 09가 현우 씨였는지도 아직 대조 중입니다.”
그때 현우는 문득 젖은 복도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작고 추운 손이 자기 옷소매를 잡았다. 누군가 빨간 장갑을 씌워 주려 했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한 장만 가져가. 다른 한 장은 여기 있어야 해.'
기억은 그곳에서 끊어졌다. 그 말이 누구의 것인지 모르지만, 현우는 처음으로 두 장의 종이가 왜 필요했는지 짐작했다. 하나는 보낼 편지였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 다녀갔다는 증명이었다.
현우는 문득 자신이 어릴 적 글씨를 연습하던 공책을 떠올렸다. 동그라미 안에 숫자를 쓰고, 그 아래에는 짧은 문장을 붙이는 연습이었다. 09라는 숫자가 그토록 익숙했던 이유도 공책 때문일까. 그는 가방에서 오래된 사진을 꺼내 보았다. 서람초 운동장에서 한 아이가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자신은 가운데 있는 아이가 자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진의 한쪽 모서리에 작은 손 하나가 찍혀 있었다. 장갑이 없는 손.
“처음엔 내가 여기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현우가 말했다.
가은이 사진을 들여다봤다.
“왜요?”
“사진 찍을 때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누군가를 찍어 줬다는 기억이 있어서요.”
“그 기억을 다시 확인해 볼 수 있겠죠. 다만 손 하나만으로 누군지 알긴 어렵습니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 속 손이 누구의 것이든, 그날 거기 있었던 사람은 하나가 아니었다. 자신이 세상을 구해야 한다고 느낄 때마다 떠올리는 외로움이 조금 가벼워졌다.
한편 공동 인수 확인이 완료되자 종수의 붉은 숫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현우는 안도하지 못했다. 숫자가 줄어드는 속도는 변하지 않았지만, 글씨의 맨 아래에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책임 분산 확인]
[삭제 대상 변경 검토]
“대상이 바뀐다고요?” 현우가 말했다.
주영의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차기 관리 책임자 선택 필요]
현우는 머리가 서늘해졌다. 한 사람을 구하려고 다른 한 사람을 대신 올려놓을 생각은 없었다.
제7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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