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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74화
PAYLUA ORIGINAL · 제74화

74화. 빌린 서명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3,119자

오프라인 책장
현우의 이름 아래에는 그의 주민번호도 전화번호도 없었다. 그래도 서명은 분명 현우의 필체처럼 보였다. 몇 획을 급하게 이어 쓰는 버릇까지 비슷했다. “제가 승인한 적 없습니다.” 시설 직원은 대장을 더 가까이 가져왔다. “전산 결재로 처리되었다고 되어 있는데요.” “그럼 누가 이 종이에 옮겨 적었는지도 확인해야죠.” 가은이 말했다. 주영은 원격 설비 조작 기록을 보여 주었다. 이현우라는 이름으로 요청된 작업은 '오후 네 시 방류 점검'이었다. 원래 예정은 다음 날 아침이었고, 방류를 앞당겨야 할 수문 상황도 없었다. 조작 요청 시각은 현우 일행이 지하에 내려간 지 정확히 열두 분 뒤였다. “02가 현우 씨를 승인자로 넣은 걸까요?” 나경이 물었다. “그렇게 보이지만 원본 로그를 대조해야 합니다.” 가은이 대답했다. “그리고 현우 씨가 서명하지 않았다는 말도 객관적인 기록과 비교하고요.” 현우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자기 서명을 빌려 아이들의 답장을 훔치려 한다. 그런데 그 거짓 서명이 진짜 행정 절차를 움직인다. 눈에 보이는 붉은 이름보다 오히려 더 무서웠다. *** 방류 작업은 중단됐다. 수문 관리소는 조작 요청을 별도 기록으로 보존하고 정식 안전 점검을 실시했다. 기자인 나경은 현장 전체를 촬영하고 싶어 했지만, 가은은 구조를 기록할 때 일곱 구역의 통로 위치가 노출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경은 렌즈를 내렸다. “그럼 문짝과 설비 기록만 공개하겠습니다. 여기서 누가 어떤 편지를 받는지는 다루지 않을게요.” 그녀는 카메라를 다시 들면서 한참 고민했다. 방송에 사람 얼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면 시청자가 사건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서람시에서 지워진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곳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그건 또 하나의 삭제와 비슷해질지 몰랐다. 자신의 의사를 지우고 다른 사람이 정한 역할만 남기는 일이니까. 신문사 편집장은 전화로 더 강한 제목을 요구했다. “사라진 아이 일곱 명, 이런 식으로 가야 사람들이 읽지.” “아이 일곱 명인지도 확정되지 않았어요. 확인된 건 우편 경로 일곱 개예요.” “그걸 누가 구분해?” 나경은 잠시 창밖을 보았다. “당사자들은 구분하겠죠.” 전화가 끝나고 나서 그녀는 기사 제목을 적었다. '답장이 끊긴 일곱 곳, 누구도 귀환을 대신 승인할 수 없다.' *** 시청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태경은 오랜만에 자기 팔찌를 벗었다. 귀환자의 표식으로 쓰이던 금속 장치였다. 그는 사라졌다 돌아온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그 사이 누군가 자신을 대신해 살아 있다고 표시했다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내 기록에도 이런 서명 하나가 있을 거예요.” 가은이 운전대를 잡은 채 대답했다.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오늘은 먼저 몸이 어떤지 확인하세요. 무리해서 옛 기록을 보지 않아도 돼요.” “저는 기록이 알고 싶어요. 하지만 제 이야기를 증명해 주려고 다른 사람들을 공개하는 건 싫습니다.” 그 말은 태경에게 낯선 선언이었다. 전에는 자기 과거를 되찾으려고 다른 사람의 기억을 몇 번이나 빌렸었다. 이제 그는 모르는 부분이 남더라도 자기 기록은 자기 것으로 남기고 싶었다. *** 하린은 저녁 식탁에서 우체통을 하나 만들었다. 작은 과자 상자를 잘라 뚜껑에 구멍을 내고, 옆에 노란색 연필로 숫자 00을 적었다. “이게 뭐야?” 현우가 물었다. “답장을 쓰고 싶을 때만 쓰는 상자요. 제가 시험해 보려고.” 그녀는 종이 한 장을 넣었다. '오늘은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현우에게 상자를 건넸다. “답장 안 해도 되는 편지예요.” 현우는 상자를 조용히 책장에 올렸다. 집 안에서는 물건의 의미를 스스로 정하는 일이 아주 쉬웠다. 문제는 밖에서 그것을 규칙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린은 다음 종이에 '오늘은 말하고 싶어요'라고 적었다. 이번에는 현우가 편지를 꺼내 읽어도 되는지 물었다.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선생님을 만나러 갈래요. 직접 물어볼 게 있어요.” “어떤 거?” “그날 빨간 장갑을 든 애가 왜 문 밖에 있었는지요. 전 그 애가 누굴 기다렸는지도 궁금해요.” 현우는 약속을 적었다. 하린이 직접 질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되 대답하지 않는 사람을 몰아붙이지 않기로 했다. *** 가은은 시청으로 돌아와 위조 서명이 찍힌 문서를 다시 봤다. 서명란에는 이름이 선명했고, 다른 칸은 모두 비어 있었다. 신청인의 직위, 연락처, 현장 입회 여부. 제대로 된 절차라면 반드시 확인했어야 할 칸들이었다. 누군가 하나의 이름이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생긴 틈이었다. “수사를 오래 했는데도 가끔 이름만 보고 고개를 끄덕일 때가 있어요.” 가은이 말했다. 현우는 그 말을 기다렸다. “상대가 오래 알던 사람이고, 내 편일 거라고 생각하면 더 그래요. 증명하는 절차를 불신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이번엔 저를 확인했잖아요.” “그래서 미안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위조 사실을 확인하는 동안 현우 씨가 다시 의심받는 기분이었을 테니까.” 현우는 가은의 손에 들린 서류를 봤다. 그는 자기도 누군가의 이름이 붉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먼저 겁을 먹어 왔다고 생각했다. 이름은 사람을 가리켰지만 사람 전부를 설명하지 않았다. “미안해하실 건 없어요. 저라도 확인했을 겁니다.” 가은은 그제야 문서를 봉투에 넣었다. “그럼 내일도 확인합시다. 이번에는 우리 모두의 이름을.” 밤 열한 시, 가은의 휴대전화로 시설 복구 담당자의 연락이 왔다. 조작 요청의 전자서명 파일은 위조된 현우의 것이었지만, 원본 승인 흐름에는 그것을 승인한 다른 사용자가 있었다. [대리 신청자: 등록 08] “08이 02를 도왔다는 뜻입니까?” 현우가 물었다. “아직 아닙니다. 08 계정을 누가 사용했는지 모릅니다. 02가 가로챘을 수도 있어요.” 그 순간 현우의 휴대전화에 짧은 음성 파일 하나가 들어왔다. 화면에는 경고도 제목도 없었다. 발신자의 동의 문구만 있었다. '이 목소리는 09에게 들려줘도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내지 마세요.' 파일 속 여성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명은 내가 한 게 아니야. 하지만 도장을 어디에 두었는지는 내가 알려 줬어.” 잠시 숨을 고른 뒤 그녀가 덧붙였다. “20년 전에도 그랬어. 그때부터 잘못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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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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