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찾는 일은 사람을 찾는 일보다 쉽다고 현우는 생각했다. 그 생각은 오전 내내 이어진 조사 끝에 바뀌었다.
낡은 수문 관리소에는 시계가 네 개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 배수 펌프의 작업 시계, 학교 도서실로 이어지던 접수 시계, 그리고 지금은 꺼진 출입 통제기의 시계. 같은 날짜를 가리키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떤 것은 멈춰 있었고 어떤 것은 관리자가 다시 맞춰 놓았다.
“그러니까 06시 22분이 있었다는 걸 보여 줄 자료가 없다는 거네요.” 태경이 물었다.
“찾는 순서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주영이 말했다. “우선 누가 시계를 맞췄는지부터 봐야 해요. 기록이 없다는 말과 기록이 삭제됐다는 말은 다릅니다.”
가은은 그에게 동의했다. 경찰서에 남아 있는 당시 출동일지, 학교 숙직표, 보건소의 구조 기록을 따로 확인하기로 했다. 하나의 시스템이 바뀌더라도 서로 관계없는 기관의 시각이 똑같이 바뀌기는 어려웠다.
종수는 시설 직원의 휴게실에서 낡은 보온병을 꺼냈다. 잔에 따르는 물이 반쯤 식어 있었다.
“그날 아침 아이가 한 명 더 나왔다고 했죠.” 가은이 물었다. “직접 보신 겁니까?”
“그게 문제요. 난 봤다고 생각했어요. 비상문이 열린 뒤 누군가 아이를 업고 나왔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 다음 날 빈 침대가 생겼지. 하지만 내 눈으로 본 건 운동장에 놓인 젖은 장갑 한 짝뿐이오.”
현우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확신할 수 없는 것을 확신이라고 꾸미지 않았다. 종수는 스무 해 동안 자기 기억을 붙잡으려 애써 왔다. 이제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그 기억의 빈 곳을 솔직하게 내놓고 있었다.
***
서람시청 임시 대조실에 남은 하린은 가은이 요청한 복사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원본에는 스무 해 전 학교의 평면도가 있었다. 어린아이에게는 출입을 금지한다던 어른들이 이제는 자료를 어디까지 보여 줄지 그녀에게 직접 물었다. 하린이 고른 것은 숫자나 의료 기록이 아닌 배수로 그림이었다.
“이쪽이 교실이고, 이쪽이 급식실.” 하린이 연필로 짚었다. “근데 여기 문은 왜 밖으로 열려요?”
정연실이 화면을 확대했다.
“그 문은 원래 창고로 이어졌어. 수해가 났을 때 임시로 대피 통로를 만들었지.”
“그럼 안에 있던 아이가 나오는 길과 바깥에서 누군가 들어가는 길이 같았겠네요?”
“그랬겠지.”
하린은 잠깐 공책을 덮었다.
“꿈에서 저는 문이 열릴 때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안에서 나오는 애를 지나쳤어요. 그게 누군지는 못 봤고요.”
정연실이 그 장면을 사실이라고 선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출입 경로를 확인해 볼 가치가 있는 단서라고 적었다. 하린은 그 작은 차이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자기 꿈이 재판의 판결문이 아니라 수사의 질문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잠시 후 하린이 물었다.
“근데 선생님, 제가 꿈에서 뛰어다니던 아이가 아니라면 저는 왜 그 길을 알아요?”
정연실은 오래 생각한 뒤 대답했다.
“모른다는 답도 괜찮아. 기억이란 네가 어느 쪽에 서 있었는지를 바로 알려 주지는 않거든.”
***
나경은 서람시 옛 지역신문의 마이크로필름을 확인했다. 그해의 폭우 기사는 검색에서 사라져 있었지만 지방 도서관에는 인쇄본이 남아 있었다. 한 기사 사진의 아래쪽이 잘려 있었다. 나경은 원본을 훼손하지 않고 복사기로 전체 지면을 촬영했다.
'06:23, 임시 대피소에서 미확인 아동 1명 보호.'
한 줄의 짧은 기사였다. 이름도, 사진도 없었다. 그러나 현우가 받은 편지의 생환 확인 시각과 정확히 이어졌다. 기사의 시각이 제보 시각인지 실제 구조 시각인지는 더 확인해야 했다.
기자의 이름 아래에는 작은 별표가 있었다.
'정정 요청 접수 후 삭제 예정.'
나경은 오래된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다. 당시 편집장이 남긴 인수인계 문서에는 정정 요청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메모가 남아 있었다. 요청자는 자신이 구조한 아이를 또다시 찾으러 오는 사람이 있을까 봐 두려워했다고 한다.
“기사 삭제가 누군가를 지키려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네요.” 나경이 말했다.
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기록이 없었다고 바꾸면 안 됩니다. 안전하게 보존하되 위치와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방법이 있었을 거예요.”
그들은 신문사의 비공개 원본 보존 절차부터 확인했다. 기사를 공개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 나왔다는 사실을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
오후 네 시, 종수가 우편함의 안쪽 바닥을 닦다가 좁은 홈을 발견했다. 홈에는 얇은 금속 조각이 끼워져 있었다. 학교 도서대출 카드만 한 명판이었다.
[수거 시간 / 06:22:31]
[수거물 / 반송 요청 1건]
[처리 / 보류]
“종이배를 사람이 대신 받은 게 아니었군요.” 현우가 말했다. “반송 요청을 수거한 기록이었어요.”
그 순간 시설 전산실의 전등이 깜빡였다. 출입 통제기가 스스로 켜지더니 수거 시간을 06:14:08로 바꿔 표시했다. 출입 담당 직원은 즉시 장비를 외부망에서 분리하고 로그를 보존했다. 화면은 한 번 더 변했다.
[정정: 생환 확인은 문 개방과 동시에 완료]
“누가 이렇게 고치죠?” 태경이 낮게 말했다.
주영은 키보드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
“지금은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원본 로그를 따로 남겼으니까요.”
붉은 글씨가 현우의 시야에서 한 차례 일렁였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의 머리 위가 아니었다. 명판에 새겨진 숫자 위였다. 어쩌면 02가 지우려는 것은 여덟 분이라는 시간만이 아니었다. 그 시간 안에 있었던 누군가의 거절이었다.
해가 지기 직전 주영이 신문사의 접수 원본과 금속 명판의 시각을 나란히 놓았다. 둘은 서로 다른 출처였다. 그러나 06시 22분 무렵에 별도의 일이 있었다는 점은 일치했다.
하린은 나경이 보내 온 신문 지면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사진에는 비를 맞은 아이들의 신발이 겹쳐 있었다. 한쪽 끝에 끈이 풀린 운동화가 있었다. 하린은 자신의 공책 맨 뒤에 운동화 한 짝을 그렸다. 문 안쪽 아이가 신발을 신고 있었는지, 맨발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오빠는 왜 그날 거기 있었어요?” 하린이 물었다.
현우는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아직 몰라. 나도 기억을 찾는 중이야.”
“누굴 기다리려고 간 건 아니에요?”
“그랬을 수도 있겠지.”
하린은 창밖의 횡단보도를 바라봤다. 아이 하나가 길을 건너다가 뒤늦게 따라오는 친구를 기다렸다. 신호가 바뀌자 둘은 나란히 뛰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꼭 위험한 문 앞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날의 현우도 친구가 늦게 오는 걸 기다린 것뿐이었다면 좋겠다고, 하린은 속으로 생각했다.
현우는 하린의 그림을 내려다보고는 물었다.
“나중에 네가 떠올리는 게 있다면, 네가 말하고 싶은 만큼만 알려 줘.”
“네. 대신 오빠도 기억나는 걸 숨기진 말아요. 저한테 위험할까 봐 그러는 거라면 왜 위험한지 설명해 줘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정보를 대신 골라 주지 않겠다는 약속을 또 하나 배웠다.
그때 종수의 오래된 무전기에서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덟 분은 있었어요.”
한 박자 뒤, 목소리가 덧붙였다.
“그런데 나왔던 아이는 다시 들어간 적이 없어요.”
제7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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