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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70화
PAYLUA ORIGINAL · 제70화

70화. 제로의 주소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4,825자

오프라인 책장
우편함 00이 있다는 곳은 지도에서 사라진 주소였다. 서람시 북쪽 끝, 오래전 버스가 멈추던 공터를 지나면 자전거 도로가 나왔다. 도로 옆에 낡은 이정표 하나가 있었는데, 두 글자가 벗겨져 '연락소'라는 말만 남아 있었다. 그 너머는 폐수문 시설 부지였다. 관할 기관은 시설 안전 점검과 출입 허가를 조건으로 조사에 협조했다. 새벽 다섯 시 사십 분, 현우와 가은은 공터에서 시설 직원 한 사람을 만났다. 나경은 현장을 멀리서 촬영했고, 주영은 공문과 과거 지도 사본을 들고 있었다. 하린은 동행하지 않았다. 자기가 쓴 편지를 아직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만남을 준비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우편함은 시설 안에 없어요.” 직원이 말했다. “주민들이 편지를 놓던 돌담 뒤쪽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돌담은 예상보다 낮았다. 이끼가 낀 틈 사이에는 작은 철제 상자 하나가 박혀 있었다. 문짝 한가운데 숫자 00이 있었고, 옆에는 오래된 종이배 모양의 흠집이 남아 있었다. 가은은 주변을 둘러봤다. “우편함을 관리하는 분이 있습니까?” “이제는 공식 담당자가 없습니다. 다만 최근까지 누군가 청소를 했던 것 같아요.” 상자 앞 바닥에는 마른 낙엽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지만 안쪽 먼지는 얇았다. 누군가 실제로 이곳을 드나들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문짝을 함부로 열기 전에 관계 기관이 상자의 소유 및 관리 범위를 확인했다. 해가 산 능선 위로 올라오려 할 때, 저 멀리서 발걸음이 들렸다. 노란 우산을 접어 든 노인이었다. “당신들이겠군.” “누굴 기다리셨습니까?” 가은이 물었다. “이 우편함을 사람 찾는 기계로 바꾸려는 사람들은 많았어요. 하지만 편지를 받으려면 언제나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노인은 우산을 돌담에 기대고 현우에게 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보내는 사람이 원하지 않는 편지는 받지 않는다는 말을 적어 줘요. 그러면 내가 할 이야기가 있소.” 현우는 종이를 잡았다가 가은에게 넘겼다. 그 말이 어떤 약속과 연결되는지 먼저 확인해야 했다. 노인은 불쾌해하지 않았다. 다만 잠시 손을 내밀고 기다렸다. “그 종이에 서명하면 무슨 일이 생기죠?” 가은이 물었다. “아무 일도 없어요. 서명받는 종이도 아닙니다. 내가 읽을 수 있게 쓰라는 뜻이오. 이 우편함은 약속을 기억하기 위해 놓아 둔 거니까.” 현우는 종이에 적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답장을 원하지 않으면 연락을 강요하지 않는다.' 노인은 그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상자 아래쪽에서 작은 열쇠를 꺼냈다. *** 우편함 안에는 봉투가 열두 개 들어 있었다. 그중 아홉 개는 오래된 우편지였고 세 개는 새것이었다. 발신인 이름 대신 작은 물건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우산, 장갑, 종이배, 물뿌리개. 가은은 봉투를 꺼내기 전 우편함을 관리해 온 경위를 물었다. 노인은 자신을 임종수라고 소개했다. 그는 옛 수문 관리소의 배달 담당자였다. 공식 우편원이 아니라 학교와 수문 관리소 사이에서 전달물을 옮기던 계약 직원이었다. “이십 년 전에는 우편함에 주소를 적지 않았어요. 들어가는 아이들과 나오는 아이들 위치가 알려지면 위험해질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보낸 사람이 답장을 받을 수 있는 시간만 남겼지.” “00은 사람 번호가 아니었습니까?” 현우가 물었다. “처음엔 우편함 번호였어요. 그다음부터는 '지금 답장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표시하는 칸이 됐죠. 그 역할을 누구 한 사람이 독점하면 안 된다고 정했는데…….” 노인의 눈이 잠시 어두워졌다. “누군가 그 칸을 관리자 자리라고 읽기 시작했어요.” 주영이 오래된 기록을 떠올렸다. 00의 직무명과 발신자 공란, 오래된 편지의 접수 시각이 뒤섞였던 이유가 조금씩 설명되고 있었다. 다만 종수의 기억도 다른 자료와 대조해야 할 증언이었다. “그러면 '민하린' 앞으로 온 재개 요청은 누가 보낸 겁니까?” 노인은 첫 번째 새 봉투를 가리켰다. “그 이름으로 편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스무 해 전엔 그 이름을 하루만 쓴 아이가 있었지. 최근에도 비슷한 편지가 왔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같다고 같은 사람이 보낸 건 아닌 것 같더군요.” “누가 보냈는지 아십니까?” “아뇨. 보내는 사람을 지켜 주기 위해 묻지 않았으니까. 다만 마지막 편지는 누군가 직접 넣는 걸 보았습니다.” “언제요?” “나흘 전 새벽.” 그는 가장 새 봉투를 가리켰다. 겉면에는 배 하나와 작은 점 두 개가 그려져 있었다. 하린이 기억했던, 문 안쪽 아이의 그림이었다. *** 종수는 봉투의 수신 조건을 확인했다. 봉투 앞면에는 '서람초의 문 밖에 있던 아홉 번째에게 전달'이라고 쓰여 있었다.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증거를 보여 주면 열람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가은은 현우의 09 등록이 목격자였다는 진술과 자료를 제시했다. 종수는 오래된 대조표와 비교한 뒤 봉투를 내주었다. 현우는 한참 동안 개봉하지 않았다. “왜 그러오?” 노인이 물었다. “이 안에 누군가의 현재 주소가 적혀 있을까 봐요. 그 사람이 알리고 싶지 않은 곳을 제가 알아 버리면 어쩌죠.”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를 쓴 사람은 주소를 넣지 않겠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을 찾아내라는 부탁이 아닙니다.” 현우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손편지 한 장과 작은 종이배 하나가 들어 있었다. 글씨는 또박또박했지만 중간중간 흔들렸다. '문 밖에서 기다려 준 아홉 번째에게.' '나는 네가 알고 있는 민하린이 아니야. 그 이름을 잠깐 빌려 쓴 일곱 번째 아이야.' 현우는 손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현우는 한 번도 두 사람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런데 편지에는 그 구분을 직접 요청하는 사람이 있었다. '네 옆의 하린이는 내게 이름을 빌려준 아이인지, 그 아이의 시간을 이어받은 사람인지 아직 모르겠어. 내가 알지 못하는 걸 아는 척하지 않을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나는 지금도 살아 있어.' 현우는 다음 줄을 소리 내어 읽지 못했다. '이십 년 전 문 안에 갇혔던 아이는 그 뒤로 매일 아침을 다시 시작했어. 바깥 시간과 똑같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곳에 있지는 않았어. 너희가 그동안 보냈던 종이배를 하나씩 받았거든.' 마지막 문장은 검은 잉크로 쓰여 있었다. '00은 주소가 아니라 답장을 받는 자리야. 그 자리를 가로챈 사람 때문에 일곱 곳의 답장이 끊겼어. 나는 그 마지막 통로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그러니 내 이름을 찾지 말고, 오늘 살아 있는 사람들을 먼저 도와줘.' 뒤편에 작은 도면이 그려져 있었다. 일곱 개의 점과 그 중앙을 관통하는 짧은 선. 그 선 끝에는 '북부 연락소 지하 보관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 주영이 도면의 지하 공간을 실제 시설 도면과 대조하는 동안 하린에게서 영상통화가 왔다. 소녀는 화면 속 종이배 그림을 보자 입을 손으로 가렸다. “점 두 개.” “응.” 현우가 말했다. “그 아이가 지금 살아 있다고 편지에 썼어. 직접 쓴 편지인지도 확인해야겠지만.” 하린은 웃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제가 꿈에서 문을 열지 말라고 했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아요.” “어떤 이유?” “제가 대신 들어가면 그 애가 나올 자리가 없어질까 봐요.” 현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 서람초 복도에서 자신이 기다렸던 밤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자리를 대신하면 살릴 수 있다는 거짓 선택지에 오랫동안 시달렸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가은이 말했다. “하린아, 이 편지를 네게 전부 보여 줘도 되는지 확인하고 있어. 원하면 지금은 그림만 봐도 돼.” “그림만요. 나중에 제가 읽을게요.” 현우는 화면에 종이배만 비춰 주었다. 하린은 손가락으로 점 두 개를 세었다. 자기 공책에 점 하나를 그려 놓고 옆에 점 둘을 더했다. *** 오전 여덟 시 십삼 분, 주영이 보관함 도면을 확인했다. 실제 지하 보관실은 존재했다. 시설 담당자는 안전 점검을 거쳐 조사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봉투가 도착한 경로를 분석하던 중 다른 기록이 나타났다. [임시 관리자 02 / 원본 기록 경로 이전] [기록 검증 대상: 미연결 7구역] [회수 절차 개시까지 72:00:00] 가은은 화면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열여덟 날 남았다더니 왜 사흘입니까?” 주영이 자료를 확대했다. “전체 보존 종료일은 열여덟 날 뒤가 맞아요. 그런데 02가 일곱 구역의 원본 경로를 먼저 회수하려고 별도 기한을 걸었어요. 실패하면 우리가 자료를 대조할 경로 자체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현우는 봉투를 다시 접었다. 위험이 더 빨리 다가왔다는 사실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가 혼자 문을 열 필요가 없었다. 관할 기관과 증인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살아 있다고 말한 일곱 번째 아이의 편지가 있었다. 그때 종수가 우편함 아래에서 마지막 봉투 한 통을 꺼냈다. 다른 봉투들과 달리 찢어진 가장자리에 새 잉크가 묻어 있었다. “이건 오늘 들어온 것 같군.” 봉투 앞에는 낯익은 필체로 단 한 줄이 쓰여 있었다. '이현우에게. 네가 다음 문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 뒷면에는 보내는 사람이 적혀 있었다. [등록 08] 현우의 눈길이 멎었다. 은곡역에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 빨간 장갑을 들고 문 밖에 섰던 아이일지도 모르는 사람. 그 존재가 이제 직접 새 편지를 보냈다. 현우는 봉투를 들고 가은을 바라봤다. “일곱 번째는 살아 있어요. 그러면 여덟 번째는 왜 다시 연락해 온 걸까요?” 가은이 답했다. “읽어 보면 알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전에, 봉투가 누구에게 무엇을 허락하는지부터 확인합시다.” 그들은 돌담 앞을 떠나지 않았다. 서늘한 새벽 공기 속에서 우편함 00의 문이 천천히 닫혔다. 먼저 물어볼 사람은 아직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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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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