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람시장은 지도에 없는 장소였다. 그럼에도 택시 기사 몇 명은 그 이름을 듣자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기사는 외곽 순환도로 아래쪽에 오래전에 사라진 재래시장이 있었다고 했고, 다른 기사는 그런 이름을 말하면 재수가 없다며 손님을 태우지 않았다.
결국 가은은 현우의 휴대전화에서 목적지를 빼고, 자신이 지갑에서 발견한 택시 영수증의 뒷면 지도를 따라 걸었다. 영수증에는 점선과 화살표만 남아 있었다. 상가와 도로는 달라져 있었지만 작은 개천, 오래된 육교, 우체통이 있던 자리는 그대로였다.
현우는 가은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며 말했다.
"사라진 곳이라도 길은 남는군요."
"사람들이 다른 목적으로 계속 쓰는 길이니까요."
가은이 대답했다.
"시장이 없어져도 집에 가는 길은 없어지지 않겠죠."
그 말은 뜻밖에 위로가 되었다. 현우는 길옆 폐업한 세탁소를 보았다. 셔터에는 오래된 메뉴 광고와 전화번호가 덧칠돼 있었다. 시장 이름을 쓴 간판은 없었지만, 몇몇 상점은 골목 쪽으로 문을 열어 두었다. 누군가 사라진 곳을 기억하지 못해도 그 자리를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일행은 다섯 명이 되었다. 김세진은 어머니에게 상처 치료를 받았고, 낯선 사람으로서 저녁밥 한 끼를 먹었다. 하지만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 곁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하린의 설명을 듣고 다시 합류했다. 그는 어머니가 쥐여 준 밴드 하나를 손목에 붙였다. 거기에 사인펜으로 '오늘 저녁 손을 치료해 준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거라도 있으면 어머니가 오늘 저를 만났다는 건 알겠죠."
세진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현우는 그 웃음에 아직 아픈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장 어귀에 도착했을 때 시각은 밤 열 시 삼십칠 분이었다. 가로등 몇 개가 불규칙하게 깜빡였다. 사람들이 시장 입구를 분명 지나가면서도 아무도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두 건물 사이에 길이 있다는 사실을 뇌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하린은 길을 막은 철제 펜스 앞에 섰다.
"여기가 입구예요."
가은은 펜스 안을 살폈다. 녹슨 계단이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계단 아래에서는 얇은 형광등 불빛이 흔들렸다. 그 빛은 지하철 0번 승강장에서 본 것과 색이 같았다.
"출입 규칙은?"
가은이 물었다.
"관찰자 하나, 증인 하나. 그리고 돌아올 곳이 있는 사람."
"누구나 돌아올 곳은 있지 않아?"
세진이 물었다.
하린이 그를 바라봤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사람도 있어요. 집이 없는 사람도 있고요. 그래서 여길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요."
현우는 세진의 손목 밴드를 보았다. 오늘 저녁 그에게 밥을 먹인 사람이 있었다. 세진은 집을 잃었지만 돌아갈 관계 하나를 새로 얻었다. 규칙이 사실이라면 그건 단순한 감상 이상의 힘이 있었다.
***
계단을 내려가자 사라진 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옆 가게들은 문을 닫고 있었지만 유리 진열대마다 물건이 가득했다. 오래전 유행했던 손목시계, 고장 난 카세트, 아기 신발 한 짝, 학교 명찰, 반쯤 타 버린 편지. 가격표가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정미의 마지막 전화.'
'박소윤의 졸업식 사진.'
'이름 불명, 첫 번째 생일.'
가은은 진열대를 살피며 숨을 삼켰다. 어떤 물건에는 날짜만 있었고, 어떤 것에는 아주 짧은 문장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잡동사니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삶 전체였던 것들이었다.
"유실물 보관소가 이건가요?"
"앞쪽은 전시장이고, 안쪽이 보관소예요."
하린이 말했다.
"시장으로 보이는 건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든 껍질이에요. 원래 모양은 다를 거예요."
진열대 중 하나에 낡은 운동화가 놓여 있었다. 크기가 다른 두 짝이 나란히 묶여 있었다. 이름표에는 '서로 손을 잡지 않았던 마지막 날'이라고 적혀 있었다. 옆에는 군복 상의 하나가 걸려 있었고, 포켓 안에 비어 있는 편지봉투가 들어 있었다. 봉투 뒷면의 우표만큼은 조금도 색이 바래지 않았다.
현우가 물건들을 들여다보자 가은이 조심스럽게 팔을 잡았다.
"너무 가까이 가지 말아요. 여기는 보관소잖아요. 남의 물건을 마음대로 만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요."
"저것들, 다 누군가의 기억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네요."
"그래도 순서가 있어요."
가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현우는 그 말이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걸 인정했다. 그는 이름이 보이기 시작한 이후로 무엇이든 당장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쫓겼다. 박정호를 놓친 것이 미안했고, 경찰서에서 민주를 두고 나온 일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붙잡으려 하면 결국 아무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시장 천장에는 오래된 광고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드립니다'라는 흔한 문구가 쓰여 있었지만, 아래쪽 연락처는 전화번호가 아니라 수많은 이름으로 채워져 있었다. 글자들이 파도처럼 흔들려 눈을 계속 따라갔다.
태경이 그곳을 똑바로 보지 말라고 했다.
"전에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어요. 이름을 오래 읽다 보면 어디선가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요. 그때 찾으러 가면 길이 안 보여요."
"목소리가요?"
"네. 딱 한 번은 제가 모르는 여자 목소리를 따라갔어요. 부엌에서 국을 끓여 놓고 기다린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그 집에 가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죠. 결국 어느 방에 들어갔다가 또 기억을 잃었어요."
하린이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 있는 건 다 되찾아야 하는 물건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잊는 편이 낫다고 스스로 맡긴 것도 있어요."
"그럼 더 조심해야겠네."
가은은 수첩에 '본인 의사 확인 없는 기억 반환 금지'라고 적었다. 이곳의 물건들이 누군가의 삶을 대신한다면, 선한 마음만으로 함부로 돌려줄 수는 없었다. 현우는 유리창 너머의 운동화를 바라봤다. 누가 왜 저 두 짝을 나란히 묶어 두었는지 궁금했지만, 답을 알 권리부터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맨 끝 가게에는 환한 불이 켜져 있었다. '기억 수선'이라고 적힌 간판 아래 작은 종이 하나 붙어 있었다.
'고칠 수 없는 기억도 있습니다. 먼저 본인의 이름을 확인하십시오.'
문을 열자 구두약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작업대 뒤에는 흰머리 노파가 앉아 있었다. 노파는 낡은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누군가의 사진을 수선하고 있었다. 실과 바늘로 사진 속 사람의 그림자를 꿰매는 듯한 동작이었다.
"손님이 많네."
그녀가 말했다.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아세요?"
현우가 물었다.
"알아서 온 사람들한테만 일을 해."
노파는 대꾸도 없이 바느질을 계속했다.
가은이 신분증을 내밀려다 다시 넣었다. 기관과 소속이 사라진 경찰증은 이곳에서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수첩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싶습니다. 실종자도요."
노파의 손이 멈췄다.
"찾는 사람의 이름은?"
"제 동생인데……"
가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다. 이름뿐 아니라 동생을 떠올리려 하면 얼굴의 선마저 잡히지 않았다.
노파가 한숨을 쉬었다.
"그럼 성급하게 결제하지 마. 이름 모르는 사람을 찾겠다며 자기 남은 기억까지 내놓는 손님이 많거든."
"결제요?"
"여기서는 돈 안 받아. 기억을 맡겨야 해."
현우의 눈이 노파의 작업대로 향했다. 서랍 안에는 이름 없는 교통카드가 쌓여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붉은 점 세 개가 찍혀 있었다. 현우는 그 문양을 알아봤다. 0번 승강장에서 본 승차권과 비슷했다.
"박정호라는 사람은요?"
노파가 고개를 들었다.
"아, 케이크 아저씨. 아직 회수열차 안 탔을걸."
현우는 저도 모르게 작업대에 몸을 기울였다.
"살아 있다는 말이에요?"
"산다는 건 여기서 좀 어려운 말이지. 하지만 붙잡을 수 있는 게 남았으면 아직 끝은 아니야."
노파는 먼지 낀 계산기를 꺼냈다. 화면에 숫자 대신 네모 하나가 나타났다.
"그 사람한테 돌아갈 곳이 있나?"
"딸이 있어요. 아내도 있고요."
"그 가족이 지금도 기억해?"
현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내는 남편을 잊었고, 딸은 그림에서 아빠 얼굴을 지웠다. 그러나 딸이 남긴 케이크 이야기가 있었다. 그 흔적을 어디까지 기억이라고 불러야 할까.
하린이 대신 말했다.
"딸이 그린 그림을 가져올 수 있어요."
노파는 작업대 밑으로 손을 뻗어 종이 쪽지 하나를 꺼냈다.
'원기록 복원 조건: 살아 있는 증인, 삭제 전 물건, 신규 관계 사실.'
가은이 한 항목씩 소리 내 읽었다. 하지만 그녀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았다. 태경이 알려 준 경고를 기억하고 있었다. 등록된 과거를 암송하는 것보다 오늘 새로 확인한 사실을 만드는 일이 중요했다.
"우리가 지금 박정호 씨를 찾으러 왔다는 사실도 신규 관계가 될까요?"
가은이 물었다.
노파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런 질문을 하는 손님은 드문데."
"안 된다는 뜻이에요?"
"오히려 가능할지도. 단, 당신들이 그 사람을 왜 찾는지 자신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해. 그냥 숫자를 보고 움직였다면 또 지워질 거야."
현우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사람은 제가 처음 본 붉은 이름이었어요. 겁이 나서 말을 걸다 말았죠. 그리고 정말 사라졌어요."
노파가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날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마음에 남아요. 이제는 숫자 때문에 찾는 게 아니에요. 딸이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제가 봤으니까요."
작업대 위 계산기에 푸른 불이 들어왔다.
[신규 목격 관계 생성]
"봐."
노파가 말했다.
"그런 말은 여기가 아직 몰라. 너 자신도 방금 결정한 거잖아."
그때 시장 끝에서 종이 울렸다. 모든 가게의 전구가 동시에 깜빡였다. 유리 진열대 속 이름표들이 한꺼번에 붉어졌다.
[시장 구역 대량 조정 예정]
[첫 번째 대상 128명]
세진이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계단 위를 지나가던 사람들의 머리 위에 붉은 이름이 뜨기 시작했다. 아직 시장으로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한 노인은 장바구니를 들고 걸음을 멈췄고, 젊은 연인은 서로의 이름을 묻기 시작했다. 몇 미터 바깥 세계에 있던 평범한 사람들의 관계가 눈앞에서 뒤집혔다.
현우는 이를 악물었다.
"백스물여덟 명이라니. 이게 다 뭐예요?"
노파의 얼굴이 엄숙해졌다.
"누가 시장 문을 강제로 열었군. 외부 구역의 기억까지 끌어오려는 거야."
하린은 계단 쪽으로 뛰려 했다. 태경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혼자 가면 다시 없어져."
"그래도 막아야 해요."
가은이 수첩을 닫았다.
"계획부터 세웁시다. 이름을 보고 한 명씩 부를 수는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들이 서로를 기억하게 만드는 일이에요."
세진이 고개를 들었다.
"지상에 사람들 있어요. 시장 앞 광장에 버스 정류장도 있고요. 방송 장비만 있으면 모두에게 알릴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내용을?" 현우가 물었다.
"이름만 말하지 말고, 옆 사람한테 오늘 함께 한 일을 말하라고요."
태경이 낮게 말했다.
"그렇게 서로 새 기억을 만들면 적어도 조정이 한 번에 끝나지는 않을 거야."
노파는 작업대 아래에서 오래된 마이크를 꺼냈다. 마이크 선은 시장 건물의 천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걸 써. 단, 명심해. 이름을 살리는 일과 지워지는 일을 멈추는 건 달라. 시간을 벌어도 문은 계속 열릴 거야."
현우가 마이크를 잡았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차 있었다. 회사에서 발표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늘 겪은 일을 설명할 수 없었고, 믿어 달라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백스물여덟 명의 자리가 지워질지도 몰랐다.
"저기요."
마이크에서 소리가 울렸다. 스피커는 지상까지 연결돼 있는 듯했다.
"지금 주변에 계신 분들, 잠깐만 서로 얼굴을 봐 주세요. 오늘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하나만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가능하면 그 사람이 하는 대답도 들어 주세요."
처음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누군가는 장난 방송이라며 욕을 했다. 그러나 버스 정류장의 중년 여성이 옆 사람에게 물었다.
"우리 오늘 어디서 만났죠?"
남자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병원에서요. 당신이 접수표를 대신 뽑아 줬잖아요."
여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현우에게 보이던 남자의 붉은 숫자가 멈췄다. 주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연인이 오늘 처음 먹어 본 음식을 이야기했고, 노인이 장바구니 속 귤을 나눠 주었다. 이름을 모르던 사람들까지 새로운 장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우의 시야 한복판에는 다른 숫자가 떠올랐다.
[시장 구역 조정 유예 00:09:59]
고작 십 분이었다.
계단 끝에서 회색 제복들이 줄지어 모습을 드러냈다. 맨 앞에 선 회수 담당자의 빈 이름표 위로 검은 글씨가 생겼다.
[임시 보류 해제 명령]
그가 현우를 똑바로 가리켰다.
"대량 조정의 원인 제공자 확인. 이현우."
시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붉은 이름이 동시에 현우를 향해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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