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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66화
PAYLUA ORIGINAL · 제66화

66화. 빗물 아래의 관제실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3,513자

오프라인 책장
“내 이름은 민하린이 아니야.” 공중전화 수화기를 붙든 현우는 숨을 들이켰다. 여자아이의 목소리는 스무 해 전 녹음과 닮았으나 똑같지는 않았다. 공중전화는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는 기종이었다. 수화기 아래 녹슨 나사를 따라 물이 한 방울 흘렀다.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습니까?” '문 밖에서 듣는 사람에게요.' “그럼 그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싫어요. 오늘은 그 이름 말고 그냥 여기 있다고 말해 주세요.' 현우는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거울 앞에서 겁먹은 하린, 출석부의 07번 칸에 이름이 붙어 있는 아이. 지금 수화기 너머 상대가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간단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여기 있다는 말은 전하겠습니다.” 상대가 긴 숨을 내쉬었다. '저쪽 선로에서 내 목소리를 가져가고 있어요. 두 출석부를 붙이면 어느 쪽도 밖으로 나올 수 없어요.' 통화가 끊겼다. 현우는 가은에게 내용을 알렸다. 그동안 남은 삼 분은 일 분 사십 초로 줄어 있었다. 가은은 관제소 관리 책임자에게 연락했고, 주영은 해당 기관이 가진 실제 안전 절차를 확인했다. 오래된 우편 장치는 전산에서 두 출석부를 합칠 수 있었지만, 전송 허가에는 관리 책임자의 수동 확인이 필요했다. “현장 관리인이 지금 관제실에 있답니다. 자동 확인을 취소하겠다고 합니다.” 가은이 말했다. “그럼 끝난 건가요?” “아뇨. 장치가 자기 역할을 잊어버린 게 문제예요. 수동 취소가 먹히는지 봐야 합니다.” 태경의 팔찌에 푸른빛이 짧게 들어왔다. 스피커에서는 제0분기의 안내음이 흘렀다. [증인 호출] [서로 다른 장부의 보존 여부를 확인하십시오] 정연실이 자신의 이름으로 답했다. 자신이 확인한 원본에 왼쪽과 오른쪽 두 출석부가 별도로 보존됐다고 했다. 주영은 장치 화면에 두 장부의 식별번호를 각각 입력했다. 하린은 집에서 영상통화로 그 과정을 보고 있었지만 서명하거나 신원 증명서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두 장부 존재 확인] [동일 수신인 자동 병합: 보류] 숫자가 십칠 초에서 멈췄다. 하린이 손뼉을 쳤다가 곧 손을 내렸다. “그럼 거울 속 애도 안전한 거예요?” “그건 아직 몰라.” 현우가 말했다. “대신 네 말을 그 애 말로 바꾸는 건 일단 멈췄어.” 하린은 거울을 돌아보았다. 지금은 자신의 얼굴만 보였다. 다만 거울 모서리에 연필로 그린 듯한 작은 배 두 척이 남아 있었다. 누가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하린은 영상통화를 마친 뒤 거울을 천으로 가리지 않았다. 거울이 무서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거울 뒤에 있는 누군가를 덮어 버리면 자신이 좀 더 편해질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거울 앞에 종이를 세워 두었다. '나는 여기 있어.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나중에 들을게.' 물론 글자가 거울을 통과해 전달된다는 근거는 없었다. 하린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종이 밑에 '내가 잊지 않으려고'라는 말을 작게 덧붙였다. 오늘 자신이 지켜야 할 일은 신비한 통로를 여는 것이 아니라 겁먹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이었다. 집 안이 한동안 잠잠하자 하린은 냉장고를 열었다. 먹다 남은 김밥 몇 조각과 주스가 있었다. 하린은 김밥을 접시에 옮겨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어쩌면 이렇게 밥을 먹는 동안에도 누군가 세상에서 잊히고 있을지 몰랐다. 그러면 자기 밥을 먹는 것이 나쁜 일일까? 그녀는 그런 질문이 떠오르는 자신이 싫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언젠가 누군가 자기 앞에서 따뜻한 국을 밀어 주던 꿈이 떠올랐다. 하린은 김밥을 먹었다. 자기 이름으로 존재하는 첫날처럼, 천천히 씹었다. 병합이 보류된 지 일곱 분 뒤, 서람시 빗물 펌프장의 당직실에 경보가 울렸다. 구형 수문 두 개에서 서로 반대되는 명령이 동시에 들어왔다. 하나는 물을 빼라는 신호였고 다른 하나는 역류 방지문을 닫으라는 신호였다. 시설 기사 노명호는 관제 화면을 보고 욕설을 삼켰다. 실제 수위는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화면에는 빨간 선이 가득했다. 누군가 센서 값을 잘못 보내고 있었다.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네.” 그는 동료에게 장비를 점검하게 하고 관찰창 앞으로 갔다. 유리 아래로 검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길을 가르는 콘크리트 벽 너머, 보행 통로의 한 구역만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사람이 들어간 흔적은 없었고 발자국처럼 보이는 무늬는 차례로 지워졌다. 명호가 철제 난간을 잡는 순간 현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가은이었다. “펌프장 작업자 한 사람의 이름이 시스템에서 붉게 떠올랐어요. 본부에 확인했는데 지금 현장 근무 중입니다.” 현우는 자기가 직접 본 적 없는 사람의 시간을 알 수 없었다. 원격 화면으로 붉은 이름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가은이 보내 준 것은 시스템의 위험 예고였고, 현우의 시각에는 아직 실제 숫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차이를 의식하며 그는 물었다.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확인했어요?” “현장 관리자와 연결 중입니다. 지금 위험 구역에 들어가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어요.” 곧 명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칠지만 침착했다. “저는 여기서 삼십 년 일했어요. 물이 어디로 가는지 모니터만 보고는 안 믿습니다. 제 동료가 수동 게이트를 확인하러 갔어요. 먼저 그 사람을 찾아 주세요.” “현장 접근은 구조대와 담당자 지휘대로 해 주세요.” 가은이 말했다. “저희가 할 일은 왜 잘못된 명령이 왔는지 찾는 겁니다.” 명호는 알겠다고 했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갑자기 금속이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 태경은 오래된 장부 옆에서 팔찌를 빼 손바닥에 올렸다. 푸른빛이 꺼지고 붉은 점 하나가 켜졌다. “증인 호출이 펌프장으로 옮겨 갔어요.” 주영은 원격 관제 명령이 폐교에서 펌프장까지 전달되는 경로를 찾아냈다. 중간에는 사용 중지된 회선 하나가 있었다. '00번 우편함'이라고 별칭이 붙어 있었다. 데이터가 물리적인 수문 제어 신호처럼 바뀌는 접점이었다. “둘을 분리해야 해요. 정보 장치와 시설 장치를 한 선로에 묶어 뒀다는 게 말이 됩니까.” 가은은 펌프장 보안 담당자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구형 관제 장비의 외부 입력을 격리하되 수위 센서와 실제 안전 제어는 유지하는 절차였다. 명호도 격리에 동의했다. 담당자는 수문을 억지로 움직이지 않고 예비 수동 계측으로 전환했다. 몇 분 뒤 시설 화면에서 거짓 경보가 하나씩 사라졌다. 하지만 마지막 붉은 점은 없어지지 않았다. [노명호 / 회수 위험: 현장 확인 필요] 현우는 이제 직접 펌프장 앞에 도착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붉은 글씨가 명호의 머리 위에 떠올랐다. 그 뒤에 붙은 시간은 사흘보다 훨씬 짧았다. [00:19:41] 현우는 당직실 문을 열며 외쳤다. “명호 씨, 지금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어디 계세요?” 시설 직원 하나가 빈 작업복을 가리켰다.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요.” 젖은 작업복 소매에는 물방울이 하나도 맺혀 있지 않았다. 반면 바닥에 놓인 안전모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현우는 비어 있는 작업복보다, 그 옆에서 천천히 젖어 가는 출입 기록부를 보았다. 방금 찍은 명호의 출근 시각이 지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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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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