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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65화
PAYLUA ORIGINAL · 제65화

65화. 목소리가 겹치는 시간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3,316자

오프라인 책장
관제소 내선에 연결된 첫 번째 목소리는 낡은 녹음테이프처럼 느리게 흘렀다. '말씀하실 분의 이름을 입력하십시오.' 가은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내선은 사람이 아니라 오래된 접수 장치로 연결됐고, 지금 누구의 목소리가 어디에 저장되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이 장치가 지금 입력하는 음성을 보관합니까?” '보관 방식 확인 불가.' “그럼 실명을 말하지 않고 기능만 묻겠습니다. 문 안쪽 보호 대상과 문 바깥쪽 전달자는 서로 다른 역할입니까?” 짧은 잡음이 흘렀다. '그렇습니다. 전달자가 보호 대상의 호칭을 빌려주더라도 동일 인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주영은 무심코 팔을 쳐들었다. “원래 규칙이 있어요!” 다음 문장은 더 짧았다. '다만 재개 요청이 있을 경우, 임시 관리자는 동일 인물 심사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스피커에서 익숙한 웃음이 들렸다. 관리자 02였다. '당신들이 찾아낸 규칙도 결국 내 심사 안에 있습니다.' 태경이 팔찌를 뒤집었다. 두 홈에는 불빛이 없었으나 세 번째 홈이 파란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차단과 승인만 있던 장치에서 처음 보는 색이었다. “이게 뭘 뜻하죠?” 접수 장치는 대답했다. '증인 호출.' *** 주영이 내선의 이전 로그를 복원하자, 스무 해 전 학교를 돌보던 직원 일곱 명의 목소리가 짧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두 문장은 이상했다. 분명 같은 여자 목소였는데 하나는 '이름을 주고 싶다'고 말했고 다른 하나는 '내 이름을 돌려 달라'고 말했다. 녹음 시각은 같았다. “둘 중 하나가 위조된 건가요?” “모르겠습니다. 소리의 파형이 같다는 것만으로 같은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주영은 헤드폰을 벗었다. “후대에 두 음성을 합성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원본 매체가 필요해요.” 가은은 실험을 제안했다. 소리의 내용이 아니라 연결 순서를 살피자는 것이었다.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사전 녹음문 두 개를 각각 다른 선로로 흘리고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지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관련 기관 담당자의 승인을 받았고, 실제 사람의 동의 기록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시험 표시를 붙였다. 첫 번째 문장을 보냈다. '종이배가 도착했습니다.' 접수 장치는 정상 수신이라고 답했다. 두 번째 문장을 보냈다. '답장을 원하면 문을 열겠습니다.' 장치는 갑자기 화면을 붉게 물들였다. [귀환 의사 추정] [보호명 통합 대기] “단어 하나가 트리거군요.” 주영이 중얼거렸다. “문을 연다는 표현만으로 동의로 바꿔 버리는 거예요.” 02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왜곡이 아닙니다. 실종자를 찾는 가족들은 모두 문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가은은 차갑게 대꾸했다. “모두라는 말로 한 사람의 선택을 덮지 마세요.” 02는 대답 대신 현우의 얼굴을 모니터에 띄웠다. 몇 년 전 주민등록증 사진처럼 창백한 얼굴이었다. 현우는 화면 속 자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이 기괴했다. 본인은 그렇게 웃지 않았다. '이 얼굴이라면 아이가 당신 말을 들을까요?' 02가 물었다. 현우는 모니터를 돌려놓았다. “아이를 설득할 일은 당신에게 없어요.” *** 옛 테이프 원본은 폐교 창고가 아니라 서람시 기록관의 전시실에 있었다. 정연실이 기증한 소형 카세트였다. 두 회차가 겹쳐 녹음된 것처럼 들렸던 날의 테이프가 맞았다. 기록관 담당자 입회하에 재생한 테이프에는 창밖의 빗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그리고 어린 목소리들이 차례로 남았다. '네 이름을 빌려 줘도 돼?' '오늘만.' '그럼 내일은?' '내일은 또 물어봐.' 테이프가 끊기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녹음기를 들고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그다음 소리는 성인의 것이었다. '전달자와 보호 대상은 서로 다른 아이입니다. 문 앞 기록은 이름이 아니라 목격 사실로 남깁니다.' 정연실은 눈을 감았다. “이건 내 목소가 아니야. 그날 야간 접수를 맡던 윤서림이야.” 가은은 음질이 좋지 않으니 본인에게 확인하기 전까지 목소리의 주인을 단정하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아이'라는 문장은 텍스트 지침과 일치했다. 병합에 반대할 근거가 하나 더 생겼다. 테이프는 완전히 멈춘 뒤에도 한동안 돌아가는 소리를 냈다. 주영은 그 소음 속에 사람의 발소리가 섞였다는 것을 발견했다. 녹음 당시 누군가 도서실을 가로질러 창문을 닫고 있었다. 책장에 부딪히는 소리, 비에 젖은 운동화가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차례로 들렸다. “이 소리를 기억해요.” 정연실이 나지막이 말했다. “비가 많이 온 날엔 복도 끝부터 불을 껐어요. 전기를 아끼려고 그랬죠. 아이들은 빗소리가 무서우니까 뒤늦게 뛰어왔고요.” 현우는 그 말에서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아이가 이름을 잃던 날도 누군가는 전기요금을 걱정했고, 누군가는 젖은 신발을 벗지 않은 아이에게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공포가 일상 밖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어른들이 출석부를 고치던 그 방에 아이들은 다음 날 입을 체육복을 말리고 있었을지 몰랐다. 나경이 물었다. “그때 아이들은 서로를 어떻게 불렀나요?” “이름으로요.” 정연실이 말했다. “아니면 별명으로. 누구는 긴 머리라고 불렸고 누구는 만날 우산을 잃어버려서 우산 대장이라고 불렸지. 나중에 전산 기록이 필요하다며 번호를 붙이기 전까지는 숫자로 부르는 아이가 없었어요.” 현우는 일곱 번째, 여덟 번째라는 말이 너무 익숙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숫자가 사건을 설명해 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한때 운동장에 뛰어나가 비를 밟고 돌아온 아이의 전부가 될 수는 없었다. 같은 순간 하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는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제가 그냥 앉아 있었는데요. 거울에 다른 애가 비쳤어요.” “혼자야?” 현우가 물었다. “네. 문은 잠겨 있어요. 밖에 누가 있는 건 아니에요.” “지금 어디야?” “집이요. 거울에는 빨간 장갑을 끼고 있는 애가 있었어요. 근데 제가 움직여도 그 애는 안 움직였어요.” 현우는 차에 올라탔다. 가은은 곧장 가까운 경찰 순찰 차량에 확인을 요청했다. 현우의 눈앞에서 휴대전화 연락처 목록이 한 줄씩 뒤바뀌고 있었다. '민하린' 옆에 '07'이라는 번호가 붙었다 지워졌다. 태경의 팔찌가 세 번째 홈에서 뜨거워졌다. [증인 호출 범위: 폐교 ↔ 현재 거주지] [동일 이름 병합 검토: 00:03:00] 가은이 기록관 출입문을 밀었다. 그 순간 도로 건너편의 낡은 공중전화가 울렸다. 수화기에는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누가 그 전화기에 전화를 걸었을까. 현우는 뛰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말했다. '내 이름은 민하린이 아니야.' 그리고 한참 뒤, 다른 목소리가 아주 조용히 덧붙였다. '하지만 그 이름으로 나를 불렀을 때, 누군가는 나를 찾으러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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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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