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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63화
PAYLUA ORIGINAL · 제63화

63화. 스무 해 전의 수신인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3,198자

오프라인 책장
정연실의 집에는 서랍장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옷을 넣는 평범한 나무 서랍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잠금장치가 붙은 철제 캐비닛이었다. 가은이 방문했을 때 정연실은 철제 캐비닛 앞에서 열쇠를 들고 서 있었다. “자료를 가져가시는 대신 여기서 먼저 보세요. 다른 아이들의 기록이 섞여 있어요.” “필요한 범위만 확인하겠습니다.” 현우는 하린과 함께 거실에 남았다. 하린은 혼자 보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을 다룬 기록이 있다는 사실은 무서웠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까지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았다. 캐비닛에서 나온 것은 출석부 한 권, 도서실 근무표, 봉투 두 개였다. 정연실은 근무표부터 펼쳤다. 날짜는 스무 해 전의 여름방학 마지막 주였다. '문 안쪽: 이름 미상 / 보호명 임시 부여' '문 바깥쪽: 전달자 / 신원 기록하지 않음' '호칭 사용 기한: 일몰까지' 가은이 손끝으로 마지막 줄을 짚었다. “이름을 영구히 주는 절차가 아니었군요.” “그날 밤 안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임시로 부른 거였어.” 정연실이 말했다. “그런데 다음 날 출석부가 통째로 바뀌었지. 기한 칸이 지워지고 '07 민하린'만 남았어.” “누가 고쳤죠?” “기억하지 못해. 기억이 지워진 부분이 있는지도 몰라.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원래 봉투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이야.” 첫 번째 봉투에는 작은 종이가 들어 있었다. '받는 이: 어제 이름을 빌린 아이' '전달자: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됨' '오늘 밤에도 무사하면 종이배를 접어 보내 줘.' 두 번째 봉투는 비어 있었다. 앞면에는 펜으로 '답장 기다리는 곳'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소도 발신인도 없었다. “답장은 왔습니까?” 정연실은 빈 봉투를 뒤집었다. 안쪽 접착면에 아주 작은 물자국이 여러 개 남아 있었다. “매일 왔어. 주소 대신 그날 있었던 일 한 가지씩. 누구는 밥을 먹었고, 누구는 꽃을 봤다고. 어느 날부터 빈 종이만 오더라. 그때는 아이가 살아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지.” 현우는 거실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빈 종이가 도착했다고 해서 무사하다고 단정한 어른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빈칸을 믿음으로 채우는 순간 그 빈칸의 진짜 사정은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하린이 물었다. “전 왜 꿈에서 문 밖에 있었을까요?” 정연실은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았다. “네가 문 밖 아이일 가능성은 있어. 하지만 네가 직접 겪은 시간이 지금 우리가 계산하는 시간과 같지 않을 수 있어.” “스무 해 전에도 제가 열세 살이었다면 전 지금 몇 살인 거예요?” 정연실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가은이 질문했다. “너는 지금 네 나이를 어떻게 알고 있니?” 하린은 배낭에서 공책을 꺼냈다. 표지 안쪽에는 '열세 번째 봄'이라고 쓰여 있었다. 해마다 적은 숫자는 열세 개였다. 어떤 해에는 날짜가 없었고, 어떤 해에는 같은 달의 일기가 세 번 반복됐다. “저는 열세 번 세었어요. 남들이 스무 해가 지났다고 말할 때도, 저는 다음 봄이 오면 열네 번째라고 생각했어요.” 그 말에 거실이 조용해졌다. 현우는 위로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하린이 세어 온 계절을 자기 달력으로 바로잡아 주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 한편 주영은 종이배가 발견된 배수관의 센서 목록을 조사하고 있었다. 시설 운영자가 제공한 장치 도면에는 서로 다른 두 시계가 표시돼 있었다. 외부 관제 시각은 현재 연도였고, 보조 우편 장치의 시각은 스무 해 전 특정 날짜에 멈춰 있었다. 그동안 제0분기의 접수 화면이 과거 날짜와 현재 수신자를 혼동한 이유가 설명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영은 이를 확정하지 않았다. 구형 장치의 오류만으로 실제 인물의 기억이 흔들리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다. “수신인 연령 오류는 장치 두 개가 서로 다른 시간을 쓰면서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자료를 받아서 사람에게 적용하는 쪽이죠.” 가은이 물었다. “02가 그 혼동을 이용했나요?” “명령 기록은 있어요. 같은 수신인이라고 간주해 버리라는 임시 지침을 밀어 넣었습니다.” 주영이 공개 화면에 지침 일부를 띄웠다. [기록 불일치 시: 가장 오래된 보호명 우선] [후속 발언: 기존 보호명 소유자 발언으로 자동 귀속] 하린이 지금 '싫다'고 하면, 스무 해 전의 아이가 싫다고 한 것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반대로 스무 해 전 남겨진 '돌아가고 싶다'는 글이 지금 하린의 의사가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현우는 등골이 차가워졌다. 누군가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이름을 지우는 것보다 조용했다. 바뀐 문장은 그 사람과 똑같은 글자로 남기 때문이다. *** 해가 질 무렵 정연실은 출석부 맨 뒤에서 떨어져 나온 얇은 장을 발견했다. 정식 장부 용지가 아니라 아이들이 쓰던 색종이를 두 장 이어 붙인 종이였다. 가은은 손상된 부분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07에게: 이름을 빌린 건 네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말을 하려고야.' '돌려받고 싶으면 말할게. 하지만 그 이름 말고도 네가 너라는 걸 찾을 수 있을 거야.' 서명 대신 아래에 작은 배 두 척이 그려져 있었다. 오른쪽 배에는 점 하나, 왼쪽에는 점 둘이었다. 하린은 그림을 보자 이상한 말을 했다. “제가 접은 건 점이 하나였어요.” 현우가 돌아보았다. “기억나는 거야?” “그냥 알아요. 점 두 개는 문 안쪽에 있던 애가 그렸어요.” 정연실은 마른 입술을 적셨다. “그 그림을 누가 가르쳐 줬는지, 혹시 아니?” 하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 책상 위에 있던 두 번째, 빈 봉투가 안쪽에서 부풀어 올랐다. 종이 자체가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봉투 안에는 조금 전까지 없던 종이가 생겨났다. [받는 이: 이름을 빌려준 아이] [전달 기한: 오늘 일몰] [답장을 받으면 동일 수신인 병합 실행] 종이 아래에는 아주 작은 서명이 있었다. [임시 관리자 02] 가은은 즉시 봉투를 닫았다. 누군가 답장을 받는 일을 미끼로 병합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린은 봉투를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답장을 안 하면 그 애가 또 혼자가 되는 거 아니에요?” 현우는 그 질문이 얼마나 잔인한 함정인지 깨달았다. 타인을 외롭게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라는 말은, 도움을 청하는 아이가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는 원칙을 거꾸로 뒤집고 있었다. “우리가 답장을 못 하게 하려는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답장하는 방식에 함정이 있으면 다른 길을 찾자는 거야.” 창밖의 해가 기울었다. 휴대전화 화면에 카운트다운이 떴다. [00:4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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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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