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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55화
PAYLUA ORIGINAL · 제55화

55화. 돌아갈 권리의 위조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3,116자

오프라인 책장
차도현은 다음 날 오전 역무실에 먼저 와 있었다. 밤새 울었는지 눈이 부어 있었다. 그는 어제의 무례를 사과했다. 다만 동생의 행방을 찾고 싶다는 요구까지 취소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건 취소하실 필요 없습니다.” 가은이 말했다. “유리 씨의 안부를 확인하고 싶다는 것과 강제로 데려오겠다는 건 다른 말입니다.” 도현은 얼굴을 찡그렸다. “어떻게 안부를 확인하죠? 주소도 모르는데.” “상대가 수신을 허락할 수 있는 연락 통로부터 찾아볼 겁니다.” “그게 있다면 스무 해 동안 왜 아무도 내게 알려 주지 않았을까요?” 가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보호란 이름으로 누군가의 가족에게 필요한 설명마저 빼앗았다면 그 역시 잘못일 수 있었다. 현우는 도현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도현은 오래된 가족사진을 다시 펼쳤다. 어린 유리는 짝이 없는 빨간 장갑을 하늘로 치켜들고 있었다. 사진은 조금 흔들렸고, 맨 뒤에는 역 매점에서 산 빵 봉지가 보였다. “그날 저희는 기차를 타지 않았어요. 엄마가 매점에서 빵을 사 왔거든요. 유리는 뜨거운 빵을 쥐다가 장갑을 한 짝 벗었어요. 그게 마지막 평범한 장면이에요.” 현우는 사진이 어떤 날 찍혔는지 더 묻지 않았다. 도현이 말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하게 두었다. *** 새로 만든 세 번째 표의 흔적은 은곡역 근처 인쇄업체에서 발견됐다. '나루인쇄'라는 작은 간판이 걸린 곳이었다. 주인은 제0분기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없었지만 표 사진을 보고 바로 알아봤다. “이 코팅은 우리 기계에서만 쓰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귀퉁이 절단 모양은 익숙하네요. 지난달 한 사람이 복고풍 표를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누가 주문했나요?” 가은이 물었다. 주인은 주문서의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나 넘길 수 없다고 했다. 가은은 신분과 절차를 설명한 뒤, 지금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작업 일정만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인은 출력 날짜를 확인했다. “마지막 수정일은 열아홉 날 전이었어요. 원본 파일 이름은 '귀환 안내 - 보호용'이었습니다.” “처음 문구도 '돌아가지 않을 권리'였습니까?” 주인은 잠시 기록을 뒤졌다. “아뇨. 처음엔 '귀환 의사를 묻는 방법'이었어요. 새 시안을 보내면서 바뀌었죠.” 현우는 숨을 들이켰다. 문장이 바뀐 것보다 중요해 보이는 것은 쓰임의 변화였다. 질문을 안내하던 종이가 권한을 선언하는 표가 되었다. “수정 요청이 언제 왔는지 보실 수 있나요?” “새벽 두 시 십삼 분이네요.” 현우가 가은을 바라봤다. 스무 해 전 자신의 등록 시각과 같았다. 시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사람이 만든 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 숫자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로는 충분했다. 가은은 주인의 협조 범위 안에서 원본·수정본의 차이를 확보했다. 주문자 이름은 절차를 거쳐 확인하기로 했다. *** 인쇄소를 나온 현우는 가게 창에 붙은 광고를 보았다. '오래된 추억을 원본처럼 복원해 드립니다.'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문구였다. 누군가는 다 닳은 가족사진을 원래 모습에 가깝게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현우에게는 '원본처럼'이라는 말이 유난히 아프게 다가왔다. 주영이 전화로 말했다. “인쇄 파일 안에 사용한 글꼴 정보가 남아 있습니다. 스무 해 전에는 없던 글꼴이에요. 그러니 그 표 전체를 옛날 원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어요.” “글씨의 내용이 맞아도요?” “내용은 따로 확인해야죠. 오타가 난 옛날 원본도 원본이고, 새로 인쇄한 정확한 번역도 사본일 뿐이니까요.” 현우는 그 말을 메모했다. 참과 거짓을 나누는 기준이 한 가지로 끝나지 않았다. 표는 최근에 만들어졌지만 거기에 적힌 정신은 오래된 보호 원칙과 닿아 있을 수 있었다. 반대로 올바른 말을 썼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행사할 힘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가은은 위조라는 표현을 기록에 적기 전에, 종이가 오래된 원본을 사칭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설명 자료로 제작된 것인지 구분하자고 했다. 그 판단에 따라 작성자의 의도를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었다. *** 오후에는 문경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원본과 수정본을 보여 주자 문경은 오래전 자신이 만든 안내를 떠올렸다. “이건 원칙 3을 설명하던 카드와 비슷하네요.” “그 카드가 보관돼 있나요?” “일부만요. 우리 때에도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꿔 쓰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연락을 강제로 열지 않는다'를 '모든 연락을 끊는다'로 이해한 사람이 있었거든요. 아이를 지키겠다는 말이 아이가 원하는 연락까지 막는 이유가 됐죠.” 하린은 화면을 들여다보다 말했다. “그럼 아이가 나중에 연락하고 싶어지면요?” “그때는 다시 물어봐야 해요. 보호 요청은 평생 한 번만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니까.” 문경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보호 대상이 아이일 때는 더 복잡합니다. 아이가 현재 안전한지 확인할 책임과, 아이가 위험한 사람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지킬 책임이 함께 있으니까요.” 도현은 영상 통화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현우는 그의 동생에 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별도 연락을 택했다. *** 그날 밤 도현은 역 광장에서 낯선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목소리는 익숙했다. 화면 속에서 여러 번 현우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관리자 02와 같은 억양이었다. “동생의 이름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누구십니까?” “길을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합시다.” 남자는 도현의 앞에 작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길을 열 수 있는 절차가 적혀 있었다. [보호자 긴급 신청] [대리 귀환 동의 가능] [대상자 미응답 시 구 가족 관계로 자동 승인] 도현의 손이 떨렸다. 그는 마지막 줄을 읽고 나서도 오래 망설였다. “이걸 하면 유리가 정말 돌아옵니까?” “확률이 높아집니다.” “확률이요?” “확실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평생 그 아이를 볼 수 없겠지요.” 도현은 신청서를 가져갔다. 서명하지는 않았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당신은 좋은 형이군요.” 도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좋은 형이었으면 그날 손을 놓지 않았겠죠.” 건너편 어둠 속에서 남자가 아주 낮게 말했다. “그 죄책감이 필요한 겁니다.” 마지막 문장은 도현에게 들리지 않았다. 오직 역사 벽에 켜진 카메라의 소음 속에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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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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