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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50화
PAYLUA ORIGINAL · 제50화

50화. 돌아오는 길을 남긴 사람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4,253자

오프라인 책장
“아홉 번째는 들어오지 마.”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현우는 열린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자신을 부르는 말이었지만, 들어오라는 허가가 아니었다. “누가 말하는 겁니까?” 문 안쪽에서는 아이가 흐느끼는 것 같은 소리만 들렸다. 오래전 녹음일 수도 있고, 지금 누군가가 말을 건 것일 수도 있었다. 가은은 현우의 팔을 붙잡았다. “지금 들어가면 그 아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겁니까?”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말 그대로라면 들어오지 말라는 거겠죠.” 그는 문 앞으로 바짝 다가가지도 않았다. 대신 제0분기 접수대에 질문했다. “열한 번째 문에서 나온 말이 지금의 당사자 의사인지, 과거 녹음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 문을 닫아 주세요. 안쪽의 누군가가 직접 열어 달라고 하기 전까지요.” 잠시 뒤 문이 천천히 닫혔다. 02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바로 저 문 안에 답이 있습니다. 아홉 번째인 당신이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데도요?” “거기서 누군가 나오기 싫다고 했잖아요.” “그 말의 진위를 모르면서요?” “모르니까 들어가지 않은 겁니다.” *** 심사가 끝난 뒤 원본 대조소는 잠정 결과를 출력했다. [등록 09: 마지막 목격자] [원본 관리자 표기: 오류 가능성 확인] [포괄 위임: 증거 불충분 / 집행 불가] [제0구역 보호 원칙 3: 원문 우선 검토] [송문경: 회수 집행 보류] 모든 문제가 끝난 건 아니었다. 서람시 열두 미연결 구역 중 여덟 곳의 원본은 여전히 끊겨 있었다. 해온군에 남겨 둔 08 봉투의 주인은 확인되지 않았고, 01은 자신의 신원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 서람시 전체 임시 보존 종료까지도 스물나흘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요한 문구 하나가 바뀌었다. '기다렸으니 책임자다'라는 해석이 효력을 잃었다. 누군가가 현우의 이름을 가져다가 시민의 운명을 한꺼번에 결정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졌다. 태경은 다시 한 번 접수증을 살폈다. “여덟 번째 사람이 누구인지 아직 모르죠.” “배준석 씨 손목과 같다는 건 중요한 단서예요.” 가은이 말했다. “그러나 지금 본 영상에서 신체 크기와 촬영 시점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동일인이라고 쓰진 맙시다.” 현우는 동의했다. *** 서람시로 돌아오는 길에 하린은 차창에 입김을 불어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 안에 조그만 문 하나를 그린 뒤 물었다. “형, 그 아이는 왜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까요?” “모르겠어. 자기 혼자 있고 싶었을 수도 있고, 내가 위험해서 그랬을 수도 있어.” “그럼 다음에 만나면요?” “그때도 먼저 물어봐야지. 말할 수 있는 상태인지도.”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그라미를 손바닥으로 지웠다. 창밖에는 평범한 아파트 불빛이 지나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한 도시는 아직 지워진 게 아니었다. 그날 밤 문경은 병실에서 자신의 원문 로그를 다시 확인했다. [집행 보류] 표시 아래에 '보호 실패 책임자: 미지정'이라는 문장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그걸 보고 한참 울었다. 누군가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증명이 아니라, 실수의 책임을 무작정 한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겠다는 표시였다. 나경도 취재 수첩을 펼쳤다. 그녀는 제0분기에서 생긴 일을 전부 쓰지 않았다. 첫 번째 사람의 이야기는 취재 자료에만 남겼고, 기사에는 09의 서명 없음과 포괄 위임 중지라는 검증된 결과만 적었다. 편집장에게 원고를 보낸 뒤 '작성자 이나경'이라고 서명했다.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그 사실이 그녀가 기사를 쓰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저녁 무렵 현우는 서람시청의 그 노인을 다시 만났다. 노인은 병원에 있는 아내를 찾아가려고 서류를 준비하던 사람이었다. 주영이 연결한 대체 증빙 덕분에 보호자 확인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라졌던 주소가 되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노인은 아내에게 다녀오는 길이었다. “젊은이가 그때 뭐라고 했었죠? 자기도 무슨 자격으로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네.” “그 말 기억해요. 내가 아내 손을 잡았는데, 주소가 없어졌다는 얘기보다 손이 좀 차갑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 살아 있는 사람은 그렇게 별것 아닌 일로 계속 살아 있는 거요.” 현우는 노인의 손을 바라봤다. 손가락 끝에 빨간 잉크가 조금 묻어 있었다. 오늘 접수한 서류에 지장을 찍은 흔적이었다. “아내분은 괜찮으세요?” “아직 치료 중이요. 내일 또 가야지.” 노인은 미소를 짓고 걸어갔다. 현우는 멀어지는 걸음걸이를 지켜보았다. 02는 생존을 수치로 표시했고, 00은 시스템의 원칙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해 그 원칙이 존재하는지는 이런 사람을 만나야만 다시 알 수 있었다. 그날 현우 일행은 긴급 대책회의를 길게 열지 않았다. 대신 다음 날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짧게 정리했다. 주영은 외곽 구역의 현장 안전을 확인했고, 가은은 원본 영상 감정을 의뢰했다. 태경은 보관자 팔찌에 남은 세 개의 홈이 무슨 기능인지 검증하기로 했다. 문경에게는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린은 공책을 펴서 다음 날 할 일을 적었다. '빨간 장갑의 주인을 찾는다. 만나면 먼저 물어본다.' “왜 이름을 찾는 게 아니야?” 현우가 묻자 아이가 대답했다. “장갑 돌려주는 데 이름은 꼭 필요 없을 수도 있잖아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그는 스무 해 전의 자신에게도 비슷한 말을 해 주고 싶어졌다. 약속을 지키는 일이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는 일과 같지는 않다고. 누군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면, 이제는 그 사람이 직접 길을 고를 수 있도록 남겨 두면 된다고.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영에게서 새 메시지가 왔다. 제0분기에서 가져온 표 세 장의 종이 성분을 대조한 결과였다. 세 장 중 두 장은 스무 해 전 만든 것이 맞았다. 마지막 한 장에는 최근에만 생산된 코팅 성분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누군가 표를 새로 만들었군요.” 가은이 말했다. “예전 표를 흉내 내서요?”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우리 말고도 있다는 건 확실하겠죠.” 현우는 세 번째 표에 쓰인 '돌아가지 않을 권리'를 떠올렸다. 그것이 진짜 오래된 규칙을 옮긴 것인지, 누군가 최근에 만든 경고인지 다시 확인해야 했다. 원본을 믿고 미래를 결정하는 대신, 원본이라고 불리는 것조차 누가 남겼는지 끝까지 검증해야 했다. 그날 밤 창밖에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스무 해 전의 비와 다르면서도 이상하리만큼 같은 냄새였다. *** 새벽 세 시. 해온군 원본 대조소의 첫 번째 방에 전화벨이 울렸다. 자동 응답 장치는 익명의 발신자를 받았다. 이번에도 아이 같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지난번과 달리 수화기 뒤편으로 버스 안내 방송 소리가 섞여 들렸다. '원 발신자 선택을 확인합니다.' 아이가 대답했다. “그 사람한테 전해 주세요. 제가 돌아가겠다고 하면 다른 아이들 주소를 밝히지 않고도 문을 열 수 있다고요.” '등록 08의 반송 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알아요. 그 사람은 표를 찢었으니까요.” '현재 위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위치는 말하지 않을 거예요. 대신 돌아가는 날을 알려 줄게요.” 통화가 끊긴 직후 대조소 화면에 지도가 하나 열렸다. 서람시와 해온군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도시,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기차역 주변이었다. [제0구역 연결 요청 재수신] [등록 08 / 반송 신청 대기] [원 발신자 응답 예정: 3일 후] 같은 시각 현우의 휴대전화에도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널 아홉 번째로 등록한 사람이다.' 이어 한 문장이 더 왔다. '네가 마지막으로 문을 지키던 날, 그 문 밖에 서 있던 사람은 나였다.' 현우는 메시지를 오래 바라봤다. 더 이상 숫자만으로 누군가를 찾아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질문을 멈출 이유도 없었다. 그는 가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사람이 있어요. 돌아가고 싶은 아이, 돌아오지 않은 여덟 번째, 그리고 제 이름을 적은 사람. 같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가은이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하나씩 확인합시다. 이번에도 살아 있는 사람을 먼저요.” 현우는 창문 밖을 보았다. 새벽 배달차가 골목에 멈추고 누군가 우유 상자를 내려놓았다. 동네는 아직 잠들어 있었고, 세상은 불안할 만큼 평온했다. 머리 위에는 붉은 숫자가 없었다. 대신 휴대전화 화면에 새로운 접수번호가 깜빡였다. [등록 09 / 원 발신자 면담 요청] [당사자 동의: 대기] 이번에는 '동의 완료'라고 쓰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현우는 삼일 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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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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