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가 뒤돌아보자 철길 위에는 작은 빨간 장갑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이가 달려나온 방향과는 반대쪽이었다. 누가 옮겼는지 알 수 없었다. 현우는 장갑을 집어 들려다 멈췄다. 이 장갑을 잃어버린 사람이 찾으러 올지도 몰랐다.
“위치를 기록하고 여기 두겠습니다.”
가은이 장갑을 촬영했다. 그러자 녹슨 신호기에 파란 불빛이 켜졌다.
[분실물 반환 요청 확인]
[접수대 출입 목적 제한: 분실물 보관 및 이의 신청]
문경이 경고한 미끼와는 다른 안내였다. 현우 일행은 관리 기관에 현재 공개된 출입 범위를 다시 확인했다. 제0분기의 출입 기록은 없었지만, 낡은 시설 번호를 대조하자 철길 하부의 작은 대기실이 과거 우편 취급 시설로 등록되어 있었다. 허가된 범위는 입구의 공개 접수대뿐이었다.
태경은 문경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제 허락이 필요한 일은 아니에요. 각자 자기 판단으로 들어가야죠.”
하린은 남겠다고 했다. 아이가 다시 돌아오면 길을 잃지 않도록 바깥에서 기다리겠다는 것이었다. 주영이 그녀와 함께 남았다. 현우와 가은, 태경, 문경만 천천히 출입구에 들어섰다.
***
안쪽은 놀라울 만큼 평범했다. 낡은 형광등 두 개, 나무 의자 세 개, 종이 번호표를 뽑는 기계 하나. 벽에는 사람 키만 한 철제 서랍장이 있었다. 수문 관제동처럼 끝없는 통로나 공중에 떠 있는 이름은 없었다. 대신 끊어진 전기선과 먼지가 쌓인 기록 장부가 현실의 무게로 놓여 있었다.
접수대에 들어선 문경은 낡은 벽에 붙은 달력을 발견했다. 종이는 삭아 있었지만 달력에는 마지막으로 접수한 날짜가 검은 펜으로 동그라미 쳐져 있었다. 09의 등록 시각과 같은 날이었다. 그 아래에는 다른 사람의 손글씨가 덧붙어 있었다.
'한 명이 돌아오지 않으면 문을 닫지 말 것.'
“이 문장도 원칙 3과 연결돼 있습니까?” 현우가 물었다.
문경은 고개를 저었다.
“원칙 3은 연락을 강제로 열지 말라는 규정이었어요. 이 문장은 문을 닫지 말라고 하네요. 서로 다른 목적입니다.”
태경은 희미하게 기억나는 직무 설명을 떠올렸다. 보관자의 역할은 누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접수증을 보존하는 일이었다. 어떤 기록은 열지 말아야 했고 어떤 기록은 버리지 말아야 했다. 외관상 정반대인 두 업무가 같은 서랍장에 붙어 있었던 이유였다.
“그럼 09의 말이 '닫지 않겠다'였어도, 안쪽 기록을 다 공개하겠다는 뜻은 아니겠네요.”
“그렇죠.” 가은이 답했다. “돌아올 길을 남긴다는 것과 누가 어느 길로 돌아오는지 알린다는 건 전혀 달라요.”
현우는 달력 옆에 붙은 종이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어떤 것은 방문자가 작성한 의견서였고, 어떤 것은 직원들이 서로 인수인계한 메모였다. 손글씨에는 화가 나서 문장이 끊긴 흔적도 있었고, 괄호를 두 번 지운 흔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 규칙을 만든 게 아니었다. 실패한 일을 고치기 위해 밤늦게까지 쓰고 지웠을 것이다.
“02는 왜 이런 과정은 보여 주지 않고 결론만 보여 줄까요?”
가은이 답했다.
“과정을 보여 주면 질문하는 사람이 생기니까요. 그 과정이 진짜로 위험한 경우도 있을 테고요.”
“그래도 질문할 틈은 있어야죠.”
밖에서는 열차도 지나가지 않는 철길을 따라 바람이 울었다. 낡은 형광등이 깜빡일 때마다 어른들은 한순간 말을 멈췄다. 이 작고 평범한 공간에서 훨씬 큰 도시들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문경은 맨 앞의 나무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삐걱거렸다. 그녀는 스무 해 전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본 아이가 자기도 같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아이가 누구였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의자 밑에 빨간 장갑이 한 짝 있었고, 그 장갑을 누구도 버리지 않았다는 것만 기억났다.
접수대 위에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찾는 사람의 이름을 먼저 묻지 마십시오.'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직접 고른 경로만 여십시오.'
'응답이 없으면 연락하지 마십시오.'
문경은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여기서부터 시작했군요.”
“누가요?”
“모르겠습니다. 처음 이 규칙을 적은 사람요.”
가은은 접수대 장부의 보존 상태를 살폈다. 첫 장은 비어 있었다. 두 번째부터는 여덟 개의 접수번호와 접수 시각이 쓰여 있었다. 현우의 이름은 아홉 번째 칸에 연필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있어야 할 서명란은 빈칸이었다.
“이게 답이네요.” 현우가 중얼거렸다.
“답이 아니라 확인 가능한 사실이 하나 늘어난 거예요.” 가은이 말했다. “당신은 이름이 적혔지만 서명은 안 했습니다.”
그는 종이를 만지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경은 여덟 번호 옆의 상태를 읽었다. 처음 일곱 개는 제각각이었다.
[01: 전달 보류]
[02: 직접 귀환]
[03: 연락 거부]
[04: 보호자 조회 금지]
[05: 제3자 전달 제한]
[06: 원본 유지]
[07: 수신인 결정 유예]
[08: 반송 요청 미완료]
“전부 똑같은 방식으로 보호된 사람이 아니었군요.”
문경이 말했다.
현우가 08 옆의 빈칸을 바라보자 갑자기 서랍장 뒤편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태경은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화면에는 '원본 관련자만 응답 가능'이라는 문구가 떴다. 현우는 자기에게 권한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고, 가은은 서면 안내를 요청했다.
벨이 멎었다. 서랍 아래에서 작은 접수증이 밀려 나왔다.
[제0분류 기록 질의 가능]
[신원 공개 없는 답변 허용]
[질의 대상: 등록 09]
현우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제가 이곳에 이름을 남긴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단, 앞선 여덟 사람의 신원을 알려 달라는 건 아닙니다.”
종이는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이내 또 한 장이 나왔다.
[등록 09: 마지막 목격자]
[서명 없음]
[등록 사유: 귀환 경로를 닫지 않겠다는 구두 진술]
현우의 머릿속에서 비 오는 복도의 모습이 겹쳤다. 그는 아이에게 장갑을 내밀었다. 그 아이가 문으로 들어간 뒤에도 기다리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가 '원본 관리자'로 오해받게 된 시작이었을지도 몰랐다.
“제가 원본 관리자도, 최초 요청자도 아니군요.”
“그 기록에서는 그렇게 나옵니다.” 태경이 말했다.
문경은 금속 탁자를 두드렸다.
“그럼 왜 시스템은 현우 씨를 원본 관리자라고 부르죠?”
대답은 02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아홉 번째가 마지막까지 기다리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오래 기다린 사람은 책임자가 되는 법이지요.'
가은이 반박했다.
“기다리겠다는 말과 타인의 동의를 대신할 권한은 다릅니다.”
'그 차이를 지키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위험해졌습니까?'
문경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녀의 시계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송문경 / 05:59:59 / 재심 전 집행 보류]
“제가 바로 위험해졌군요.”
02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장부의 마지막 칸이 저절로 열리며 새로운 글씨가 나타났다.
[등록 09 / 위임 관리자 승계 요청]
[승인 시: 제0구역 전체 연결]
[거절 시: 보호 실패 책임 귀속]
현우는 펜을 들지 않았다. 그는 구두 진술의 원본 음성을 찾아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이번에는 접수대 깊숙한 곳에서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음성 열람을 위해 등록 01의 선택 확인 필요]
최초 보호 요청자는 아직 자신의 답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제4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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