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람시 외곽의 낡은 세탁소에선 실종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 주인은 두 달 전에 임대 계약을 정리했고, 최근 한 사람이 작업실을 빌려 쓰고 있었다. 경찰이 연락하자 그 사람은 곧바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송문경입니다. 예전에는 구청 전산지원팀에서 일했습니다.”
회색 우산을 들고 도착한 여자는 예순에 가까워 보였다. 손등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다. 세탁소 뒤에 있는 작은 사무실 책상 위에는 분해한 시계와 카세트테이프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가은은 그녀에게 전날 전화가 본인 것이 맞는지 물었다.
“처음 전화는 제가 했어요. 두 번째는 모릅니다.”
“왜 익명을 요청했죠?”
문경은 책상 서랍을 열어 종이 두 장을 꺼냈다. 하나는 스무 해 전 퇴직 서류, 다른 하나는 익명 보호 신청서였다.
“여기 적힌 사람이 살아 있을 수 있거든요. 그 사람을 찾으러 오는 이들이 아직도 있어요.”
현우는 '찾으러 오는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문경은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녀가 믿는 것은 현우 일행이 악인이 아니라는 인상이 아니라, 자기 거절을 기록해 줄 수 있다는 절차였다.
“우리가 모르는 게 많습니다.” 가은이 말했다. “말하지 않으실 부분은 그대로 남겨 두겠습니다.”
문경은 그제야 회색 우산을 내려놓았다.
***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았다. 야간 취급소에는 직원 두 명이 있었고, 시계가 맞지 않아 종종 표의 시간을 잘못 적었다. 보호를 요청한 아이와 연락하려는 어른이 같은 줄에 서면 위험했기 때문에, 어떤 정보는 서로 다른 장부에 나눠 썼다.
“00이 그 방법을 만들었습니까?” 태경이 물었다.
“00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어요.”
방 안의 공기가 멎었다.
“무슨 뜻입니까?”
“그때 문서에 서명하던 '관리자 00'은 사람이 아니라 역할이었어요. 최초 보호 담당자를 부르는 직무명이었죠. 그 직무를 맡았던 사람은 바뀌었고,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번호로 서명했습니다.”
현우는 수문 관제동에서 들었던 여자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 목소리가 한 사람의 것이 아닐 가능성이 생겼다. 반대로 누군가 그 이름을 이용해 책임을 피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면 관리자 02도 역할입니까?”
“처음엔 프로그램의 보조 권한을 뜻했어요. 접수자의 오류를 검출하는 기능이었죠. 왜 사람의 얼굴을 하고 말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문경은 낡은 노트북을 켰다. 저장장치에 들어 있던 복구 로그는 화면에 몇 줄만 표시됐다.
[원칙 1: 추적을 막는다.]
[원칙 2: 발신자가 선택하면 연락 경로를 되돌린다.]
[원칙 3: 거절 또는 미응답 시 경로를 열지 않는다.]
그 아래에는 수정 이력이 있었다.
[원칙 3 변경: 보호 필요 시 관리자의 판단에 따른다.]
수정자의 이름은 없었다. 날짜는 서람초 폐교 직후였다.
“왜 변경됐습니까?” 가은이 물었다.
“사고가 났어요. 한 아이를 도우러 가야 하는데 부모인지 가해자인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현장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사람이 있었죠. 그 뒤 누군가 '판단을 대신해 주는 기능'을 넣었습니다.”
“그걸 02가 지금까지 사용한다는 거군요.”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02가 첫 변경자라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하린은 그 이야기를 듣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됐어요?”
문경은 긴 침묵 끝에 대답했다.
“누가 아이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가는 사람의 이름이 기록돼 있지 않아요. 그때부터 번호 여덟을 찾고 있었습니다.”
문경은 로그를 닫기 전 한 파일을 더 열었다. 제목은 '비상 이관 시험 기록'이었다. 아주 짧은 영상이었다. 낡은 복도에 서 있던 어른 두 명이 서로를 향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화면 가장자리에는 비를 맞은 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영상은 진짜 날짜가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문경은 그렇게 먼저 말했다. 그래도 당시 자신이 느꼈던 공포를 설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고 했다.
“계속 질문만 해선 안 될 것 같았어요. 사람이 쓰러지고 아이가 울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가 '일단 살리고 나중에 확인하면 된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02입니까?”
“그 기능이 커진 건 분명해요. 하지만 그때도 선의가 전부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마음대로 주소를 열 수 있는 편리한 방법이었으니까.”
문경은 파일의 마지막 두 프레임을 느리게 재생했다. 한 어른이 아이의 귀를 가리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어른은 교실 문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누가 아이를 도우려 했고 누가 찾으려 했는지 영상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었다.
“저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나쁜 어른이 누구였는지 정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파일에는 그들의 대화를 모두 담지 못했습니다.”
가은이 말했다.
“영상의 빈자리를 기억으로 채울 때는 별도 표시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나도 내 과거를 멋진 후회담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날 한 결정 때문에 누군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면,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지금도 알아야 하니까.”
하린은 문경의 화상 자국을 보다가 눈을 들었다.
“손은 어떻게 다쳤어요?”
“서류를 태우려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걸 꺼내려다가요.”
“누가 태웠는데요?”
문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린은 다시 묻지 않았다. 잠시 뒤 문경이 스스로 말을 이었다.
“무서웠어요. 누가 그 서류를 보면 아이 주소를 알아낼까 봐. 그런데 서류를 태우면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죠.”
현우는 테이블 위의 흉터와 복구 로그를 번갈아 봤다. 지워진 기록을 복원하면 모두가 안전해지는 게 아니었다.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어딨는지 숨기면서도, 기록을 지운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는 남겨야 했다. 이번 싸움은 그렇게 서로 충돌하는 두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싸움이었다.
***
돌아오는 길에 차가 갑자기 멈췄다. 네비게이션에는 도로가 사라졌다고 떴지만 앞에는 멀쩡한 삼거리가 있었다. 회색 우산을 든 문경이 뒷좌석에서 낯선 목소리로 말했다.
“이 도로, 그날 열렸던 임시 통로예요.”
그녀는 창밖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경계석 뒤편에서 오래된 철길이 드러났다. 자동차 불빛에 젖은 자갈이 번쩍였다. 해온군 원본 대조소로 향하던 폐선로의 반대편이었다.
“제0분기는 이쪽으로도 연결돼 있었어요. 접수소가 학교에만 있던 게 아닙니다.”
그때 현우의 눈앞에 붉은 글씨가 나타났다.
[송문경 / 11:59:59]
[등록 사유: 원칙 3 원문 보유]
현우는 그녀에게 화면이 보이는지 물었다. 문경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그의 표정을 보고 알아챘다.
“나도 명단에 올랐군요.”
“네. 하지만 아직 무슨 명령인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문경은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낡은 녹음기를 꺼냈다.
“그럼 이걸 내 이름 대신 맡아 주세요. 녹음에 동의한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 있고, 공개는 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현우는 녹음기를 바로 받지 않았다.
“보관 조건부터 적어 주세요. 그리고 이걸 갖는다고 문경 씨 대신 선택하지는 않을 겁니다.”
문경은 처음으로 웃었다.
“그러라고 만든 제도가 아니었죠. 그런데 이십 년 동안 그 말을 아무도 안 했네요.”
도로의 건너편 신호등이 꺼졌다. 붉은 카운트다운의 마지막 자리 숫자가 8에서 7로 바뀌었다. 그리고 녹음기에서 버튼도 누르지 않았는데 어린아이의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덟 번째가 돌아오면, 저도 집에 가도 돼요?'
제4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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