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44화
PAYLUA ORIGINAL · 제44화

44화. 여덟 개의 시각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3,251자

오프라인 책장
배준석이 가져온 것은 오래된 손목시계였다. 남자의 손목에 새겨진 08과는 아무 관계 없는 평범한 물건처럼 보였다. 바늘은 열 시 십일 분에 멈춰 있었고, 뒷면에는 '서람초 교육지원'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우체국에서 찾아온 게 아닙니다. 집 정리를 하다 발견했어요. 08 봉투가 배달됐다는 문자를 받고 나니 이게 기억났습니다.” 가은은 발견 시각과 보관 경위를 기록했다. “이 시계가 당신 것이라는 증거는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 점도 써 주세요.” 준석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손목에 새겨진 숫자, 알 수 없는 봉투, 낡은 시계. 세 가지가 모이면 누구라도 '여덟 번째 아이'라는 결론을 내려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세 가지가 같은 사건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부터 입증해야 했다. 주영은 서람초의 관리대장을 다시 살폈다. 옛날 야간 우편 취급소의 당직 기록 가운데 분 단위의 시각이 남아 있었다. 날짜는 폐교 전날이었다. 21:03 접수 시작. 21:17 첫 번째 귀환 표 발급. 21:29 두 번째. 21:44 세 번째. 22:11 네 번째. 22:28 다섯 번째. 22:36 여섯 번째. 22:52 일곱 번째. 23:10 여덟 번째. 여덟 개의 표에는 이름 대신 시각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현우의 등록은 다음 날이 아니라 그다음 날 새벽 두 시 십삼 분이었다. 순서가 다르다는 것은 분명했다. “여덟 사람이 문에 들어간 기록일 수도 있겠네요.” 하린이 말했다. “표를 발급했다는 기록이에요.” 가은이 바로잡았다.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실제로 받았는지는 아직 몰라.” 하린은 공책에 '표를 발급한 사람이 꼭 탄 사람은 아니다'라고 적었다. *** 배준석은 장부의 여덟 시각을 휴대전화로 찍어 가져갔다. 현우는 그가 자꾸 시계를 만지는 것을 보고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가자고 했다. 학교 옆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그네를 타고 있었다. 쇠사슬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제가 정말 그 아이였다면 어쩌죠?” 준석이 물었다. “어떤 아이요?” “여덟 번째로 표를 받은 사람. 누군가를 버리고 간 사람.” “아직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어요.” “그걸 머리로는 알아요. 그런데 그 아이가 나였다는 증거가 나오면 내가 지금 살아온 인생도 바뀌는 것 같아서요.” 준석은 손목의 08을 가린 손을 풀었다. 숫자는 유난히 흐릿했다. 오래된 상처인지 새겨진 표시인지조차 더 살펴야 알 수 있었다. “해온군에서 택배를 나르면서 수많은 주소를 봤어요. 사람 사는 데가 다 달랐죠. 어떤 집은 우편함이 깨졌고, 어떤 집은 대문에 개가 묶여 있었고. 나는 그저 배송 완료만 찍었어요.” 현우는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내가 여덟 번째라면, 스무 해 동안 다른 사람한테 편지가 도착하지 못하게 한 이유가 나한테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잖아요.” “반대로 누군가의 주소를 지켜 준 사람일 수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그때 사정을 알아야 판단할 수 있겠죠.” 준석은 모래밭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아이가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손을 잡을까 말까 망설이다, 넘어졌던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저렇게 쉬운 일 같았으면 좋겠네요.” “쉬운 게 아니라 두 사람 다 지금 여기 있으니까 가능한 거겠죠.” 준석은 소리 없이 웃었다. 한동안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이 그네를 타는 모습을 보았다. 현우는 준석을 과거의 숫자 하나로 취급하고 싶지 않았다. 배달차를 고치고, 위험한 편지 앞에서 동료에게 연락하고, 누군가를 기다릴 줄 아는 지금의 남자도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학교로 돌아갈 때 준석이 말했다. “나중에 08 봉투를 열 수 있게 되면, 당신들한테 읽어 달라고 하고 싶어요. 내가 먼저 읽으면 도망칠 것 같아서요.” 현우는 답했다. “그날이 되면 다시 물어볼게요. 그때도 그러고 싶은지.” 오후에 낯선 전화가 걸려 왔다. 서람시 외곽의 세탁소를 운영한다는 여자였다. 그는 예전에 학교 시설 자원봉사자였으며, 이제껏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그날 밤 시계를 맞추는 일을 했어요. 복도의 시계가 자꾸 빨라져서요. 열 시 십일 분에 한 번 멈췄습니다.” “성함과 대화 내용을 기록해도 되겠습니까?” “이름은 빼 주세요. 찾아올 사람이 있어서요.” 가은은 익명 제보로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여자는 문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을 설명했다. 아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장화를 신은 운전기사도 있었고, 보자기를 든 어른도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누군가의 주소를 가지고 기다렸다. “다들 보호자라고 했나요?” “아뇨. 누군가는 아이를 찾으러 왔고, 누군가는 그 아이를 숨기러 왔어요. 그래서 접수하는 쪽에서 이름표를 걷어 갔습니다. 나쁜 사람한테 주소를 안 주려고요.” “여덟 번째로 표를 받은 사람은 누구였죠?” 수화기 너머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여자가 낮게 속삭였다.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어요. 대신 그 사람이 표를 찢어 버렸다는 건 봤어요. 자기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하면서요.” 통화가 끊겼다. 세탁소를 찾으러 갔을 때 그 주소에는 이미 문을 닫은 가게가 있었다. 간판은 남아 있었지만 우편함 이름표가 새것처럼 하얬다. 근처 상인이 말하길 가게가 문을 닫은 것은 불과 한 시간 전이라고 했다. 현우가 문틈을 살폈다. 안에는 방금 다림질한 듯한 셔츠가 걸려 있었고, 다리미 밑판은 여전히 따뜻했다. “위험을 알고 스스로 떠난 걸까요?” 그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니어도 마찬가지예요. 확인하기 전엔 정하지 않겠습니다.” 가은은 열려 있던 뒷문으로 곧장 들어가려는 현우를 말렸다. 경찰에 연락해 정당한 출입 절차를 밟는 사이, 현우의 휴대전화에 통화가 한 통 더 왔다. 발신 표시는 조금 전의 번호였다. 그러나 여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덟 번째 사람을 찾으면, 아홉 번째 문은 스스로 열립니다.' “누구십니까?”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 생각인가요, 이현우 씨?' “안에 사람이 있으면 살아 있는지 확인할 겁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짧은 웃음이 들렸다. '그 대답은 오래전과 같군요.' 통화가 끝난 뒤 가은은 발신 번호의 통신 기록을 의뢰했다. 주영은 장부 속 시각을 다시 대조했다. 그리고 하린은 준석의 시계 초침을 가만히 바라봤다. 열 시 십일 분에 멈춘 시계의 초침은, 그들 중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한 칸 움직였다. [제0분기 시간 보정 요청] [수정 기준: 08번 표의 반환 여부] 이제 문제는 여덟 번째 사람이 누구인가만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시간을 고치려 하고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44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4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