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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43화
PAYLUA ORIGINAL · 제43화

43화. 폐교의 비 오는 복도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3,494자

오프라인 책장
구 서람초등학교는 오래전에 담장을 뜯어낸 뒤 시민 교육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운동장 한편은 주차장이 되었고, 2층의 교실 세 개는 창고로 바뀌었다. 비가 오면 복도 끝에 물이 고이는 일만은 스무 해 전과 같았다. 정연실은 낡은 계단을 올라가다 잠시 멈췄다. “저 창문이 열려 있었어요.” 그녀는 운동장을 향한 세 번째 창을 가리켰다. “폐교 전날이었죠. 비가 들이쳐서 청소 담당 선생님과 같이 닫으러 왔는데, 아이들이 여기 줄지어 앉아 있었어요.” “몇 명이었습니까?” 가은이 물었다. “여덟 명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요. 그때부터 이상하게 숫자가 바뀌었거든요.” 태경이 가져온 서류에는 폐교 당일의 급식 기록이 남아 있었다. 신청 인원은 열둘, 배식 수량은 열하나, 실제 수령 확인은 아홉이었다. 어느 숫자도 곧장 아이 수를 뜻하지 않았다. 하린은 교실 문턱에 쪼그려 앉았다. 작은 분필 조각으로 바닥에 비뚤어진 사각형을 그리려다가 손을 멈췄다. “그려도 돼요?” 시설 담당자에게 묻자 임시 표시는 종이에 해 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린은 공책을 펼쳐 복도 구조를 그렸다. 창문 셋, 교실 넷, 계단 둘. 그리고 사진에서 보았던 여덟 번째 사람의 흐릿한 팔을 다른 색으로 표시했다. “여기서 볼 수 있던 사람이 꼭 같은 교실에 있던 건 아니네요.” 현우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뜻이야?” “사진을 찍은 사람은 사진 밖에 있잖아요.” 연실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는 복도 끝의 거울을 가리켰다. 유리 한가운데 금이 가 있는 오래된 거울이었다. “기록에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아이인 건 아니었어요. 우린 사진에 찍힌 아이들만 세고 있었죠.” *** 그들은 교육관 사무실의 허가를 받아 보관 중인 관리대장을 열람했다. 대장은 원본이 아니었다. 이십 년 전에 복사한 것들이 다시 복사돼 글씨가 끊어져 있었다. 가은은 삭제된 이름을 임의로 복원하지 않았다. 다만 날짜와 담당 부서가 남은 항목을 찾아냈다. '임시 야간 우편 취급소 개설. 장소: 별관 지하 출입구.' “학교에 우체국이 있었습니까?” 연실은 고개를 저었다. “정식 우체국은 아니에요. 사람들이 보호 신청서를 내던 창구였죠. 다른 시설로 옮겨 갈 아이들 주소가 밖으로 새는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주소를 숨기고도 연락을 받을 방법을 만든다고 했어요.” “관리자 00이 시작한 장치요?” “아마도요. 그 사람이 실재 인물이었는지조차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처음엔 거절하면 문서가 닫혔어요. 나중엔 거절을 입력할 칸이 사라졌죠.” 현우는 복도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 출입구는 콘크리트로 막혀 있었다. 문이 있던 자리에 낡은 철제 이름판이 박혀 있었다. '반송 취급소. 찾는 사람이 아닌, 돌아가려는 사람을 위해.' 그 글씨를 보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작은 장면 하나가 돌아왔다. 자신의 손보다 큰 빨간 장갑을 누군가에게 끼워 주던 감각. 아주 추운 날이었고, 아이는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다. 아이가 무엇을 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괜찮아요?” 가은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기억인지 아닌지도요. 하지만 그날 여기에 누군가 있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확실한 것 같다는 말은 기록에 그렇게 쓰죠.” 그는 웃으려 했지만 웃지 못했다. 그때 2층에서 금속성 소리가 울렸다. 하린이 복도를 지나다 거울 뒤를 발견한 것이다. 시설 담당자가 함께 확인한 뒤 거울을 들어 올리자 벽에는 얇은 홈이 있었다. 홈에서 비닐로 감싼 녹음테이프가 나왔다. 테이프 겉면에는 '이름을 부르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영은 재생 기기를 가져오기 전까지 테이프를 만지지 않았다. 연실은 의자에 앉아 물을 마셨다. 하린은 실수로 거울을 깨뜨린 줄 알고 울상이 됐지만 담당자는 금이 원래 있었다고 설명했다. 테이프의 상태가 나빠 재생을 미뤄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자 연실은 교실 밖으로 나갔다. 현우가 따라가 보니 그녀는 2층 계단에 서 있었다. 손가락 두 개가 없는 손으로 난간을 쓰다듬으며 운동장을 내려다봤다. “그날 내가 아이들한테 제일 많이 한 말이 뭔지 알아요?”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 그 말이었어요. 실제로는 아무 일도 없지 않았는데요.” “아이들을 안심시키려고 한 말이겠죠.” “그렇다고 해도 거짓은 거짓이었지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집에 가고 싶은지, 누구한테 연락하고 싶은지, 누구한테는 연락하고 싶지 않은지.” 연실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녀는 오래된 죄를 고백한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아주 구체적인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비에 젖은 아이를 갈아입힐 옷이 있는지 확인하고도, 그 아이가 누구에게 전화하고 싶어 하는지는 끝내 묻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는 한 번 제대로 물을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고가 커질까 봐 무서웠으니까.” 현우는 난간 바깥을 바라봤다. 운동장에는 요즘 학교에서 흔히 보는 주황색 안전콘이 세워져 있었다. “선생님이 지금 말해 주신 걸 기록해도 될까요?” “네. 다만 제가 기억한 걸 전부 사실처럼 적지는 말아 주세요. 어떤 날은 얼굴이 선명하고, 어떤 날은 목소리가 더 선명해요.” 가은이 올라와 그 말을 들었다. 그녀는 연실의 진술에 기억의 불확실성을 표시하겠다고 했다. 연실은 웃었다. “이상하네요. 내가 확신하지 못한다는 걸 적어 주니까 오히려 좀 살 것 같아요.”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현우는 벽면의 졸업생 작품을 살폈다. 빛이 바랜 그림에는 집으로 이어지는 길이 그려져 있었다. 길끝에 서 있는 사람 얼굴은 지워져 있었지만, 그림 아래 아이 글씨는 남아 있었다. '찾으러 오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누군가가 이 그림을 오래전에 붙였을 수도 있고 최근에 붙였을 수도 있었다. 출처를 확인하지 않은 채 원본 보호 요청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현우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누구에게는 기다림이 보호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절실했다. 오후 네 시, 복원 장비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 아이 두 명의 대화가 들렸다. '언니, 그 사람은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 '아니. 편지 주소를 가렸으니까.' '그럼 내가 돌아갈 때는 어떻게 해?' 한동안 빗소리뿐이었다. '네가 돌아오겠다고 말하면 열리는 문을 남겨 놓았어.' 다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래보다 조금 낮았다. '그 문을 여는 사람은 현우가 될 거야. 아홉 번째로 들어왔으니까.' 현우는 장비를 멈춰 달라고 했다. 손이 떨렸다. 무엇보다 그 말이 소름 끼쳤던 건, 다른 목소리 하나가 자기 어린 시절 목소리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주영이 원본 음성을 저장한 뒤 파형을 확인했다. '그 문을 여는 사람은 현우가 될 거야.' 이 문장 뒤에 아주 희미하게 다른 소리가 있었다. '단, 여덟 번째가 돌아오지 않으면 안 돼.' 벽시계가 다섯 시를 알렸다. 그 순간 현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해온군의 배준석이었다. “현우 씨, 저 지금 서람시로 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제가 아직 열지도 못한 08 봉투에서, 오늘 날짜의 배달 확인 문자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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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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