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온군 분류 담당 원본.
그 문구를 본 배준석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스무 해 전의 어느 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탁자 위에는 봉투가 놓였고 누군가 이름을 읽었다. 그 사람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준석이 기억하는 것은 말 한마디뿐이었다.
'누가 대신 대답해도 괜찮겠지?'
"그때 제가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준석이 말했다.
"생각나지 않는 건 억지로 채우지 마세요."
가은이 그를 의자에 앉혔다.
그날 밤 대조소는 한시적으로 현장 진술을 받기로 했다. 다만 등록 대상자의 개인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은 허용하지 않았다. 실명 공개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접수번호로 진술할 수 있고, 익명의 기록은 원본 확인 절차를 따로 거친다는 설명이 붙었다.
나경은 첫 번째 진술자가 됐다. 그녀는 기자로서 취재했다는 사실보다 먼저, 자기 이름으로 된 동의서를 자신이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혔다.
"저는 이나경입니다. 해온군에서 살고, 사람을 인터뷰하는 일을 합니다. 제가 서람시를 기억한다는 이유로 제 존재를 이전해도 된다는 동의서를 제출한 적 없습니다. 제가 무엇을 알았는지도 스스로 설명하겠습니다."
대조소의 검증 화면에 글씨가 떴다.
[진술 접수]
[원본과 상충: 동의 여부]
[추가 확인 필요]
두 번째는 최다정이었다. 다정은 어린아이들 사진을 촬영할 당시 자신이 그 자리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전 이야기를 모두 자기 기억처럼 말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 필름의 보관 경위와 누가 언제 인화 사본을 확인했는지를 정확히 설명했다.
세 번째는 강서윤이었다. 그녀는 이름을 등록하는 것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은 뒤에도 기록 보류를 선택했다고 했다. 환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기 때문이었다.
"서람시에서 일했다는 말만으로 제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지 말아 주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 번째는 배준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목에 08이 적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자신이 여덟 번째 아이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저는 편지를 운반했습니다. 어떤 편지에는 이름이 없었고, 제가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습니다. 하지만 제가 누군가를 강제로 옮겼다는 기억은 없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일을 제가 했다고 쓰지는 말아 주세요."
현우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절제가 사건을 바꾸고 있다고 느꼈다.
***
한 사람이 증언할 때마다 화면에 붙은 붉은 글씨가 희미해졌다. 그런데 해온군의 버스 정류장 하나가 잠시 이름을 잃었다. 현우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가 진술하는 동안 밖에서 지워지고 있어요."
가은은 창문 밖을 보았다. 멀리 보이는 정류장 표지판이 한 번 흐릿해졌다 다시 선명해졌다. 그곳에는 평소대로 시민 두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술이 원인인지, 명령이 따로 진행 중인지 구분해야 해요."
그때 화면이 빛났다.
[제3차 교정 자동 회수 준비]
[유효 증언 등록: 4]
[대리 동의 추정 등록: 4]
[합계: 8]
"네 명은 실제로 진술했고, 나머지 네 명은 예측했다는 말인가요?"
태경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대조소의 여성 음성이 답했다.
"그러면 유효하지 않은 네 명을 왜 합산합니까?"
'임시 관리 규칙이 총수를 기준으로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가은이 입술을 깨물었다. 규칙을 바꾸지 않고는 잘못된 숫자로 계속 집행할 수밖에 없게 해 놓은 것이다.
현우는 화면 아래 작은 단서를 발견했다.
[명단 산정 방식에 대한 이의 제기 가능]
그는 가은을 보았다.
"이번에도 거기 있네요. 작게 써 놓은 길이."
가은은 태경에게 종이 팔찌를 돌려주었다. 원본 보류 권한이 아직 유효한지 확인하자, 스피커에서는 긴급 호출이 아니라 재심 청구로 접수하라는 답이 나왔다.
"긴급 호출로 다 해결할 수는 없다는 거군요."
"그 대신 이번엔 우리가 뭘 잘못 셌는지 알고 있어요."
태경이 말했다.
진술실에 들어가기 전 최다정은 나경을 따로 불렀다. 자신이 오래 보관한 사진의 빈자리를 전국 신문에 싣는다면, 누군가의 과거를 공개적으로 추적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기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진 속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면 동의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제가 실은 사진 때문에 누가 찾아오면 어떻게 하죠?"
다정이 물었다.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이번 기사에는 필름의 존재와 보관 경위만 쓰려고요. 사진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나경의 답에 다정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경은 기자로서 가진 권한이 누군가에게는 강제 노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취재 대상이 낡은 사진 속의 아이일 때 그 고민은 더 어려웠다.
한편 배준석은 말할 내용을 적은 메모를 쥐고 있었다. 메모에는 사실 세 줄, 불확실한 기억 두 줄이 적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목에 새겨진 08을 가리며 말했다.
"제가 증언하면 사람들이 나를 여덟 번째 아이라고 부르겠죠. 저 자신도 잘 모르는데."
가은이 대답했다.
"당신이 말하지 않은 결론을 우리 기록에 넣지 않겠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부르면 증거를 확인하겠습니다."
준석은 수첩을 접었다. 스무 해 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른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모르는 사실을 고백하는 일이 도망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진술실 문 앞에는 오래된 격언이 붙어 있었다.
'기록은 사람이 말할 기회를 보존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 아래에는 작게 덧칠한 글씨가 있었다.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을 기록에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우는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
재심 청구서에는 '직접 참여한 진술'과 '예측된 참여'를 분리하라는 요구가 적혔다. 네 사람은 각자 자기가 말한 범위를 확인했다. 특히 나경은 기사에서 동의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다시 말했다.
준석은 대조소의 08 봉투를 돌아봤다. 그 속에 자신이 궁금한 대답이 있을지 몰랐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의 기록을 지킬 일이 먼저였다.
그때 관리자 02의 목소리가 스피커에 끼어들었다.
'유효한 숫자가 넷뿐이라면, 넷은 아무도 지키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시간을 쓰는 동안 구역 안정도를 잃고 있습니다.'
현우가 반문했다.
"안전 문제가 실제로 있다면 자료를 내놓으세요. 어떤 기록이 손상되고 있고, 그걸 막는 방법이 왜 자동 회수뿐인지요."
'원본의 연결이 끊기고 있습니다. 기억을 가진 사람을 더 멀리 보내면 연결되지 않은 구역이 더 늘어납니다.'
"그렇다면 이동을 돕는 것과 기억을 지우는 걸 구분해야죠. 연결을 고치는 데 필요한 사람을 먼저 없애면 어떻게 고칩니까?"
02는 잠시 침묵했다.
대조소 화면이 바뀌었다.
[재심 청구 접수]
[유효 동의 및 증언: 4]
[예측된 등록: 4 / 산정 제외]
[제3차 교정 자동 회수: 긴급 정지]
밖에서 정류장 표지판의 이름이 다시 나타났다.
[해온군 중앙터미널]
나경은 그 글자를 직접 사진으로 찍었다. 아직 붉은 시간은 남아 있었지만 줄어드는 속도가 멈춰 있었다.
[외부 증인 001 / 49:22:17 / 집행 보류]
현우는 겨우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서랍에서 더 오래된 서류가 한 장 튀어나왔다.
'보호구역 원본을 마지막으로 보관한 사람은 기록에서 자신을 지웠다.'
그 아래에는 단 한 줄만 있었다.
[제0분류 담당 / 신원: 접수 이전 삭제]
가은이 종이를 들었다. 누군가 기록을 지우면서 자신부터 지운 사람. 이 사건의 시작이 단순히 관리자 02의 오판은 아닐 수 있다는 뜻이었다.
대조소 안쪽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
열두 문 가운데 첫 번째 문이었다.
제39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