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 열두 개는 한때 해온군 전역에 설치된 공동 집하함이었다. 택배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작은 섬마을의 편지도 이곳을 거쳤다고 했다. 지금은 대부분 사용하지 않는 시설이었지만, 배준석은 마지막 우편함만은 함부로 열지 못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일하기 전에는 편지를 그냥 편지로 생각했습니다. 발송인, 수신인, 주소. 세 가지만 있으면 도착하는 줄 알았죠."
준석은 주머니에서 오래된 운송표를 꺼냈다.
'서람시 원기록보존소 → 해온 제8분류구.'
"이십 년 전 이런 걸 매주 운반했어요. 보내는 사람은 서람시라고 돼 있었는데, 받는 사람 이름이 늘 공란이었죠. 이상해서 물었더니 보호대상이라고만 하더라고요."
"그걸 왜 지금껏 가지고 계세요?"
가은이 물었다.
"내가 배달한 게 편지가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었다는 걸 알게 된 뒤부터요. 버리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하린은 그의 손목을 보았다. 숫자 08에 대해 물을 때 준석은 눈을 피했다.
"제가 여덟 번째 아이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니라고도 못 하죠. 그 시절 기억이 비어 있거든요."
그는 자기보다 어린 모습의 아이가 찍힌 필름을 바라봤다.
"하지만 내가 저기 있었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증언을 해야 하는 건 아니겠죠?"
"네. 그러면 안 됩니다."
현우는 즉시 답했다. 누구보다 자신이 그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었다.
***
해온군 우체국에는 화재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은 보관실이 있었다. 준석은 열쇠를 가지고 있지만 자기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들여보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들은 우체국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 출입기록을 남기고 들어갔다.
보관실에서는 종이보다 습기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철제 서랍마다 숫자가 붙어 있었다. 서랍 여덟 개는 비어 있었고, 나머지 네 개에는 오래된 우편물 반송 목록이 들어 있었다.
'수취인 불명'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반송 사유는 모두 달랐다.
'주소가 존재하지 않음.'
'수취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없음.'
'해당 인물이 이미 이전됨.'
'수취인이 도착했으나 출입 기록이 없음.'
태경은 마지막 문장을 읽고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사람이 도착했는데 출입 기록이 없다면, 사람이 잘못된 게 아니라 기록 체계가 틀렸을 수도 있어요."
가은은 목록에 적힌 당시 담당자 이름을 살폈다. 몇몇은 익숙한 이름이었다. 서람시의 구 학교 운영위원, 임시대피소 담당자, 통학버스 기사. 이십 년 전 모두 보호대상과 연결된 어른들이었다.
"그때 이 사람들은 아이들을 지키려 했을까요, 감추려 했을까요?"
주영이 전화 너머에서 말했다.
"둘 다였을 수도 있죠. 기록이 지워진다고 모두 악인이 되진 않지만, 그 결과는 조사해야 합니다."
준석은 우편물 하나를 꺼냈다. 봉투에는 어린아이가 삐뚤게 쓴 글씨가 있었다.
'나중의 나에게.'
안에는 그림 한 장과 짧은 문장이 들어 있었다.
'학교가 다시 열리면 내 이름을 불러 주세요.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기다려 주세요.'
하린이 그림을 보고 움찔했다. 파란 지붕, 노란 계단, 오른쪽에 나무 두 그루. 그녀의 공책에 여러 번 그려진 구 서람초등학교와 같았다.
"이거 제가 그린 걸까요?"
그녀가 물었다.
현우는 편지와 하린의 그림을 나란히 놓았다. 비슷했지만 똑같지는 않았다.
"모르겠어. 네가 확인하고 싶으면 글씨를 비교할 수 있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되고."
하린은 한참을 들여다보다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볼래요."
준석은 서랍 앞에 쪼그리고 앉아 오래된 배송 도장을 손바닥에 굴렸다. 도장의 손잡이는 한쪽이 깨져 있었다. 왜 깨졌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손에 쥐는 감각만은 익숙했다. 때로 몸은 기억보다 먼저 반응했다. 그는 그 감각이 무섭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제가 나쁜 일을 했을까요?"
그가 태경에게 물었다.
태경은 오래된 보관자 팔찌를 보여 주었다. 자신도 관리 절차에 참여했지만 모든 결정에 동의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기억의 빈칸에 죄도 무죄도 함부로 적지 않고,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책임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기록을 보호하던 사람이었는지, 사람을 숨기던 사람이었는지 아직 전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기록을 고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 거기에 책임을 져야겠죠."
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우편함 열쇠의 사용 기록을 다시 작성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연 사람이 누구인지 남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 첫 줄에는 '배준석, 오늘 오후, 관리자 입회 아래 열람'이라고 적혔다.
하린은 어린아이 편지를 바라봤다. '내 이름을 불러 주세요'라는 문장은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그 아이가 지금 어떤 이름으로 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자신도 언젠가 과거의 자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래의 하린에게.'
그녀는 공책에 제목만 적었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우지 않고 남겨 둔 빈칸은 누군가 지워 버린 빈칸과 달랐다. 나중에 자신이 무엇을 쓸지 선택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었다.
***
나경은 계속 취재를 했다. 인터뷰가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취재를 빼면 남는 게 두려움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편지들에 대해 기사를 쓰고 싶어요. 다만 보내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은 건 그대로 쓰겠습니다."
준석은 망설였다.
"그 이름이 또 밖으로 퍼지면 문제가 커질 수 있어요."
"그래서 공개 범위를 정하려고요. 누군가의 이름을 실어서가 아니라, 이름을 잃었다는 사실과 기록 보존의 필요성을 알리는 기사로요."
가은은 그 방식에 동의하면서도 반론을 남겼다. 기사가 외부 증인의 목록을 늘릴 가능성도 있기에, 지금 당장 공개하는 것보다 피해자들에게 먼저 위험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경은 메모지에 두 문장을 적었다.
'알릴 권리.'
'알리지 않을 권리.'
"둘 다 살리는 방법을 찾아야겠네요."
그때 우체국 밖에서 배달차 한 대가 멈췄다. 운전사는 내려서 빈 상자를 두 개 내려놓고 사라졌다. 상자에는 봉인이 되어 있었다.
[제3차 교정 / 증인 서류 회수]
[회수 대상: 이나경, 최다정, 배준석]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나경이 중얼거렸다.
준석은 운송장 번호부터 확인했다. 발송지와 도착지는 모두 해온군 우체국이었다. 시간은 내일 새벽 네 시였다.
"아직 보내지도 않은 택배를 받았군요."
그가 말했다.
현우는 봉인을 뜯지 않았다. 대신 관리자의 입회 아래 외부 포장 상태를 촬영했다. 그 사이 상자 안에서 종이가 한 번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스피커도 없는 보관실에서 관리자 02의 목소리가 흘렀다.
'당신들은 위험을 알면서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보호를 위해 연결을 끊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현우가 상자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듣겠습니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은 사람의 증언을 훔쳐 가는 건 안전이 아니에요."
'그럼 더 많은 사람이 사라져도 되겠습니까?'
"안 된다고 해서 당신 방식이 옳아지는 건 아닙니다."
침묵 뒤에 마지막 경고가 남았다.
[외부 증인 수: 3]
[연쇄 동기화 임계치: 8]
[임계치 도달 시 해온 제8분류구 자동 회수]
하린은 여덟 개의 빈 서랍을 바라봤다.
"여덟 명이 되면…… 이 우체국도 사라지는 거예요?"
아무도 그렇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다만 숫자 8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제3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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