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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28화
PAYLUA ORIGINAL · 제28화

28화. 두 명의 이현우

사라질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 4,017자

오프라인 책장
시청 앞 광장에는 이현우가 두 명이었다. 하나는 전광판 속에서 시민들의 이관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비를 맞으며 그 영상을 올려다봤다. 사람들은 둘을 번갈아 보고 웅성거렸다. 화면 속 남자의 목소리는 현우가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 들을 때처럼 어색할 정도로 정확했다. "저 사람 아니에요?" "저기 서 있는 사람하고 똑같은데?" "저 사람 말대로 하면 안전하다잖아요." 누군가는 현우의 팔을 붙잡고 따졌다. 그러는 동안 전광판에는 계속 안내가 반복됐다. '시민 여러분, 대피는 저의 요청입니다. 이동하셔야 합니다.' 현우는 반박하려 했지만 가은이 손목을 붙잡았다. "저 화면이 가짜라는 말보다, 화면에서 요구하는 일을 누가 왜 결정했는지 먼저 물어보죠." "저 사람이 저 아닌 걸 사람들이 믿을까요?" "모두가 믿지는 않겠죠. 하지만 지금 여기 서서 질문하는 사람은 진짜예요." 가은은 광장 한쪽으로 걸어갔다. 서람시청에서 일하는 김주영이 작은 이동식 마이크와 스피커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인터넷에 연결하지 않은 유선 마이크였다. 시청 구내방송망은 이미 02가 장악했기에 광장에서 직접 말할 수 있는 기계만을 쓸 수 있었다. "주민 여러분. 지금 나오는 영상의 작성자와 권한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영상만으로 서명이나 이동을 결정하지 마십시오." 주영의 목소리는 전광판의 거대한 음량에 묻혔다. 그때 정류장에 서 있던 오미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확성기를 빌려 말했다. "저는 버스 기사 오미자입니다. 제가 운전했던 첫 차는 사람들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버스를 멈췄어요. 그건 안전한 운행이 아니었으니까요." 사람들이 그녀를 돌아봤다. 거창한 설명보다 기사 자신의 경험이 더 빨리 전해졌다. 시민회관에서 돌아온 한 여자가 아이 손을 잡고 앞으로 나섰다. 첫 버스에서 귀환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오래 망설이다 마이크를 잡았다. "버스를 타고 나서 집 주소를 잊었습니다. 제 아이를 기억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어요.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분들이 무조건 이동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에요. 어디로 가는지 꼭 확인하세요." 아이 민규가 어머니의 소매를 잡았다. 손에는 파란 장갑 한 짝이 들려 있었다. 하린이 보관하고 있던 장갑이었다. 민규는 마이크 가까이 다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엄마가 숙제를 봐 주기로 한 걸 기억해요. 그거 아직 안 했어요." 광장에 웃음이 퍼졌다. 그러나 현우는 그 웃음 때문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누구도 아이를 자료로 제출하지 않았다. 아이는 자기가 기억하는 이야기를 자기 목소로 하고 있었다. *** 그날 시민 안내 방송은 하나의 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주영은 시청이 확인한 사실만 설명했다. 행정기관이 발행한 적 없는 이관 문서가 나타났다는 것, 실제 버스 운행에서 승객의 주소 기록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 관련 자료를 보전하고 외부 기관에 검증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질문할 권리가 있다는 것. 정연실은 원본 테이프 중 공개해도 되는 규정 설명만 읽었다. 어린아이의 목소리와 신원 단서는 제외했다. 가은은 시청 앞에 놓인 큰 종이를 가리켰다. '나는 충분한 정보를 얻은 뒤 나의 거주지와 관계 기록에 관한 결정을 내리고 싶습니다.' "동의하시면 여기에 이름을 쓰셔도 됩니다.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의 선택은 대신하지 마세요." 현우는 종이 앞에서 손을 들고 말했다. "제가 관리자로 등록돼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을 대신해서 이관에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동의 없이 그런 결정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럼 도시가 없어지면 책임질 수 있습니까?" 현우는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그 위험을 없앨 방법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함께 확인하려고 합니다. 제 말을 무조건 믿지 마세요.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보시고 각자 결정해 주세요." 사람들이 차례로 앞으로 나왔다. 모두가 서명하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은 화가 나 돌아섰고, 어떤 사람은 다른 지역에 있는 가족과 통화했다. 어떤 사람은 급히 떠나야 한다며 실제 목적지가 확인된 교통편을 찾았다. 누구도 강제로 잡지 않았다. 가은은 그 광경이 승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처음으로 시민들이 절차의 밖이 아니라 절차의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공개 발언이 끝날 즈음, 소은은 가은에게 다가왔다. "언니, 엄마한테 언제 얘기할 거예요?" 가은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가족이라고 확신하기에는 확인해야 할 것이 아직 많았다. 반면 기다리게만 하면 소은이 다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엄마에게 누군가를 만나고 싶냐고 물어보려고 해. 너를 기억하게 만들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앉아도 괜찮은 자리로." 소은이 웃었다. "좋아요. 처음 만나는 것도 좋아요. 대신 제게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물어봐 줬으면 해요." 가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을 되찾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정작 소은이 원하는 관계를 묻는 일을 잊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때 광장 반대편에서 싸움이 났다. 중년 남자가 안내소에 제출된 서명지가 가짜라며 종이를 찢으려 했다. 주영이 달려가 사람들 사이를 갈랐다. 가은은 남자를 일방적으로 제지하는 대신 왜 화가 났는지 물었다. "우리 어머니는 글자를 못 읽으세요. 이런 데 서명했다가 또 속을까 봐요." 그가 소리쳤다. "어머님께 서명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설명을 듣고 싶으신지 먼저 여쭙겠습니다. 글이 아니라 말로 설명하고, 원하시면 다른 분과 내용을 확인하게 하겠습니다." 주영이 대답했다. 남자는 이내 손을 내렸다. 얼마 뒤 어머니와 함께 안내소에 왔다. 그들은 종이에 이름을 쓰지 않았다. 다만 어떤 문서에도 당사자의 뜻을 모른 채 동의 처리하지 말아 달라고 구두로 요청했다. 주영은 그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만 기록했다. 현우는 그것이 서명 한 장을 더 모으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글자를 읽지 못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그녀의 결정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 저녁 여덟 시 무렵, 도시 전역의 전광판이 꺼졌다. 가로등이 아닌 전광판만이었다. 현우는 잠깐 안도했다. 그러자 휴대전화에 붉은 알림이 떴다. [대리 동의 인정률 51.06%] [시민 개별 의사 상충] [교정 불능 구역 발생] 숫자 아래에는 전혀 다른 문장이 있었다. [원본 관리자 부재시 전체 복원 제한] [승인자 지정: 이현우] "당신 서명이 여전히 마지막 열쇠인 거네요." 태경이 말했다.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02는 미래의 동의라고 주장했죠. 지금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과거 서명을 무효로 만들 수 있는지는 확인해야 해요." 가은이 대답했다. 하린은 공책을 펴서 그림을 그렸다. 가운데 큰 건물이 있었고 그 앞에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종이 한쪽에 질문을 적었다. '왜 어른들은 남의 대답을 미리 정하려고 할까?' 소은은 그 글을 보며 하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다리는 게 무서울 때가 있어서 그렇지. 그래도 기다려 줘야 해." 그 말이 끝나자 가은의 전화가 울렸다. 경찰서 후배였다. "선배님, 지금 어디 계세요?" "시청 광장. 왜?" "선배님 이름으로 영장이 내려왔다고 해서요. 그런데 사건 번호도 없고 담당 판사도 없어요. 선배님 기록이 계속 바뀌어요." 가은의 얼굴이 굳었다. "누가 발부했어?" "원본 관리자실이라는 곳이요. 지금 서류에는 선배님이 민하린을 납치했다고 적혀 있는데, 아까는 도시 이관 방해라고 돼 있었습니다." 통화가 잠깐 끊겼다. 전화기 너머에서 후배가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만요. 선배님, 저기…… 선배님 성함이 뭐였죠?" 가은은 눈을 감았다가 또렷하게 대답했다. "윤가은. 내 이름은 윤가은이야." 하지만 휴대전화 화면의 연락처에는 그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윤가은 / 07:59:59] 현우가 보지 못했던 붉은 숫자였다. 도시 전체의 시간을 늦추기 위해 움직인 가은에게, 이제 개인의 삭제 시계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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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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