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는 도시의 지도가 접히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종이를 구기는 듯한 소리였다. 다만 손안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먼 골목 끝에서, 오래된 건물의 모서리에서, 공터라고 믿었던 곳의 가로등 뒤에서 들렸다. 한 번 소리가 날 때마다 풍경이 겹쳤다. 낡은 담벼락에 다른 담벼락이 나타나고, 주차장이었던 곳에 5층짜리 주택이 한순간 서 있다가 사라졌다.
[추가 거주 이력: 1,407명]
"없던 사람들이 생기는 건가요?"
김주영이 물었다.
"없던 게 아니라, 지워졌던 주소가 잠깐 돌아오는 걸 수도 있어요."
가은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도 확신이 없다는 표정으로 도로를 바라봤다. 도시에 사는 사람 18만 명을 지키려던 일이 이제 또 다른 1,407명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로 넓어졌다. 그들이 실제로 살아 있다면 누가 보호해야 하는가. 이미 죽었다면 그들의 이름을 마음대로 도시로 되돌려 놓아도 되는가.
태경은 휠체어 바퀴를 손으로 밀었다. 오랫동안 병원과 요양원을 오간 덕분에 작은 턱을 넘는 데 익숙했다. 그가 가리킨 곳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이었다.
"여기. 예전에는 우체통이 있었어요."
"기억나요?"
"한 번 편지를 넣은 것 같습니다. 누구한테 보냈는지는…… 모르겠고요."
벽에는 녹슨 우체통의 나사 자국만 남아 있었다. 현우가 휴대전화를 가져다 대자 화면에 새 주소가 나타났다.
'서람시 옛수문길 17-2.'
주영은 종이 도시계획도를 뒤져 같은 주소를 찾았다. 공식 도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6년 지도를 겹쳐 보자 그 자리에 '임시 보호주택'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
오후 세 시, 현우 일행은 가장 먼저 형태를 드러낸 7층 주택에 들어갔다. 출입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현관에는 빛바랜 신발들이 놓여 있었는데 모두 오른발 신발만 있었다. 우편함에는 이름 대신 얇은 종이 조각이 끼워져 있었다. 종이마다 숫자와 작은 표시가 적혀 있었다.
"살아 있던 사람들이 여기서 일괄 등록됐던 거라면……"
가은은 말을 멈췄다. 여전히 추측이었다.
계단을 오르던 소은이 4층에서 걸음을 멈췄다. 손잡이에 낡은 리본이 매달려 있었다.
"이거 제가 알아요."
그녀가 말했다.
"학교에서 동생들 머리를 묶어 주려고 리본을 많이 잘랐어요. 이건 선생님이 남은 걸 모아 만든 거예요."
"여기에서도 살았어요?"
"잠깐요. 정확히 며칠인지는 모르겠어요. 학교가 쉬는 날이면 여기로 오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7층 복도 끝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 회색 실내복을 입은 노인이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머리 위에는 이름이 없었다. 그러나 현우는 그를 보고 겁을 먹지 않았다. 노인은 문틈 너머로 소은을 바라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그 노래 부르던 애 아니니?"
소은이 한 걸음 다가갔다.
"저를 아세요?"
"이름은 생각 안 난다. 애들이 복도에서 자꾸 노래를 불렀어. 내가 시끄럽다고 야단쳤지."
노인은 그 말을 하고 수줍게 웃었다. 소은도 따라 웃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기억이 따뜻한 추억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잃어버린 시간을 일깨우는 상처일 수 있었다.
"선생님이 저희를 숨겨 주신 건가요?"
"숨겨 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쉽게 못 찾게 했어. 우편물도 여기로 왔지."
그는 작은 장부를 내밀었다. 장부에는 입주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받아야 할 편지' 칸과 '찾으러 오는 사람' 칸이 있었다. 누가 보호시설을 지나는 동안 누구와 연락하고 싶어 했는지를 남긴 기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편지가 아무 데도 가지 않더라. 보내는 쪽도 받는 쪽도 지워졌어."
노인의 눈에는 물기가 어렸다.
"그래서 내가 안 보냈어. 혹시 나중에 찾으러 오면 주려고."
가은은 장부를 받지 않았다. 노인에게 이름과 연락처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가 원하면 누구에게 편지를 주고 싶은지 들을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노인은 서랍에서 편지 한 통을 더 꺼냈다. 봉투는 노랗게 변했고 풀칠한 자리가 단단했다. 겉에는 받는 사람 이름이 없었다. 대신 작은 그림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창문에 서 있는 사람과 그 옆의 물뿌리개였다.
"이건 아이가 부탁한 편지야. 누구한테 보내야 하는지 몰라 못 보냈어."
소은은 물뿌리개 그림을 보자 얼굴이 굳었다.
"저거, 하린이 그림이에요. 학교 창가에 항상 화분이 있었거든요. 물 줄 때마다 저런 물뿌리개를 그렸어요."
하린은 편지를 받지 않았다. 자기 것이라는 말을 쉽게 믿지 않았고, 누군가 몰래 읽은 내용이 있는지도 몰랐다.
"제가 여기서 읽어도 될까요?"
노인이 그녀를 바라봤다.
"네가 쓴 편지라면 네가 결정해야지."
하린은 한참 생각하다가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짧은 문장이 있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으면 화분 있는 창문을 봐 주세요. 내가 거기서 기다렸어요.'
편지 끝에는 이름 대신 별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하린은 종이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어린 자신이 누구에게 이 글을 주려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주길 원했던 것 같았다.
"이거 돌려받아도 될까요? 제가 기억 못 해도 일단 갖고 있고 싶어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해야 할 종이를 너무 오래 자기 서랍에 넣어 두었다는 사람처럼, 그녀에게 봉투를 건넸다.
현우는 그 광경을 보며 '귀환'이 반드시 옛날 이름을 되찾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편지를 처음으로 받아 보는 순간이기도 했다.
***
그날 밤, 시청의 조사팀은 오래된 도시계획도와 임시 보호시설 명단을 비교했다. 1,407명 가운데 몇 사람은 지금도 시내에 살고 있었다. 이름이 바뀌었거나 주소가 이전되면서 기록의 연결이 끊긴 사람도 있었다. 일부는 사망했다. 일부는 실제 거주 여부부터 확인해야 했다.
숫자가 곧 사람 수와 일치한다고 믿는 것은 위험했다. 같은 사람이 여러 차례 기록됐을 수도 있었다. 태경이 과거 보관자였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항목을 확인할 권한도 없었다.
주영은 임시보호주택의 장부를 넘기며 말했다.
"이건 인구 통계가 아니라 연락을 기다리는 목록일 수도 있어요."
현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관리자 02가 저 숫자를 보여 준 이유가 있겠네요."
가은은 벽에 붙은 지도를 바라봤다.
"시민들한테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겁을 주는 건 쉽죠. '도시가 불안정해지니 전부 이관해야 한다'는 설명으로 연결하면요."
현우는 시스템이 보여 주는 숫자가 언제나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정확한 숫자에는 정확한 정의가 필요했다. 누가 중복됐는지, 누가 살아 있는지, 누가 지금 여기에 있기를 원하지 않는지. 그 질문을 지우고 하나의 숫자로 합치는 순간 사람이 관리 대상이 된다.
"우리가 확인해야 할 건 이름의 합계가 아니라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말이에요."
그가 말했다.
그때 시청 회의실 문이 열렸다. 정연실이었다. 학교 문 앞에서 처음 만났던, 손가락 두 개가 없는 여성이었다. 갈색 코트는 여전했지만 어깨에는 빗물이 묻어 있었다.
"내가 늦었네요."
"선생님. 어떻게 여길……"
"시장이 보내 준 쪽지를 받았어요. 옛수문길 이야기가 나왔다길래."
정연실은 테이블 위 장부를 손끝으로 만졌다. 얼굴에 오래된 죄책감과 결심이 동시에 떠올랐다.
"1,407명은 전부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에요."
가은이 물었다.
"그럼 누구입니까?"
"학교의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보냈던 편지를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편지 한 장마다 기다린 사람이 있었어요. 어떤 편지는 끝내 도착하지 못했고요."
"그럼 왜 지금 도시를 지우는 데 저 숫자가 쓰이죠?"
정연실은 침묵하다가 마침내 말했다.
"이십 년 전에, 그 편지를 한꺼번에 버리라고 명령한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때 우리는 믿었어요. 누군가의 과거를 지워야 그 아이들을 지킬 수 있다고."
현우는 어린 시절의 손글씨를 떠올렸다. 잊게 해 달라고 했지만 완전히 없애 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 누군가가 '보호'를 '폐기'로 바꿔 놓았다.
정연실이 고개를 들었다.
"그 명령을 내렸다는 사람은 어린 현우가 아니었어요. 어른 현우의 얼굴을 하고 왔죠."
가은과 현우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관리자 02군요."
"그때도 02라고 불렀어요."
정연실은 코트 안쪽에서 낡은 녹음테이프를 꺼냈다. 라벨에는 숫자가 하나 적혀 있었다.
'00.'
"이게 처음 명령이 녹음된 거예요. 02보다 먼저 말을 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 있어요."
제2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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