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보다 어렵기도 했다.
강둑 관제동 앞에서 만난 여자는 자신을 소개할 수 없었다. 대신 가방에서 구겨진 숙제 공책을 꺼냈다. 첫 장 오른쪽 위에는 아이가 쓴 이름이 있었다. '정민규.' 하린이 발견한 장갑에 새겨진 이름과 같았다.
"우리 민규가 이걸……"
여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자기가 민규의 어머니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그 아이가 몇 살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공책에는 구구단 연습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 문제 옆에 어른의 글씨로 '고생했어'가 적혀 있었다.
가은은 그 글씨를 보여 주며 물었다.
"이거 본인이 쓰셨습니까?"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이가 여기를 틀리면 제가 항상 이렇게 적었어요."
"그럼 그 기억부터 적죠. 성함은 천천히 확인하면 됩니다."
현우는 벽 쪽으로 손을 뻗었다. 문 안에서는 긴 복도가 나타났다. 양쪽 벽에 우편함 같은 상자가 늘어서 있었고, 상자마다 이름 대신 날짜가 붙어 있었다. 맨 끝에는 '귀환 신청 대기'라는 간판이 있었다. 놀랍게도 그 아래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첫 버스에 탔던 것으로 보이는 승객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누구였는지 몰랐고, 어떤 사람은 가족을 기억하지만 가족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었다. 분명 살아 있었으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다들 안전하게 계신 겁니까?"
가은이 물었다.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면 안전한지부터 얘기해 주시겠어요?"
안경을 쓴 남자가 대답했다.
그는 버스에 타기 전 출근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목적지는 회사였다. 그런데 회사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손목시계는 정상적으로 움직이는데, 자기가 내렸던 버스 정류장이 지도에서 사라졌다.
"나갈 수도 없어요. 주소가 없으면 문이 안 열려요."
그가 말했다.
가은은 현우를 보았다. 박정호를 구하던 첫날부터 한결같은 문제가 있었다. 시스템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는 사람에게 먼저 증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잃어버렸기 때문에 증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반환 조건을 따로 찾아 봅시다."
***
관제동 안쪽 안내 창구에는 작은 규정집이 있었다. 손때 묻은 종이책이었다. 첫 장에는 오래전에 작성한 듯한 문장이 보였다.
'소속을 잃은 사람은 기억나는 관계 하나를 진술하여 임시 귀환을 신청할 수 있다. 신청자의 진술만으로 과거 소속을 확정할 수는 없지만, 임시 귀환을 거절하는 근거로 삼을 수도 없다.'
가은이 조용히 읽어 주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거 진짜 규정이에요?"
"여기 기록돼 있어요. 다만 이 시설이 그 절차를 지키는지는 지금 확인해야 합니다."
현우는 안내 창구에 규정집을 펼쳐 보였다. 창구 안의 기계가 잠깐 멈췄다.
[임시 귀환 요청 근거 확인]
[귀환 목적지 미지정]
"돌아갈 주소를 당장 모르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그가 물었다.
기계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은이 개입했다.
"지금 돌아갈 사람과 보호받을 장소를 새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동의하면 저희가 그곳을 확인하겠습니다."
그녀는 먼저 임시보호시설에 연락했고, 김주영은 시청 담당자로서 실제 이용 가능한 대피공간을 확인해 주었다. 무턱대고 아무 주소나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사람이 있는 장소였다.
민규의 어머니는 제일 먼저 일어섰다.
"저는 아이를 찾고 싶어요. 여기가 아니라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요."
창구 화면이 바뀌었다.
[귀환 목적: 자녀와의 관계 확인]
[임시 위치: 서람시민회관 2층]
[본인 동의: 확인됨]
문이 열렸다.
여자가 뛰쳐나가자 다른 사람들도 차례로 움직였다.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어떤 사람은 회사 동료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동네 빵집의 냄새를 기억했다. 그 기억은 정확한 주소를 대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돌아가고 싶다는 현재의 의사는 충분히 말할 수 있었다.
마지막 사람까지 나온 뒤 현우는 문을 닫았다.
[1차 수송 대상자 임시 귀환 43명]
[도시 이관 완료 0명]
가은은 그 문구를 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마흔세 사람 모두 원래의 삶을 찾은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가 마음대로 그들의 소속을 확정할 권한을 갖지 못하도록 시간을 번 것이다.
그날 관제동을 나오는 사람들의 걸음은 모두 달랐다.
민규의 어머니는 시민회관에 도착한 뒤 아이와 통화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번호를 눌러도 연결되지 않았다. 가은이 아이의 이름을 대신 말하려는 순간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말할게요. 목소리 들으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전화가 연결되자 아이는 대뜸 숙제 얘기를 했다.
'엄마, 나 어제 고친 거 있어. 이번엔 맞았어.'
어머니는 대답하지 못했다. 눈물이 먼저 떨어졌다. 아이는 엄마가 우는 이유를 몰라 잠시 말이 없었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지금 집이야?'
"아직 아니야. 그렇지만 집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어."
그 말에 아이는 안심한 듯 '기다릴게'라고 했다. 통화가 끝난 뒤 어머니는 가은에게 부탁했다. 오늘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어디에 적어 두면 좋겠냐는 것이었다.
가은은 두 장의 종이를 건넸다. 한 장은 어머니가 보관하고, 한 장은 본인이 원하면 지원 담당자에게 맡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종이에는 번호도 주소도 적지 않았다. 단지 날짜와 '아이와 오늘 이야기를 나눴다'는 문장이 있었다.
"내가 다시 잊어버리면 이걸 보고 꼭 전화할게요."
태경은 그 모습을 보며 옛 보관소에서 자신이 왜 일을 시작했는지 조금 떠올렸다. 누구든 돌아올 길이 한 가닥은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완벽한 기억보다 다음에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더 필요했다.
***
다음 날 시청 광장에서 주민들을 위한 임시 안내소가 열렸다. 주영이 시작한 일이었다. 재난 방송의 목적지와 계약 관계를 공개하고, 직접 확인한 사실과 확인하지 못한 내용을 분리해 공지했다.
현우는 시민들에게 서로의 이름을 모으자는 제안을 하려다가 멈췄다. 이름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삶을 소유할 수 없었다. 동의 없이 연락처와 가족관계를 수집한다면 자신들이 막으려는 시스템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동의한 사람끼리만 기록합시다. 기록을 보관할 사람과 기간도 정하고요."
가은이 말했다.
그래서 안내소에는 두 종류의 종이가 놓였다. 첫 번째는 안전 이동과 귀환 절차에 대한 공개 질문지였다. 두 번째는 서로의 오늘을 기억해 주기로 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남기는 확인서였다. 이름을 적지 않고도 참가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한 여자는 옆집 노인이 매일 고양이에게 밥을 준다고 말했다. 노인은 고양이 이름은 잊었지만 그 여자가 늘 우산을 두 개 갖고 다닌다는 것을 기억했다. 빵집 청년은 자신이 외상값을 갚아야 할 사람이 있음을 고백했다. 그 사람이 웃으며 돈은 천천히 갚으라고 했다.
가은의 수첩에는 이름 대신 오늘의 작은 장면들이 쌓였다.
하린도 안내소에 앉았다. 자신이 영원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방법은 아직 몰랐지만, 누군가에게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아주머니, 오늘 가장 기억나는 일 뭐예요?"
"커피를 쏟았어. 중요한 서류에."
"그럼 내일은 다른 걸 기억하시면 되죠."
아주머니는 웃었다. 하린도 웃었다.
***
그날 저녁 도시 곳곳에서 붉은 선이 물러났다. 시청 앞의 버스 정류장에는 사라졌던 이름이 돌아왔다. 공무원들은 임시 안내소에서 수집한 문제를 바탕으로 승객 명부를 재확인했고, 일부 주민은 스스로 돌아갈 집을 찾았다.
현우는 승리가 작더라도 그것을 작다고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원기록실 화면은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대리 동의 예상률 99.87% → 83.12%]
[자발적 비동의 응답 증가]
[교정 방식 변경 필요]
관리자 02가 창백한 손가락으로 화면을 훑었다. 그는 시민들이 실제로 선택하는 일을 귀찮은 오류처럼 바라봤다.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군요."
그는 다른 문서를 열었다.
[정규 시민 기록 대조: 불일치]
[서람시 가구 수와 등록 인구의 차이: 1,407명]
"그렇다면 이 사람들부터 되돌려야겠군."
지상에서 현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서람시 전역의 오래된 아파트 지도가 떠 있었다. 지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회색 집들이 겹쳐졌다.
[추가 거주 이력 발견: 1,407명]
[현재 귀환 주소: 확인 불가]
하린이 가만히 화면을 들여다봤다.
"저 사람들도 누군가가 잊은 사람들이에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1,407명은 너무 구체적인 숫자였고, 너무 많은 사람이었다.
그때 그림 속 한 아파트 7층 창문에 불이 켜졌다. 회색 지도에서 실제 거리 쪽으로 빛이 번졌다. 길 건너 분명 공터였던 자리에서 오래된 주택 한 동이 천천히 나타나고 있었다.
제2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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